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깔있는 왕의 여자! 색깔 있는 카리스마! 그게 바로 김혜리표!

드라마 '신돈' 서 기황후 열연…섹시·요염 왕비 파격 변신
 

매부리보다 훨씬 길고 뾰족한 쇠손톱으로 양귀비 액을 콕콕 찍어 먹으며 기묘한 표정을 짓는 여인 기황후. 금색 실로 수놓은 빨간 비단옷이 그의 몸을 감싸면서 섹시함과 신비로움을 넘어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뿜어 나온다. 이제까지 어떤 사극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캐릭터다.

 

MBC TV 주말드라마 <신돈>(극본 정하연, 연출 김진민)의 김혜리가 다시 태어났다. <대장금> <서동요>의 이병훈 PD가 서구적 마스크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사극을 못할 거다'라고 호언장담했던 김혜리(36)는 드라마 <조광조> <왕건> <왕의 여자>에 이어 벌써 네 번째 왕비 역을 하고 있다. 2003년 영화 <천년호>에서는 진성여왕 역을 맡기도 해 유난히 사극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한 연기자다.

이번엔 절도 있고 단정한 과거의 왕비와는 또 다른 파격이다. 매혹과 정열의 붉은 양귀비꽃이라고 할까. "사극 전문 배우의 길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벌써 그 길에 들어서지 않았나요."

◎김혜리도, 기황후도 내유외강형!

김혜리는 기황후가 되기 위한 카리스마 연기에 빠져 있다. "사극에서 처음으로 보여지는 기황후라는 캐릭터는 최대한 편하고 요염하면서도 그 속에 강함을 담아야 한다."

자신의 연기가 향후 중국을 무대로 한 사극 드라마의 교과서가 될 것이란 부담감을 안고 있다. 철장갑과 쇠손톱, 기황후가 양귀비액을 찍어 먹는 장면도 제작진과 김혜리가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내 목소리는 사극에서 중저음이다. 기황후를 맡으며 하이톤으로 올렸다. 밤 촬영이 많다 보니 하이톤에 약간 허스키가 가미된다. 공기가 안 좋아 생기는 현상인데, 목소리가 묘하게 들리나 보다. 제작진이 내 촬영 분은 아예 새벽에 잡는다."

이 때까지 옷도 열 벌이나 갈아입었을 뿐 아니라 매번 헤어 스타일도 바꾼다. 공작새 털을 꽂기도 하면서 기황후 머리만 20가지가 넘게 치장했다. 기황후가 치장하고 있을 땐 제작진의 그 누구도 시간 가지고 채근하지 않는다.

"기황후는 굉장히 외로운 여자다. 어린 나이(14살)에 공녀로 팔려가 황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겠는가. 이 인물에 너무 애착이 간다. 인간 김혜리와 기황후는 똑같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많이 탄다. 일해 오면서 나도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기황후가 공녀 제도도 폐지하고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나쁜 여자로 인식되는 점이 안타깝다."

◎사극은 나의 고향

김혜리는 1991년 <조광조>로 사극과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중종의 첫째 부인 신 씨 역이었다. "원래 나는 10회만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림이 좋다는 이유로 끝까지 나오게 됐다. 처음이 왕비라서 그런지 그 다음에도 줄곧 왕비다. 다음에는 땅바닥에도 털썩 주저앉는 천민 역을 해보고 싶다."

한때 사극을 안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왕건>을 끝낸 직후였다. "월드컵 때와 맞물려 붉은 악마도 되고 혹 사극의 이미지를 벗을까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기도 했다. 그 무렵 영화 <천년호> 미팅이 있었는데 그 머리를 하고 나갔더니 감독이 깜짝 놀랐다. 감독은 나에게 진성여왕을 맡길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활동적인 여성인 진성여왕을 연기하고픈 욕심에 사극과 인연을 못 끊게 됐다. "사극은 내 고향인 것 같다. 사극 할 때만큼 편한 때가 없다. 요즘은 퓨전 사극이라 새롭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염려는 없다. 사극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

◎지금은 날아갈 것 같다

김혜리는 지난 일년 반을 회상하면서 못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지난 6월에 돌아가셨다. 연기 시작 때 반대가 심했지만 마지막엔 나를 지지해 주셨다.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사실 내가 가장 안 좋을 때 돌아가셔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연기를 쉬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살아오면서 지난 일년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다. 운이 좋았고 힘들지 않게 왔는데, 지난해에는 더 이상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었다. 일하고 싶은데 일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참 쉽게 살아왔다고 느꼈다. 이제 살아가면서 뭘 못 견디겠나. 지금은 날아갈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스케줄 꼬이면 짜증도 나고 했는데, 이제 일의 행복감을 안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혜리는 "지금은 결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결혼은 의미가 없다. 일이 좋고, 처음 연기하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밀 하나를 던지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극을 하니 힘들어 얼굴은 줄어든다. 대신 움직임이 없다 보니 옷 밑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살이 엄청 붙는다. 고민이다."



일간스포츠 장상용 기자(enisei@ilgan.co.kr)





2005-11-07 (1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