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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TV] 나는 메리가 부럽다

<메리대구 공방전>의 메리보다 대여섯 살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어른인 줄만 알았다. 부모님 손에 하나도 안 기대고 내 학비 내가 대고, 냉장고 박스보다 조금 큰 방 방세 내가 대고, 내 입에 들어갈 먹을 것, 남루한 몸에 걸칠 입을 것 다 내가 대고 그러느라 매달 골머리를 앓아서 내가 그냥 어른인 줄만 알았다. 지금은 안다, 무슨 애를 태워도 스물 두 세살 여자애가 어른일 수는 없었으므로 그냥 생긴 대로 살아도 될 것을... 어른은 어떤 때도 울어도 안 된다며 돈 떼어먹히고 골 아픈 일 당하는 하루하루에도 결코 울지 않고 넘어갔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울고 싶다. 그 때의 나를 향한 어설픈 동정이 아니라 이렇게 울 일이 많을 줄 알았더라면 울어도 흉하지 않은 어린 시절에 좀 더 울었어도 좋았을 것을 괜스레 내 복 내가 찼구나, 하는 기분.

메리가 사는 남산은 내게 너무 불친절했다

 
그 때 나에게는 고등학생 남자친구가 있었다. 특별히 잘생기지도, 특별히 키가 크지도, 특별히 멋있지도 않았고 공부를 잘 한다던가 집에 돈이 많지도 않은, 어디에 가나 발에 치이는 그런 고등학생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아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 아이 때문에 그렇게 불행했고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들을 모두 잊고 말았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황제슈퍼보다 훨씬 더 악독했던 나의 클라이언트들은 꿈이나 연애를 지탱하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하게 나를 놓아두지를 않아서,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나는 메리처럼 남산과 가깝게 살아가고 있고 유기견을 보면 참지 못하고 그냥 주워오고 있지만, 고풍스레 꿩 소리 우짖는 남산은 내게 친절한 곳은 아닌 것만 같아서 - 위장 전입한 친절한 아버지를 둔 이명박의 아들이 노란 교복 입고 리라초등학교 다닐 때나 다정한 곳이었겠지만 - 아니, 실제로 친절한 곳은 아니었다. 카드로 학비를 할부로 결제하고 월세와 광열비를 결제하고 나면 내가 섭취할 수 있는 먹을거리는 3개에 1200원 하는 삼육두유와 3개에 1000원하는 3분 짜장이었다. 그리고 왕십리에 살고 있었던 나는 사라지는 고가도로와 사라지는 이웃들을 바라보며 이명박을 욕했다. 빌어먹을. 참 미운데,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 그 농담 같은 생각은 아직까지 질기고.

아름답지도 상큼하지도 않았던 청춘과 그 애

어쨌건 남자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히려 대구같이 백수에 가끔 치킨이나 사는 남자가 괜찮아 보이고 부러워 보일 정도로, 나는 그 고등학생 남자친구를 미워했고 사랑했다. 그 아이는 바닥이 뚫린 것 같은 위장을 가지고 있어 내가 그걸 채워 주길 바랐지만 청소년 보호법과 부모의 감호 때문에 10시 전에는 언제나 나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낮 동안 죠스처럼, 녀석에게 지갑을 뜯겼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들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아이는 생일이 되었을 때 뭐가 갖고 싶냐고 하자 나이키인지 어딘지의 에어맥스가 갖고 싶다고 했다. 그건 운동화인 것 같았는데, 제일 싼 것이 9만 9천원 짜리였다. 나는 6개월 할부로 그것을 사서 녀석에게 선물했고, 그 녀석은 아침에 학교 갈 때 십오 분, 저녁에 하교할 때 15분만 그것을 신는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의 생일에 15프로 할인을 받아 반에 피자를 두 판 시켜주었다. 녀석은 애들이 다 뺏어먹어서 자기는 못 먹었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일에, 학교에 치인 내가 옷이 사고 싶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걸 보며 니 옷 좀 그만 사라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내 생일에 그 아이는 학교를 하루 빠지고 막노동을 가서 번 돈으로 반지를 사서 선물하며 생색을 냈다. 보석상에서는 이건 만 오천 원이라고 했다.

가난해도 사랑스러운 비결이 뭐니?

그리고 얼마 후, 이별을 통보하자 그 애는 씹어뱉듯이 나에게 남자 없이는 못 사는 여자, 라고 말했다. 웃어주고 싶었지만 그 따위 말까지도 참아야 하는 것이 먼저 이별해야 하는 자의 숙명이었다. 가난해도 그토록 사랑스러운 메리의 비결은 아직도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계좌를 끌어안고 살지만, 메리처럼 발랄한 친구들이 너는 왜 아직 그러고 사니, 하고 물으면 역시 나는, 너처럼 안 예뻐서 그렇게 산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도시빈민, 도시백수라도 예쁘면 견디기가 한결 수월한 것처럼 부러워하는 내 비뚤어진 마음을, 예쁜 당신 메리가 용서하길. 당신은 대구도 있고 도진도 있잖아.






2007-06-29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