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신돈>에 대한 젊은층의 열광에대해, 작가와 PD는 물론이고
연기자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요즘 <신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신돈>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적 코드가 녹아있다. 가장 고급한 예술이나 문화의 정수라 할 장르들의 코드에서부터, 젊은이들이
열광한 B급 문화의 매니악한 코드까지, 공통적인 정서를 자연스럽게 빛나고 있다.
세상의 지옥으로 길 떠나는 신돈과 원현 두 남자의 방랑기는 마치 그리스신화 같은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을 보여주며, 조카를 죽였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공민왕은 맥베스처럼 고뇌하고 절규한다. 그 죄의식은 오히려 불교적이라기보다 서구적인 기독교 관념 같은 느낌도 나고, 또한
희곡적이며 연극적이다.
그런가 하면 젊은층의 문화적 코드로 바라볼 때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기황후는 근래 우리 드라마에 등장한 인물들 중 가장 근사한 악역으로,
자기만의 처소에 외떨어져 살며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이, (정치적 판단을 통하지만) 마법처럼 권력을 행사한다. 기묘한 악기 소리가 징징
울려대는 그녀의 처소는 마치 마법의 성 같다. 재미있는 장치다. 그러면서도 상처 입은 고려 소녀의 내면도 간직한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원현과 신돈은 이미 퀴어코드로 젊은층에게 회자되고 있다. 퀴어는 ‘야오이’라는 B급 문화의 한 장르를 형성하고 있을 만큼
문화적, 그리고 장르적으로 이미 하나의 코드가 되어버린 상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돈이 얘기하고자 하는 테마일 것이다. <신돈>이 결국 바라보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넓은 세상에 모래알 같은 처지로 태어난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말이다. “부처님도 꿈을
꾸신 게야. 천년을 기다렸는데 다음 천년을 기다리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큰스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보듬고 살아가고 있는 자의
말이다.
보통 사극들이 권력을 향한 욕망에 관해 그려왔다면, <신돈>은 그러한 욕망이 왜 생겨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부터 던지고
들어간다. 그것은 분노이고, 그 분노는 타인의 고통을 제 것처럼 아파하는 신돈의 사랑으로부터 왔다.
자아와 타자의 관계, 고통과 상처를 보듬는 인간의 구원의 문제로부터 출발한 <신돈>은 그 주제적인 측면에서 심지어,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타인이라는 다른 우주와 나의 우주가 맺어질 수 있는가. 상처받기 두려운, 온몸에
<에반게리온>의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는 일본문화의 인기라던가 저패니메이션의 기술적 우월성 같은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 애니메이션이 가진 테마를, 저마다 자기 병처럼 깊게 앓고 있던 젊은이들이 당시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해서 고통 받던 가엾은 청춘들은
그 치유의 실마리를 이웃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젊은층의 지지를 받는 <신돈>은 드디어 우리 젊은층과 기성세대가 어떤 접점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운동권 세대들도, 운동권 세대를 불온하게 바라보았던 기성세대도, 또는 운동권 세대를 낡게 생각한 젊은 세대도, 신돈이 타인의 고통에
아파하는 모습에는 똑같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세대를 초월해서,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것이고, 진실한 것은 진실한 것이다. <신돈>이 조금이라도 세대간 공감과 동질성을
찾아낼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가치는 길이 남으리라.
박현정 드라마몹 에디터
2005-12-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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