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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월드컵 한국과 토고전이 열린 6월 13일 만난 김창완은 더운 날씨에도 빨강색 벨벳 남방 차림이었다. 이유는 ‘붉은 악마이기 때문’이라나(더 큰 이유는 감기). 그런 그에게 산울림이 30세가 된 감회를 묻자 “덤덤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냐”는 질문에, 먼 곳을 응시하며 한동안 눈을 껌뻑거리더니 “직무유기한 기간이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세월에서 비켜 있었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래 그만두려 낸 앨범이 길 터줘
“우리 스스로 30년을 건너 왔다기보다 팬이 우리의 30년을 만들어준 것이잖아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산울림을 그리워하고 오늘도 노래하기 바라는 분이 있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죠. 하지만 가수로서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한 죄송스러움과 후회, 반성도 있어요.”
서울대 농대 1학년 때인 1971년 통기타를 독학으로 마스터한 김창완. 그리고 그런 형을 통해 어깨너머로 음악을 익히던 두 동생은 2년 후 아마추어 록밴드 ‘산울림’을 결성했다. 둘째 창훈씨가 서울대 농대에 합격한 직후다. 부모님이 입학선물로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하자 삼형제는 피아노 대신 기타, 베이스, 앰프, 드럼을 사겠다고 했고 뜻을 이뤘다. 그 악기로 음악을 시작한 산울림는 1977년 데뷔앨범을 발표할 때까지 이미 100여 곡의 노래를 만들어놨을 정도로 창작욕이 왕성했다. 데뷔 후 발표한 곡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300여 곡에 이른다는 게 김창완의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가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노래를 그만두려고 앨범을 낸 것인데 그게 시작이 됐죠. 우리가 30년간 생명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도 없었고 우리 스스로도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산울림의 등장은 당시 가요계에 ‘파격적이다’ 또는 ‘참신하다’는 평가와 함께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국내 가요는 과대포장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주류였는데 산울림의 음악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에 전혀 가공되지 않은 노랫말로 젊은층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산울림의 노래에서는 젊음의 현주소가 날것으로 배어 나왔다. 당연히 검열대상으로 자주 오르내렸다. 가요 주소비층을 성인에서 청소년으로 바꾸어놓은 기폭제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창완은 “보람인 동시에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성인을 위한 노래가 실종된 오늘날의 가요 현실이 이제는 그에게 가슴 아픈 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그 행복을 몰랐다”고 회상했다. “무대가 두려웠고 떨며 섰던 그 무대가 얼마나 행복한 공간인지 깨닫는데 20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땐 이미 설 무대가 많이 줄었죠. 인생이 뭐 그런 거 아닐까.”
김창완은 요즘 가요 가사가 섬세한 감정을 묘사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깊이 있고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데는 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같은 감정만 가요 소재로 다뤄지는 것 같아 빈곤함을 느낀다는 것.
그는 언제인가부터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MBC 주말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에서 청와대 요리사 역을 맡아 감초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연기를 ‘진짜 좋아하는’ 것일까.
“재미있어요. 대사 외우는 것도 스릴 있고. 하지만 가수로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느끼는 쾌감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게 연기라면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마치 내가 날개를 달고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날아가는 것과 같거든요.”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수’다. 지난 해 50년 묵은 우울증을 떨쳐 버렸다지만, 만약 14집 앨범을 낸다면 모티브는 ‘유쾌’ 또는 ‘JOY’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그에게선 예의 그늘이 느껴진다. 늦은 밤이면 수시로 다수의 사람에게 동시에 휴대전화 문자를 날리고 답신 오는 것을 읽으며 ‘홀로’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도 그의 성향을 드러낸다. 그의 오래된 애마인 ‘오토바이’는 지금도 그와 함께 도심 곳곳을 질주한다. 그는 스스로를 ‘타고난 폭주족’이라고 표현했다. ‘Numinose’. ‘두렵지만 황홀한’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그가 폭주를 즐기는 이유라고 했다.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나 삶이 주는 지루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니까. 역시 오랜 친구인 술은 한번에 마시는 양은 못 줄인 대신 술자리를 많이 줄였다고 한다. “얼마나?”라고 물었더니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고 답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빼고 마신다”는 얘기였다. 위장이 좋지 않은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 함께 들른 칼국수 집에서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김치를 물에 말갛게 헹궈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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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산울림 공연 모습 |
30주년을 맞은 산울림은 7월 5일과 6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념콘서트를 연다. 창훈씨는 미국 CJ푸드 상무, 창익씨는 캐나다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6월 27일에나 귀국한다. 김창완은 “이번엔 후배밴드와 한데 어우러지는 무대로 꾸밀 예정이고, 신곡도 들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때 젊음의 아이콘이었으나 어느덧 세월과 함께 지천명을 넘어선 김창완. 갈 길보다 지나온 길이 더 긴 그에게 ‘인생’에 대한 소회를 물으니, 그는 또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인생은…” “인생이…” “뭐랄까…” 한참을 머뭇거렸다.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그 끝에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수많은 사건이 나라는 현재를 지나가는 것이에요. 어쩌면 스스로 자족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것은 어떤 가치를 부여하거나
부여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게 아닐까요? 가치를 초월해 있는 거요. 아! 살다보면 누구나 운명론자가 되는 것 같아요.”
[뉴스메이커
박주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