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그가 진정 연예계 큰별인 이유는?
역시 거성(巨星)이다. 그의 이름 석자의 함의는 광대하다. 한국 대중문화사를 관통할 때 그의 이름을 피해가기란 불가능하다. 최불암(66),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긴장과 설렘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는 의미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언어는 늘 삶이라는 드라마의 진중한 대사가 되고, 그의 행동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액션 연기이기 때문이다.

‘국민배우’ 라는 단어조차 그를 형용하지 못할 만큼 그의 연기의 폭과 존재의미는 크다. 만약 텔레비전 연기자중 단 한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최불암일 것이다. 하루에도 연예계에는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상황에서 그는 한 자리에서 40여년 한결같이 빛을 발하는 큰 별이다. 그의 빛을 보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은 용기를 얻고, 좌절에 빠진 사람은 위안을 받으며, 절망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단순히 연기자를 넘어 삶의 좌표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8일 시작한 MBC주말 드라마 ‘진짜 진짜 좋아해’촬영직후 만난 최불암은 여전히 우리시대의 아버지의 권위가 배어났다. “대통령역인데 현실정치에서의 대통령과 전혀 다른 색다른 느낌의 대통령을 그려야하는데 모델이 없어 순전히 극본에 대한 분석과 상상력을 동원해 캐릭터 설정을 하고 있다. 아버지 같은 대통령 그러면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그런 모습으로 상정했다”며 이번 드라마의 배역 연구에 대한 말로 시작했다.

최근 끝난 MBC 드라마‘달콤한 스파이’에선 그가 난생처음으로 건달 보스역을 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드라마‘궁’에선 대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단 1회 출연을 했다. 최불암의 이름석자와 안어울리는 배역과 출연횟수다. “배우는 어떤 역도 소화해낼 줄 알아야한다. 하지만 내가 맡는 배역들은 공통점이 있다. 건달이든 대통령이든 우리 한국의 아버지상이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세우지 않으면서 늘 한자리를 지키며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다. 늘 내가 맡는 배역은 한국인의 모습, 한국인으로서 잃지 않아야할 한국인상의 성격이 짙다.”

최불암은 이어 ‘궁’에 1회만 출연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을 건넸다. “연기자가 꼭 필요하다면 1회의 짧은 분량도 소화해내야 한다. 그것이 연기자의 도리이자 숙명이다. 요즘 젊은 신세대 스타들은 예쁘게 그리고 빛나는 주연만을 맡으려고 하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태도이다”

그는 연기자의 좌표이자 배우가 지녀야할 몸가짐을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최불암. 그는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 꼭 목욕재개하고 머리와 몸단장을 한다. 이것은 내가 시청자들에게 안방에 초대받기 때문이다. 당연한 도리다”고 말했다. 숙연함마저 들게 하는 연기자의 태도이다.

이러한 연기자의 진정성이 40여년동안 최불암이라는 연기자에게 수많은 시청자가 사랑을 쏟게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중앙고 2학년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에 연출 전공으로 입학한 그는 연기전공 학생들이 맡기를 꺼리는 노인 역을 자주 맡다 주위에서 그의 연기를 보고 연기를 하라는 말을 듣고 1960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 연출, 연기를 공부를 했다. 오늘의 최불암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최불암은“원래는 연출을 하려고 했는데 연극 한편을 준비하다 노역을 맡을 사람이 없어 어쩔수 없이 연기를 했는데 당시 연출자가 연출보다는 연기가 맞는 것 같다며 연기를 권했다. 당시만 해도 나처럼 눈이 적고 평범한 얼굴은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 최무룡 선생님이나 신성일 선배같이 잘 생겨야 배우를 하는 줄 알았다”며 웃는다.

