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근을 위한, 양동근에 의한 <닥터 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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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목드라마 <닥터깽>이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한동안 스크린에서만 활동하던 개성파
배우 양동근이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네 멋대로 해라>의 박성수 감독과 4년 만에 안방 극장에서 재회했고 여기에
<신입사원>의 한가인이 결혼 이후 첫 복귀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방영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사실
시청률은 기대보다 저조했다. 최근 평일 심야 시간대 방송되는 미니시리즈와 트렌디 드라마들이 전반적으로 침체 현상을 겪는 가운데, <닥터
깽>은 방영 내내 SBS <불량 가족>에게 밀려 10% 내외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최종회 성적은 TNS 미디어
리서치 조사결과 13.4%로, 방영 초반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양동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귀여운 달고
비록 시청률 면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 작품은
아니었지만 <닥터깽>은 탄탄하고 신선한 이야기 구조와 개성 있는 배우들의 호연,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인상적인 명장면들이
어우려져서, 충성도 높은 고정팬들을 거느린 마니아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닥터 깽>은 결국 양동근을 위한,
양동근에 의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미남 같은 외모나 뛰어난 스타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항상 개성 있는 연기와 캐릭터 소화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온 이 전도유망한 젊은 배우의 매력은 연기파 배우들이 밀집한 <닥터 깽>에서도 단연 빛난다.
양동근에게는 언제나 마이너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별 볼일 없는 삼류 인생이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캐릭터 위로
미워할 수 없는 인간미를 불어 넣는 것이 양동근만의 매력이다. 여기에 얼핏 진부하고 범속해 보이는 소재를 전혀 다른 시각과 문법으로 풀어내는
박성수 감독의 감수성이 어우러지며 화학 작용을 이끌어 낸다.
<닥터 깽>의 어설프지만 순수한 감수성을 지닌 조폭
'달고'는 4년 전 양동근을 성공적인 성인 연기자로 자리매김시킨 <네 멋대로 해라>의 소매치기 고복수의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다.
사회의 양지에 섞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발버둥치던 삼류 인생들이 '사랑에 눈을 뜨며' 세상과의 소통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은 <네
멋대로 해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한부 인생의 살아가는 소매치기나 삼류 조폭, 가난한 뮤지션, 해외 입양아, 성공을
꿈꾸는 에로 배우 등 박성수 감독의 작품 속에서는 현실에서건 드라마에서건 도저히 '주인공'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 비주류적인 인물들을 오히려
중심에 세운다. 이들은 얼핏 보면 비정상에 가까워 보이는 사회 부적응자들이지만, 그들 또한 지켜나가야 할 자신만의 꿈이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 소박하지만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소시민들만의 희망과 가치를 예찬하는 것이 박성수 감독의 휴머니즘이다.
시큰둥한
표정, 어눌한 말투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달고의 능청스러움은 전적으로 양동근이라는 배우의 매력과 분리해서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극중 달고가
냉철한 석 검사(이종혁)를 상대하며 보여 줬던 천연덕스러운 '표정 연기 지도' 장면이나 죽은 아버지를 추억하며 부르던 거리에서의 돌발적인 '랩
퍼포먼스', 언제나 뻔뻔하던 달고가 동료를 잃어버린 자책감에 입원실 앞에서 홀로 슬픔을 가누지 못하며 흘러내리던 눈물 연기 등은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는 양동근의 팔색조 같은 매력을 잘 보여줬다.
극의 히로인으로 털털하면서도 억척스러운 매력을 보여줬던 한가인의 연기 변신과
안방극장의 개성파 조연으로 자리잡은 이종혁과 오광록, 김혜옥, 조미령, 박시은 등 신구 연기자들의 적절한 호연과 앙상블도 <닥터
깽>을 한층 빛낸 매력이었다.
그러나 <닥터 깽>은 양동근과 박성수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 극적 갈등 구도와
코미디 같은 대중적인 요소가 강화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만큼 높은 반향을 얻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을 남겼다.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하느라 중반부부터 개성 있는 봉 의원과 도 변호사 같은 조연 캐릭터들의 역할이 어정쩡해진 점이
눈에 두드러졌다.
또 '열린 결말'로 깊은 여운을 남겼던 <네 멋대로 해라>나 <아일랜드>에 비해 <닥터
깽>은 클라이맥스부터 다소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선회하며 후반부 흐름이 다소 진부했다는 점도 옥의 티였다. 양동근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였지만 조연급 캐릭터들 역시 나름대로 독립적인 개성과 에피소드를 부여받았음을 감안할 때, 마무리의 뒷심 부족이 극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가져온 점이 아쉬웠다.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2006.05.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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