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53년간 조연의 꽃은 찬연하다

“워매 워매 말 많은 가시내가 집을 나가부러야?”MBC 일일 드라마 ‘얼마나 좋길래’에서 기막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눈길을 끄는 연기자가 있다. 선주고모로 나오는 중견연기자 김지영(70)이다. 그녀는 KBS ‘서울 1945’에서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조연으로 나온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비중의 몇 배를 소화해내는 그녀의 존재감만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가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연기자다. 아니 우리시대의 광대다.

최근 시작한 ‘얼마나 좋길래’의 김지영을 보면서 그녀가 했던 두말이 생각난다.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KBS연기대상에서 ‘장밋빛 인생’에서 미스봉으로 열연한 결과로 까마득한 후배 연기자 김사랑과 함께 ‘조연상’ 공동수상한 뒤 수상소감에 대한 단상이 첫 번째다.

“후배들이 상 받을 것 같아 박수치러 나왔는데 내가 상 받을 줄 몰랐다. 후보에 오른 적은 많았다. 방송사 측에서도 매번 꼭 탈 것이라고 한 적은 많았지만 꼭 젊은 후배들 차지였다. 이렇게 상 받을 줄 알았으면 멋진 드레스를 입고나오는 건데...”이 말에는 그녀의 연기경력 53년에 이르는 소회와 조연에 대한 우리 연예계의 인식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 그녀와 인터뷰하면서 강인하게 새겨진 한 문장의 표현이 떠 오른다. “스타는 저녁에 떠 아침이면 사라지지만 조연 연기자는 평생 간다.”이 말은 그녀가 평생의 업으로 선택했던 연기자 그것도 조연 연기자로서의 자부심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 그녀는 53년 동안 악극의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브라운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은 단 한번도 하지 못했고 푼수, 식모, 주모, 첩 등 시청자나 관객의 눈길을 끌만한 멋진 배역은 아니었지만 그 배역들을 김지영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시대극, 사극, 현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연기자 중 한사람이다. 그리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 강원도 등 각 지방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연기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를 가르켜 ‘조연 연기의 지존’이며 ‘사투리 대사의 달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일부 연기자들이 사투리를 흉내내기에 급급한 데 그 지역의 정서까지 어투에 담아내는 사투리 연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의 말은 연기자로서 너무나 기본이라할 수 있는 말로 이유를 대신했다. “녹화가 없는 날은 지방 시장에 들러 사투리도 배우고 시장 사람들의 생활을 본다. 조연 연기자는 어느 캐릭터를 맡아도 소화할 수 있게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무조건 연기가 좋아 부모 몰래 악극단에 들어가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뒤 충무로를 거쳐 드라마 연기자로 자리 잡은 그녀는 “줄타기, 노래, 연기 등 모든 것을 잘하는 광대가 진짜 연기자라는 말을 선배들에게 듣고 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도 시청자들의 사랑이 젊은 주연들에게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며 조연으로서 좌절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연기 잘하는 조연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보고 지난 50여년의 조연 연기 인생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도 든단다.

오랜 세월 관객과 시청자 곁을 지켜온 김지영. 그녀가 무대나 스크린, 브라운관에서 피워온 50여년의 조연 연기의 꽃은 스타들이 피우는 것보다 더 찬연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오늘도 촬영장으로 향한다. ‘대본을 가슴에 넣고 감정과 대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연기를 하러’ 말이다.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knbae@mydaily.co.kr)





2006.07.16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