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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수 적은 남자
말 한마디라도 숙고한 뒤 발설하는 그와 함께 일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종종 과묵함은 화가 난 것처럼 비치기 십상이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동료 연기자를 답답하게 할 법하다. 마침 옆에 앉아 있던 후배 연기자 원기준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데 워낙 말수가 없어 망설여졌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말보다는 행동으로 정을 표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분장용 수염을 떼기 위해 휘발유를 얼굴에 문지르며 괴로워할 때 송 선배가 불쑥 저자극성 약품을 건넸어요. 말이 없는 대신 이렇게 행동으로 배려해 줍니다.”
후배의 평가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기만 할 뿐이다. 그가 말을 아끼는 것은 수줍어하거나 내성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솔직히 요즘 사내다운 사내가 드물잖아요.” 꽃미남과 나긋나긋한 남자가 대세인 시대에 젊은 탤런트가 한 말치고는 의외다. 그는 남성의 듬직한 면모가 없어지는 세태가 아쉽다. 마초(Macho)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연약하고 의존적인 남성이 많아지는 게 못마땅하다. 그가 보인 과묵함과 의젓함은 고전적 미덕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仁)에 가깝다’라는 공자 말씀이 있다.
# 나는 장군의 외증손자다
이번 배역을 두고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역이라고 만족해 했다. 어머니 김을동씨도 기뻐했다고 한다. 사실 항상 핏줄을 의식하는 그에겐 대하극의 주연을 맡은 감격 이상이다. 그는 청산리 전투에서 위대한 승리를 세운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다. 그래서 고구려 시조인 주몽 역을 맡은 것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주몽 역을 맡은 건 운명입니다. 지난해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시에 설립한 ‘한중 우의공원’에 갔을 때 기념품 가게에 비치된 활에 유독 눈길이 가 구입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주몽’으로 낙점된 걸 알았어요. 우연하게도 주몽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놀랐습니다”
그는 항일전을 승리로 이끈 선대의 공헌, 여러 작품을 통해 다진 연기력 등 모두가 필연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그간의 연기 경력도 이번 배역을 위한 부수적 절차로 부쳐버린다. 지금껏 쌓아온 연기력과 인지도가 없었다면 주몽 역을 맡지 못했을 거라는 설명이다. 자리를 뜨기 직전 그는 정색하며 “고구려가 없으면 지금의 코리아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인의 자존심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언뜻 고리타분한 민족주의에 기댄 홍보로 들릴 법한 발언이다. 그런 오해를 피하게 한 건 인터뷰 내내 보인 그의 진지함과 역사의식이었다.
[세계일보 나주 심재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