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릉선수촌`, 힘을 뺀 드라마의 역설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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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멋을 내거나 폼을 잡지 않아도 멋이 나는 드라마였다. `이 죽일
놈의 사랑`처럼 잔뜩 폼을 잡지 않아도, 모든 불행의 요소를 다 집어넣은 `장밋빛인생`의 맹순이처럼 캐릭터의 전형성이 없어도, `프라하의
연인`처럼 명대사를 남발하지 않아도 저절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드라마였다.
총 4주간 8화로 막을 내린 MBC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극본 홍진아ㆍ연출 이윤정)은 힘을 뺀 드라마의 역설적 힘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마루(김별)와 민기(이민기), 수아(최정윤)와 동경(이선균)의 첫만남에서 시작된 스토리가 19일 마지막 장면에서 수아와
민기가 연인으로 남으며 막을 내릴 때까지 `웰메이드 드라마`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멜로 드라마인 `태릉선수촌`은 결정적
국면에서의 대사조차도 멋을 부리지 않았다. "오빠,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와 같은 유치찬란한 대사가 없다는 얘기다. 수아가 무식하고 저돌적인 저
놈(민기)이 뭐가 좋냐는 동경의 최후통첩에 답하는 대사를 보면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는 작가의 내공을 읽을 수 있다.
"그래, 민기는
모자라는 얘죠. 불안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 나랑도 많이 싸워요. 나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 그런데 난 그 `긴장`이 좋아.
오빠(동경)처럼 `편안`하지는 않지만 늘 기대가 돼요. 두근두근해요."
대다수 트렌디 드라마는 이쯤에서 불치병이 등장하고 주인공의
자살씬 같은 강력한 코드로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태릉선수촌`은 이 같은 작위적이고 서사적인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 이상의 효력이 발생한다.
설정-갈등-해결 과정이 명확하게 완결돼 있지 않은 점이 오히려 시청자에게는 밋밋한 요소로 작용해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했는지는 몰라도(시간대만
옮겼다면 두자리 수 시청률은 충분히 올렸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그런 불친절함이 오히려 흡인력을 발생시키는 요소다.
`태릉선수촌`의 또 하나의 미덕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이다. 한국 드라마는 전문직 종사자의 일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갈등을
충분히 담지 못한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일`은 실종돼 버려 결국 전문직종 사람들이 벌이는 멜로드라마로 전락하고 만다. 의학 드라마는
`ER`처럼 되지 않고 젊은 의사들의 사랑이야기에 그치며 하버드 대학생의 얘기를 담는 드라마도 학교안만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랑의 결실을 맺는
수준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니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들이 재벌과 폭력배 얘기에 신데렐라 스토리를 집어넣고, 이것도 지겨워지면 같은 구도에 평강공주
모티브를 차용한다.
`태릉선수촌`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하면서도 비인기 `개인`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의 생활상을 그런대로 잘 그렸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태릉선수촌을 100번 이상 찾아가 취재한 적이 있는 기자로서는 주인공 4명에 실제 선수 이름이 대입될 정도로 그들만의
생활상을 잘 재현했다.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베스트홍(민기) 선배의 얘기며, 세계 기록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수영선수 동경이 앞날에 대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 등은 꽤 리얼리티를 높여준다.
베이징올림픽을 1년 앞둔 이들은 모든 걸 유예한 채 금메달이라는 목표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안한 심리상태와 두근두근하며 저절로 찾아오는 사랑 감정만을 완전히 유예시킬 수 없다. 천재선수로 각광받다가도
갑자기 슬럼프에 빠져 좌절하기도 하고, 부상의 위험을 떨치지 못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결국 선수복을 벗고 다른 분야로 전향하기도 하고
지도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런 그들만의 고민거리와 사랑의 감정은 보편적 공감을 자아냈다. 스포츠 선수들의 얘기지만 그들의 생활상에 치중하지 않고
선수들의 도전과 슬럼프 그리고 사랑을 섬세하게 그린 것은 결국 우리 젊은이들의 고민으로 화했다.
`대장금`이 인기를 끈 것은
권력싸움을 일삼은 기존 사극과는 달리 음식이라는 새로운 미시적인 소재로 스토리를 구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요인은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 나를 모함하고 있다는 불안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현대인의 심리에 있다고 본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그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양산되는 형국이다. 시청자들은 매번 주위에서 씹어대 함정에 빠지지만 기지로 해결하고 마는 장금이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공감하고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태릉선수촌`도 4명의 선수 얘기가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슬럼프와 불안감은
요즘 젊은이들의 그것과 포개졌다. 운동선수들의 얘기를 통해 요즘 젊은이의 얘기로 발전시킨데 큰 의미를 가진다.
만약 이 드라마가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설움과 고뇌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드라마가 되었다면 얼마나 촌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명의 선수가 힘들때 비맞으면서
진흙 바닥에 뒹굴며 일탈을 감행하는 장면(물방울의 영상미를 보여준 진흙탕씬은 압권이다) 하나로 모든 걸 보여준다.
민기 수아
동경의 안정적인 연기 외에 괴팍하지만 순수한 천재 체조선수 마루역을 잘 소화한 신인 김별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의 사랑은 순수하면서도 아름답고,
귀여웠다.
서병기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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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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