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누나’서 家長역 열연…30대 여배우 매력 고스란히 담아내
MBC 주말연속극 ‘누나’는 방영 초기부터 1993년작 ‘엄마의 바다’와 비견됐다. ‘가족’과 ‘인생역정’을 주된 테마로 삼는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갑작스런 가장의 죽음과 사업부도로 사회적 계급 추락을 겪는 일가족의 서사라는 점에서 흡사하다.
‘엄마의 바다’가 어머니와 장녀 영서, 차녀 경서 등 3명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역할분담극이었다면 ‘누나’는 집안의 맏누나로서 가장의 자리를
떠안게 된 한승주(송윤아)의 모놀로그다.
‘엄마의 바다’의 여자들은 뜻밖의 현실에 망연자실하거나(김혜자), 현명하되 지나치게 착하거나(고현정), 부잣집 딸 시절을 잊지
못한다(고소영). 고소영의 발랄하다 못해 상식 밖으로 비춰지던 오만방자함은 드라마 초반 온갖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작은엄마를 하녀 부리듯 하던
송윤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송윤아는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부재하던 집안의 맏딸이란 점에서 김혜자며, 옷 리폼 장사 등에서 탁월한 사업수완을
보이는 모습은 똑똑하게 제 앞가림을 하며 집안을 추스르던 고현정의 분신 같다.
하지만 ‘누나’의 송윤아만이 지니는 차별점은 ‘억척스러움’에 있다. ‘누나’에도 물론 조력자 남성군이 등장한다. 한결같이 믿음직한
남자친구(김성수)가 있고, 차갑지만 승주의 조련사 역할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송승환)가 있다. 하지만 ‘엄마의 바다’ 최민수나 독고영재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휘두르며 승주를 좌지우지하진 못한다. 철모르게 고가 운동화를 덜컥 사온 남동생을 호되게 야단치긴 하지만, 동생을 위해 과욋집
화과자를 몰래 가방에 넣어오는 건 남성은 배제된 가장의 세계다.
모노드라마를 이끄는 힘은 전적으로 배우 송윤아 개인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스타를 거치지 않은 30대 주연급 여배우의
저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성스럽다’ ‘아름답다’ 할 수 있지만 ‘인형 같다’ 할 수 없는 외모, 아나운서 같은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말투는
누나 또는 여인이란 어휘로 변형돼 송윤아를 에워싸고 있다.
모 여론조사 결과 ‘재혼하고 싶은 상대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송윤아는 여성으로서의 섹슈앨러티와 흔히 아름다운 여배우에겐 부재한 지적인
분위기가 주는 신뢰감을 겸비했다. 귀여운 척하지도 청순함을 가장하지도 않으면서 대중을 중독시키는 매력은 팬시상품과 다른 빈티지를 연상시킨다.
[헤럴드 경제 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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