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황금을 캐낸 사람들의 이야기!                           -글 | 이환경 방송작가-

어려운 경제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고단한 삶에 부대끼며 IMF 시절의 악몽을 거론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드라마를 준비하며 ‘참으로 적절한 때에 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英雄時代」는 바로 이런 힘겨운 시간들을 달려온, 많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자 고백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와 시대극을 주로 써 오면서 내게는 늘 숙제 하나가 있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경제 이야기를 확실하게 한 번 그려 보겠다는 욕심이 그것이었다.
그런 생각의 발상은 내 자신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깊다. 6?25둥이로 태어난 나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권리가 상실된 그 시대에 부침하면서 겨우 의무교육을 마치고 치열한 삶의 격랑 속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가난한 부역자의 집안, 초등학교 당시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의 몫은 늘 연탄 두 장이었다. 때문에 방과 후 나는 늘 ‘아이스케키’ 통을 메야 했다.
강냉이가루에 우유가루, 그 혜택마저 못 받게 되면 밀기울 개떡이나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 쓰레기인 ‘꿀꿀이죽’도 감지덕지했던 그 혹독한 시절은 내게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었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생존의 조건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숱한 직업군의 밑바닥 세계를 전전하면서 최종 도착지인 노동판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글공부를 하면서 나의 고통스러운 멍에가 곧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현주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낭만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던 젊은 시절을 보냈고 가혹한
노동 조건 때문에 저녁이면 후들거리는 다리로 목로주점에서 막걸리로 허기를 달랬지만,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조국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군대를 다녀와 중동의 근로자로 나갈 때 어머니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살아온 날들을 작품으로 쓰겠노라고 노동현장을 열심히 메모하다가 분에 넘치는 오해를 받고 불과 여덟 달 만에 쫓겨 왔을 때 서운해 하시던 그 모습도….

나는 이 작품 전에 KBS에서 젊은이들의 야망과 성공과 실패를 다룬 「훠어이 훠어이」를, MBC에서는 「아담의 도시」라는 기업물을 미니 시리즈로 쓴 바 있다. 모두 적잖은 호응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흡족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에 선택한 이 이야기가 나로서는 그간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본격 기업 드라마의 총체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때보다 더 많은
공부가 있었고 조금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나는 내가 써야 할 작품에 대해 그 방향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그리고 고심 끝에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진솔하게 쓰자’, ‘이 나라의 경제 역사를 쓰자’고. 우리의 경제는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숨가쁘게 살아온 그 시대를 신화가 창조되던 때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일단의 목표를 이루었고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모두가 땀을 흘렸지만 그 배경에는 분명 주역들의 엄청난 역할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이 곧 이 나라의 경제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이다.

이 드라마는 그중 한국의 대표적 기업가 두 사람이 중심 모델이다. 두 기업은 아직도 다른
여러 재벌 기업들처럼 이 나라 경제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 자칫 경제 드라마는 너무 깊이
들어가면 딱딱하고 어려워질 수 있고 그렇다고 겉만 돌다 보면 내용이 부실해진다.
그래서 인물들을 통하여 어떻게 이를 적절하게 배분하는가가 관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인물들에 얽힌 이야깃거리는 많다. 사건도, 남아 있는 기록도 많다. 따라서 배분의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일부의 재벌 미화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모든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미화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써온 많은 작품들은 주인공들이 대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역경을 이겨내어 목적을 이루지만, 바로 그
목적 때문에 회한과 인생의 무상함 속에서 자신을 자책하는 것으로 종결지어진다.

이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기업은 성공하였으나 인생은 그렇지 못했다. 영웅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겉은 화려했으나 내면은 고독하고 외롭고 불행했다. 재벌은 부자다. 부자가 되려면 누구보다도 적을 많이 두게 되는 법이다. 그들이 엄청난 부와 성공을 축적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랴.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이 왜 없으랴. 정치든 경제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승리자들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성과를 쟁취한다. 우리의 주인공들도 그러했다. 이 드라마는 그 행간들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척박한 땅 위에 일구어 놓은 기적과 신화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이다. 이제는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인정해줄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언젠가 경제 관련 서적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본 기억이 난다. “일본 사람들은 수상이나 장관이 입원을 해도 도무지 무신경이다. 그러나 ‘마쓰시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그야말로 온 나라가 술렁거린다.” 기업가들에 대한 그네들의 관심과 존경이 어떠한지를 알 만한 대목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제 우리도 이 사회를 바꾸고 개척한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 드라마이다.
인물들을 통해서 보는 대한민국 근대 경제사의 실록이다. 모두들 살기 어렵다고 하는 이 때에 더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사막에서 황금을 캐낸 우리의 주인공들을 통하여,
시청자들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글 | 이환경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