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 ‘부활’에서의 연기와 ‘늑대’에서의 연기

엄태웅(31)이 주연 자리를 처음 꿰찬 건 드라마 ‘부활’에서다. 연극무대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점 외에도 직전 드라마인 ‘쾌걸춘향’에서 ‘넘버2맨’ 변학도 역을 그럴듯한 악역으로 소화해낸 게 발탁의 배경이었다.

치밀한 대본으로 완성도를 높인 ‘부활’은 엄태웅을 위한 드라마였다. 쌍둥이 형제인 동생(유신혁)이 형(서하은)으로 오인받아 살해당하자, 형이 동생으로 위장해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은 이 드라마에서 엄태웅은 1인2역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신혁으로 살 수밖에 없는 하은이 만들어 내는 사무치는 분노와 원한, 내면적 고민과 혼란에서 오는 고통의 울림은 그에게 인간적 깊이를 부여했다.

엄태웅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연인(한지민, 극중 은하)과의 뼈아픈 이별을 담보로 하는 비극적 사랑은 절절하다 못해 시청자를 안타깝고 괴롭게 했다. 엄태웅의 빼어난 연기로 ‘부활’의 사랑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트렌디형’ 감성 외에도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도 따뜻함을 가지게 만드는 힘이 있게 만들었다.

엄태웅은 때로는 자신만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으로, 때로는 나약한 인간의 얼굴을 한 집행관이라는 얼굴로 나타나 ‘부활’이라는 인간적인 스릴러를 보는 재미를 더하곤 했다.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엄태웅의 탁월한 연기는 ‘부활’과 잘 어울려 무수한 ‘부활패닉’들을 양산했다.

시종일관 잘 짜여진 ‘부활’과는 달리 ‘늑대’는 전반적으로 산만한 드라마다. ‘부활’과는 180도 바뀐 엄태웅의 배역은 과장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자뻑왕자’다. 그의 연기 변신은 “엄태웅에게 저런 귀여운 모습도 있구나”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오버맨’들로 넘쳐나는 드라마 ‘늑대’에서 엄태웅의 과장된 연기는 때로는 빛을 바래는 수도 있다. 눈을 치켜뜨고 건들거리는 모습이 어색할 때도 있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이 과잉으로 보일 때도 있다. 몇가지 조건이 엄태웅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선 엄태웅은 ‘날라리’ 연기를 펼치기에는 나이가 조금 많다.

또 지금과 같은 날라리를 연기하려면 차라리 트레이닝복을 입은 ‘삼류건달’이라면 잘 어울렸을텐데, 상류층 자제라 그럴듯한 이미지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엄태웅에게는 정적인 연기(‘부활’)가 동적인 연기(‘늑대’)보다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조금 모자란듯 하면서 유머러스하게 보이는 ‘엄태웅’ 캐릭터와 무게를 잡으면서도 왠지 어두운 분위기의 바람둥이 ‘문정혁’ 캐릭터를 바꿨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극중 엄태웅이 지닌 배경은 매우 진부하다. 정신 상태가 엉망인 부자집 아들이며 결혼 문제로 형이 자살해 아픔을 지닌 인물이다. 엄태웅이 진부하고 어설픈 캐릭터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창조해 낼지는 2회까지만 보고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2006.01.18 (1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