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극을 보면 세상을 읽을 수 있다. 사극을 통해 요즘 지배
이데올로기가 무언인지, 대중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감잡을 수 있다.
역사 드라마의 연속 등장은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욕망에 다름아니다. 하이데거와 가다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나 타자를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해석하려는 사고방식을 취한다.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현상을 가다머는 `영향사`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극이라는 작품도 새로운 의미로 성장할 수 있다.
1996년부터 98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용의 눈물`을 비롯해 `왕과 비` `태조왕건`은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사극이다.
9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대권신화와 성공신화에 물들었던 시절이다.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이 피비린내 나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대권을 잡은 것을 정당화해줬다. 이방원이 결말에 흘리는 참회의 눈물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대중은 알 길이 없다. `왕과 비`에서
조카(단종)를 제거한 세조의 이야기만 있지, 단종의 관점이 없는 것도 시대상을 반영한 한 보기다.
사극은 현실이 불안하고 전망이 불투명할 때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찾아보는 기능을 담당한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준
`불멸의 이순신`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카리스마의 리더십`을 갈구하는 대중의 향수를 읽은 것이다.
한반도를 벗어나 중개무역상으로 동아시아를 거점으로 삼은 장보고의 일대기를 다룬 `해신`은 한류 분위기를 타고 대중에게 스케일 있는
인간형으로 다가왔다.
`대장금`은 사극에서까지 정쟁이나 궁중암투극 등 `무겁고 진지한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시청자의 심리에 기댔다. 음식을 통해 궁중 내
하층민들 중심의 애환과 갈등을 다룬 것은 시청자의 관심이 정치외교사에서 일상사로, 거시사에서 미시사로 옮겨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대장금`의 이병훈 PD-김영현 작가팀이 만드는 `서동요`는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그리면서도 백제의
`태학사`라는 기술 관료 집단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보기술 전쟁까지 다루겠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다. 세계 최초로 사람의 난자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연구에 성공한 황우석 교수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회적 분위기가 태학사를 백제의 찬란한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기관으로 그 중요성을
부여해준다.
오는 24일 시작될 `신돈`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요승(妖僧)의 이미지를 벗고 시대를 앞선 `개혁가`로 그려진다. 고려 말 당시는 몽골에 연결된 권문세족 때문에 개혁이 힘들었다. 천민 출신이지만
아무런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신돈은 공민왕을 도와 개혁을 단행해 권문세족에게 빼앗긴 토지를 농민 등에게 돌려준다. 주위의 모함과 투서 등으로
위기감을 느낀 공민왕에 의해 제거되는 신돈은 현실에서는 패자지만 역사에서는 승자로 떠오른다. 개혁이 화두인 이 시대 분위기와 물려 신돈의 개혁은
힘을 받는 것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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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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