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여주인공이 세졌다
시대가 강한 여성을 부르는 것일까. 장희빈이나 혜경궁 홍씨, 장녹수만 해도 안 그랬다. 이들을 다룬 사극이 애초에 궁중암투나 내명부 세력싸움에 치중한 탓이 크지만, 역대 우리 사극의 여주인공은 질투의 화신이거나 한 많은 순종의 여인이거나 했다. 아니면 이방원의 질풍노도를 그저 옆에서 바라만 봐야 했거나.

그러나 이제는 거의 전사 내지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 또 변신했다. 장안의 화제작 MBC '주몽'의 소서노(한혜진)가 대표적이다. 지난 22일 3회에서 투구를 쓰고 말을 탄 채 등장한 소서노는 '신돈'의 노국공주에 이은 또 한 명의 여장부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소서노는 소국연맹체인 졸본의 대장군이자 거상인 연타발의 딸. '상도'가 유행시킨 그 '행수'를 맡았을 정도로 이미 아버지는 물론 주위 뭇 남성들에게서도 리더십과 전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여기에 신의를 저버린 상대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죽여라"라고 단언해버린 냉철한 여인이 바로 소서노다. 처음 만난 주몽(송일국)에게 발길질과 채찍질을 한 터프함도 잊을 수 없다.

종영한 '신돈'의 노국공주(서지혜)와 기황후(김혜리)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위왕의 딸로 사랑한 남편 공민왕(정보석)을 위해 원을 저버리는 대담함까지 갖췄다. 이국땅인 고려에서 보여준 그녀의 서슬퍼런 군기잡기는 웬만한 남성 저리 가라다. 기황후 역시 '센' 화장만큼이나 거의 악녀 내지 여장부 수준으로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했다.

이밖에 '해신'의 자미부인(채시라)은 기존 순종가련형 여인에서 벗어나 최수종을 무너뜨리려는 팜므파탈로 변신,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인삼 불태우기 신이 지금도 아른거리는 '상도'의 경우에도 다녕 아씨(김현주)는 이재에 밝은, 똑 부러지는 여행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같은 센 사극 여주인공의 선두주자는 '대장금'의 장금(이영애)이 아닐까.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 일어났던 그녀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궁중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자 했으나 모함에 빠져 궁에서 쫓겨나 노비가 됐을 때, 시청자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주관아로 다시 의술에 도전, 조선 최고의 의녀가 된 장금은 그야말로 입신양명, 칠전팔기의 덕목을 두루 갖춘 철의 여인 그 자체다.

이같은 사극 여주인공의 변신은 물론 시청자들 입맛과 사회 변화에 따른 것이다. 커리어우먼이 득세한 이 시대에, 아무리 TV 사극이라지만 더이상 눈물과 한숨만 짓는 여성상을 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또한 '한명회'에서 한명회가 보여준 남성 중심의 음모술수, '용의 눈물'에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부자간의 피 튀기는 기싸움 등 기존의 '사극=남성 드라마' 공식만 갖고는 시청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방영될 '연개소문'과 '대조영', '태왕사신기'에서는 또 어떤 강한 여성을 보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사진설명=왼쪽부터 '주몽'의 소서노와 '신돈'의 노국공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관명 기자]  






2006-05-24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