아무도 맡기를 꺼려하는 노역을 그는 기꺼이 하는 그런 연기자의 출발을 보였다. 국립극단에서 연기생활을 하던 중 KBS텔레비전 연기자로 데뷔한 1967년 ‘수양대군’에서도 그는 김종서 역으로 노역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 일곱이었다. 그는 KBS로 간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고의 인기 여배우였던 현재의 부인 김민자(64)씨를 만나기위해서다. “내 눈이 적고 그래서 배우자는 눈이 크고 그랬으면 했는데 우연히 김민자씨가 나온 드라마를 보게됐어. 한눈에 반했지. 당시 KBS에서 탤런트로 활동하던 김민자씨를 만나기위해 KBS공채 6기로 들어갔지. 김민자씨가 공채 3기니 선배인 셈이야.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시집온 것이 고마울 따름이지. 하지만 두사람이 함께 한 작품은 ‘흙’등 두작품 밖에 안돼. 함께 하니 힘들더라구”

젊은 날 그는 노역을 주로 했다. 빛나는 역은 아니지만 정말 필요한 배역이라면 기꺼이 그는 노역으로 분장해 시청자의 눈을 사로 잡았다. 여기서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1999년 5월 26일 단국대 학생극장에서 최불암의 모습이다. 연기생활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시트콤(점프)에 도전해 웃음 사냥에 나섰다. 그 오랜 경륜의 대연기자도 긴장이 됐던 지 담배를 연신 피웠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자 대사를 놓치고 연기에 힘이 들어갔다. 지나가던 홍진경이 한마디 던진다. “최불암 선생님도 NG를 낸 것보고 놀랐어요. 비로소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그도 완벽하지는 않다. 늘 새로운 캐릭터에 긴장하고 자기가 창조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을 방안을 모색한다. 그렇게 노력해왔기에 오늘의 최불암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기와 무관한 연기자의 삶을 지향했다. 모두 신성일 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조연도 단역도 노역도 있어야 하나의 작품이 된다. 최불암은 작품의 완성에 필요한 것이면 그것이 조연이든 노역이든 기꺼이 응했다. 한 시상식장에서 만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선생님, 꽃 같은 20~30대에 멜로 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으셨어요?” 최불암은 “연기자는 사람들의 진실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기의 기본기에 충실하고 캐릭터에 혼신을 다해야지. 물론 멋진 캐릭터를 맡고는 싶지 그런데 성실한 것이 더 우선 이지”라고 답한다. 원론적인 것이지만 그의 말이 더욱 힘이 있어 보이는 것은 그는 무대에서, 브라운관에서 그렇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MBC에 새 둥지를 튼 최불암은 연기 인생에 잊지 못할 두 개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하나는 인기를 얻은 출세작이고, 하나는 평생을 자부심으로 삼을 만한 드라마다. 그는 이 두 드라마에 인생을 다 바쳤다는 표현을 한다. ‘수사반장’(1971년 3월 6일~1989년 10월 12일)과 ‘전원일기’(1980년~2002)이다. ‘전원일기’는 1,000회를 넘어 20년 넘게 방송됐다. 30대이던 때 그는 40대 수사반장인 박 반장을 맡아 세간의 화제를 뿌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수사반장’이 방송될 때 순박했던 시청자들은 방송국으로 사건 해결을 직접 의뢰해 올 정도로 사실성이 높았다. 박 반장은 늘 약자와 소외된 자의 편에 서는 캐릭터로 시청자와 함께 해 연기자로서 가장 큰 덕목인 친밀감을 대중의 가슴에 심어줬다.

2001년 3월 4일 1,000회를 맞은 ‘전원일기’ 기념식장에서 필자는 본의 아니게 ‘전원일기’를 첫 집필했던 극작가 차범석, 12년 동안 극본을 쓴 김정수, 주연 최불암, 김혜자에 이어 축사 한마디를 하게 됐다. 필자는 축사에서 “ ‘전원일기’는 농촌현실을 외면하는 드라마,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는 비판을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 있는 드라마다. 우리가 지켜야할 한국적 정서가 녹아있고 사랑과 희생의 아버지가 있고, 그리고 따뜻한 가족이 있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가도 변함없이 맞아주는 고향의 느티나무가 바로 ‘전원일기’ 다.

