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점령한 '어린신부' 뭘해도 OK

‘어린 신부’들이 브라운관을 점령했다. 언론은 만혼(晩婚)이니, 저출산이니 야단법석이지만, 드라마에서는 교복 입은 여고생 신부들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남편들도 동갑내기 고교생부터 대학생 오빠, 18세나 나이차가 나는 아저씨까지 다양하다. 영화 ‘어린 신부’ 이후 왜 뒤늦게 TV에서 ‘어린 신부’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신부' 드라마

MBC 일일연속극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열아홉 ‘날라리’ 여고생과 서울대 법대생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공부는 못해도 명랑한 성격의 부잣집 막내딸인 극중 서은민(이영아)은 고3 열아홉 나이에 가난한 고학생 김태경(홍경민)과 결혼해 점차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가장 먼저 브라운관 속으로 ‘어린 신부’를 불러낸 KBS 2TV 일일 아침드라마 ‘걱정하지마’는 엄마의 동창생과 결혼하는 고교 졸업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건축가로 성공한 미혼모 조미연(김성령)의 딸 조은새(이영은)는 대학에 가라는 엄마의 바람을 저버리고, 재수 대신 18세 연상의 송세찬(윤다훈)과 결혼하는 발랄한 여학생으로 극을 이끌고 있다.

서기 2006년 대한제국이 온존해 있다는 가상 하에 황태자비가 된 철부지 여고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궁(宮)’은 열아홉 동갑내기 부부의 티격태격 결혼생활을 그리며 가장 직접적으로 ‘어린 신부’ 신드롬을 부추기고 있다. 배경이 황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통신ㆍ학원은어로 점철된 이들의 일상은 캐릭터의 리얼리티에 가장 충실한 편이다.

'어린 신부' 열풍 왜

일반적으로 이 같은 열풍을 분석하는 일반적인 시각은 소녀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뜻하는 ‘롤리타 신드롬’이다. 하지만 요즘 부는 어린 신부 열풍은 그것과는 맥락이 다르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려졌던 기존 드라마의 여성들과 달리 오히려 실수투성이의 평범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가벼움이 시대정신이 된 시대, 20~30대였다면 나잇값 못 한다고 욕을 먹었을 캐릭터들을 10대로 ‘위장’해 여성들의 ‘철이 없고 싶은’ 욕망을 투사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여고생이 나오는 기존 드라마들은 어려운 집안 환경에도 불구하고 밝고 똑똑한 ‘똑순이’ 같은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던 데 반해 요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세상 물정 모르고 발랄한 철부지들”이라며 “여고생 자체라기보다는 실수투성이의 철부지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여고생을 등장시키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아무도 못 말려’의 정현정 작가도 “기존의 전통적인 결혼관에서 탈피해 부부 중심의 새로운 결혼 방식을 보여주고 싶어 여고생의 결혼을 설정했다”며 “만혼의 부부들을 통해 신세대적 결혼 생활을 보여주면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반해 어린 신부는 귀엽게 봐준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10대 여학생들이 문화콘텐트를 소비하는 중심 수요자로 부상하면서 이들의 욕구와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10대의 결혼이 도입됐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궁’은 만화 원작자인 박소희씨가 고교 1학년 때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어서 10대의 판타지가 생생하게 반영돼 있다.

‘걱정하지마’의 김사경 작가는 “배우들이 점점 어려지면서 드라마 주인공도 점점 어려지는 측면이 있다”며 “전에는 스물 다섯은 돼야 결혼하는 것으로 그려야 상식적이었지만 기존의 상식이 많이 깨지면서 드라마에도 자유스럽게 다양한 관계들이 도입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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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5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