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연기 맛 알고 워커홀릭 됐죠"

정찬은 지난 3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연기자다. 2003년 하반기 SBS 주말 드라마 ‘애정만세’ 이후 최근 MBC 일일극 ‘얼마나 좋길래’에 출연하기까지 3년간 무려 7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빈틈 없이 브라운관을 장식했다.

정찬은 90년대 중반 이후 KBS 2TV ‘파파’, SBS ‘8월의 신부’ 등을 통해 청춘 스타로 활약할 당시만 해도 많아야 1년에 1편의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까다롭게 작품을 선택했지만 최근 3년 동안은 줄기차게 연기에 매달렸다. 혹독하게 스스로를 시험하는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찬은 20대 청춘 스타 시절을 거쳐 30대에 접어든 이후 연기에 임하는 태도가 두드러지게 바뀐 연기자 중 하나다. 지난 2002년 과오로 말미암아 짧은 활동 중단 시간도 지녔던 정찬은 그 시기를 확실히 연기자로서 성장의 시간으로 삼았다.

그는 “열심히 돈 벌어서 장가가기 위해서 입니다”라는 농담으로 바뀐 연기관에 대해 설명했지만, 편안하면서도 진지하게 털어 놓는 그의 모습에선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장인의 인상마저 느낄 수 있었다.

▲ 대장장이 연기론

정찬에게 던진 첫번째 질문은 ‘30대 연기자에 대한 단상’이었다. 아래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20대 청춘 스타들에게 밀리고, 위로는 원숙미를 과시하는 중견 연기자들에게 치여 쉽게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청춘 스타 출신의 30대 연기자들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정찬은 질문의 취지를 쉽게 수긍하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장장이 연기론’으로 자신만의 견해를 밝히기 시작했다.

“20대에 연기자는 열정이 지배합니다. 대장장이로 치면 풀무질을 하며 쇠에 열을 가하죠. 힘과 정열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대한 뜨겁게 달궈야 하니까요. 30대는 달궈진 쇠를 꺼내 망치로 때리는 단계입니다. 어떻게 때리느냐에 따라 무엇을 만들 지가 결정됩니다. 때려야 하는 시점을 잘 아는 게 중요합니다. 때려야 하는데 풀무질을 계속하면 쇠는 못쓰게 되거든요. 저는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중이죠.”

정찬은 20대 시절 반듯한 엘리트 이미지 연기자로만 활약했다. 당연히 이미지는 고정됐고 연기자로서 마이너스 요소가 됐다. 그래서 최근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했다.

SBS ‘토지’의 무기력한 지식인, KBS 2TV ‘황금사과’의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 등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애썼다. 요즘 MBC 일일극 ‘얼마나 좋길래’에서 예전 엘리트 느낌의 캐릭터로 출연하면서도 새로운 색깔을 불어넣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 동안 고유 이미지만으로 너무 소모적인 연기 활동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보여줄 게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바꾸기에 매달렸죠. 늦었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는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 연기 서바이벌 게임

정찬은 취미가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했다. 들판이나 산속에서 페인트탄을 장착한 총을 들고 뛰어다니고 나면 짜릿하면서도 가슴 후련한 즐거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연기도 서바이벌 게임의 하나라며 독특한 견해를 밝혔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사람이 승리자가 되듯이 연기자 또한 살아 남아야 합니다. 과거의 위상과 인기에서 헤어나지 못해 도리어 도태된 선배 연기자들도 많죠. 살아 남은 분들은 청춘 스타 시절만은 못해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합니다. 백윤식, 김수미, 이영하 등의 선배님처럼 말이죠. 저 역시 연기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연기자로 인정 받고 인기도 누릴 수 있기 위한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 정찬은 쉬는 게 힘들다. 밤 세워 촬영할 때 편안하고 모처럼 주어진 휴식 일엔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얼마나 좋길래’에 합류하기 전 3년 만에 처음으로 2개월 남짓의 휴식 기간을 가지면서 휴대폰까지 정지시키고 완전한 휴식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서 고생스러웠다. 연기가 멋이 아닌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방송사 PD에게 이 같은 상황을 전하며 ‘생활 연기자가 다 된 것 같다’고 했더니 ‘이미 생활 연기자 아니었냐’고 맞받아치더군요. 껄껄 웃었지만 속으론 뜨끔했습니다. 사실 젊은 연기자들은 ‘생활 연기자’라는 표현을 달가워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모든 연기자가 궁극적으로는 생활 연기자가 되죠. 얼마나 편안하게 이를 즐기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스포츠한국 이동현 기자(kulkuri@sportshankook.co.kr)






2006-07-31 (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