‘전원일기’는 보는 드라마가 아니라 느끼는 드라마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당부를 했다. 영국의 ITV가 개국과 함께 40년 넘게 소시민과 노동자의 일상을 다룬 시추에이션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가 방송하고 있는데 ‘전원일기’가 한국판 ‘코로네이션 스트리트’가 됐으면 한다고.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지. 두 작품은 죽을때까지 못잊을 거야. 두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었지.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말하는 것을 들을 때에는 가슴이 뭉클하다.”

‘전원일기’는 이같은 드라마적 의미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 김회장은 최불암과 분리할 수 없게 만든 캐릭터로 작용했다. 최불암이 우리 정서에 부합하는 아버지의 이상형이라는 인식을 깊게 심어줬다. 우리는 이상적인 아버지 상을 말할 때 ‘전원일기’의 최불암을 조건반사 적으로 이야기한다. 말없이 등을 두드리는 선 굵은 사랑, 노여움이 치솟아도 헛기침 한번으로 대신하고 몸으로 가르치는 부정, 문득 문득 잔정을 내보이지만 결코 위엄을 잃지 않는 아버지, 자식을 위해 목숨마저 버리는 희생이 최불암에 의해 구현되는 김회장에 녹아 있다. 우리는 김회장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한다.

최불암은 “김회장처럼 살지는 못했지만 ‘전원일기’ 속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을 맞으면 행복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애착을 보인바 있다. “김회장은 걸음걸이, 구부정한 자세 등 모두 연구를 해 내스스로 만든 캐릭터다. 의상과 분장도 직접 했다. 방송사 수위들이 ‘전원일기’ 녹화날을 맞추는 거야.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정문에 들어설 때부터 ‘전원일기’ 녹화 날에는 김회장의 자세를 하기 때문에 안다고 말해. 그만큼 ‘전원일기’에 최선을 다했어”

최불암은 ‘전원일기’를 인위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은 감동과 감성이 묻어나는 우리의 드라마라고 규정한다. “요즘에는 너무나 자극적인 드라마만 나오는 것같아. 사람 냄새가 나는 드라마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데....”말꼬리를 흐린다.

최불암은 ‘전원일기’를 통해 자신도 아버지의 도리를 배웠다고 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모델이 없었어. ‘전원일기’를 하면서 아 아버지는 이런거구나하는 것을 배웠지. 아들(35)과 딸(29)을 두고 있는데 이애들을 키울때 ‘전원일기’의 김회장처럼 키웠어. ‘전원일기’는 나에게 인생도 가르쳐준 드라마지”라고 말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전원일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준다. “‘전원일기’녹화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교수로 있는 친구부부가 녹화장을 찾아왔어. 한복을 입은 미국인 며느리와 함께 왔어. 이 며느리가 김혜자씨와 내앞에서 큰 절을 올리며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거야. ‘전원일기’를 보고 배웠다더군. 정말 감동이었어. 교포분들이 ‘전원일기’를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후에 들었어”

그는 연기외에 한국복지재단, 웰컴투코리아시민협의회 등 복지관련과 시민단체 활동을 한다. KBS ‘좋은 나라 운동본부’진행도 맡고 있는 최불암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어른의 역할과 아버지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 그런때문인지 사회가 점점 혼탁하고 각박해져가. 어른과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아야하는 것 같다”고 강조한다.

아들은 출가시키고 부인 김민자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최불암은 “아내와 영화함께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드라마 녹화 없는 날에는 책을 보거나 관여하는 단체 일을 본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그는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상을 드라마에서 그려 나가고 싶다. 시청자들이 안방으로 초대해주는 그날까지 연기를 하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지”라고 말한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 ‘전원일기’의 김 회장 그리고 ‘그대 그리고 나’에서의 캡틴 박 등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통해 최불암은 우리에게 감동과 아버지상을 선물했다. 그의 연기가 일상성에 천착한 것이었고 삶의 진정성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연기자 최불암,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한국 대중문화사의 페이지는 더욱 풍부해졌고 그로 인해 고향,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연예계의 거성으로 여전히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는 최불암(위쪽). 20여년 출연한 '전원일기'의 최불암(가운데), 최불암의 최고의 인기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수사반장'(아래쪽). 사진제공=마이데일리 사진DB, MBC]


[마이데일리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2006-04-11 (0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