상투적 멜로 탈피 현실적 스토리로 긴장감 높여
종반에 접어든 MBC 주말극 ‘누나’(극본 김정수, 연출 오경훈)가 뚝심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4일은 자체 최고 시청률(23.2%)을
기록했다. 중반까지 한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선전이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KBS ‘소문난 칠공주’의 종영
덕을 봤다. 하지만 ‘누나’의 현실성 있는 스토리가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누나’에는 주말드라마조차도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캐릭터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쉽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멜로나 가족극, 사건 등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조명하며 점차적으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자극적인 요소가 없음에도 시청하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요즘 이야기가 재미있게 된 지점은 섬에서 낚시하다 실종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승주(송윤아 분)의 아버지가 돌아와 기억력을 되찾으면서다.
병상에서 승주 아버지가 승주의 재산을 가로챈 수아의 엄마(송옥숙)에게 ‘제수씨!’하고 부를 때는 시청자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누나’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인간의 본성을 투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돈을 싫어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물질에 쉽게 흔들린다.
‘누나’는 상당한 재산가였던 아버지의 실종으로 졸지에 ‘처녀가장’이 된 승주를 중심으로, 돈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과 돈에
흔들리지 않는 인간들을 그린다.
빈털터리가 된 승주를 말없이 도와주는 부류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부류를 보면서 시청자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다. 역시
결론은 죄짓고 살면 안 된다는 점,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알아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점 등 평범하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되겠지만
그 과정의 스토리는 충분히 현실적이어서 몰입할 수 있다. 부모가 사망한 후 형제와 친지끼리 재산다툼으로 소송까지 가는 사태가 현실에도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만약 ‘누나’가 승주-건우(김성수)의 멜로라인과 이를 방해하는 악녀 수아(허영란)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특히 이들 간의 애정라인과 결혼
여부가 부모에게 종속되는 상황으로 갔다면, 갈수록 외면받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들 간의 다양한 상황과 사건을 통해 인간성을 보여주고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캐릭터에도 더 많은 매력과
애정이 형성된 것이다. 승주를 묵묵히 도와주는 버팀목인 김성수는 ‘우직복고남’으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오현경 할아버지가 가끔 인생의
지혜와 진리를 촌철살인 격으로 전해주는 것도 물질과잉시대에는 와닿는다.
‘누나’는 갑자기 뜨거워지는 ‘냄비’가 아니라, 서서히 데워지는 ‘뚝배기’ 같은 드라마로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서병기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2007-01-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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