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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난 2% 부족한 남자가 좋더라
최근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 변화… 강한 남자 퇴조, 감성적 남성 선호


‘사랑 때문에 질질 짜고, 잘 보이기 위해 갖은 애교를 부리고,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고.’

남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여려지는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별히 ‘모자란’ 어떤 남자의 ‘기행’도 아니다. 요즘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상당수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봄날’에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형제가 여자를 갖지 못하는 속상함을 한결같이 눈물로 표현했다. 형 은호(지진희)는 여자를 동생 은섭에게 양보하며 울고, 은섭(조인성)은 한술 더 떠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보인다. 은섭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귀에 꽃이나 각종 장식을 매달고 눈물겨운 ‘재롱’을 부린다.

KBS 드라마 ‘쾌걸춘향’의 남자 주인공 몽룡(재희)도 마찬가지. 말썽꾸러기인 그는 춘향(한채영)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귀여운 잔꾀를 부리고 떠나는 춘향을 잡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에 앞서 방영된 KBS 2TV ‘풀하우스’의 영재(비)도 자존심 때문에 터놓고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지은(송혜교)을 사랑해 각종 깜찍한 전략과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린다.

트렌드 드라마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에서도 이같은 남성 캐릭터는 심심찮게 발견된다. MBC 주말드라마 ‘한강수타령’의 이기적인 겁쟁이 준호(김석훈) 역시 가영(김혜수)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다가 가출까지 한다. 화장실에서 엉엉 울기도 한다. 보다 못한 준호의 아버지(한인수)와 어머니(박정수)가 각각 나서서 가영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는 모습까지 등장한다.

반면 여주인공들은 상대적으로 어른스럽다. 정은(고현정)과 춘향, 지은, 가영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남자 주인공들을 더 넓은 품으로 어르고 달래며 품어준다. 눈물을 닦아주고, 화장실에서 울어버린 옛남자친구를 달래고, 행여 다칠까봐 온몸으로 방어한다.

여주인공은 상대적으로 어른스러워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 드라마가 여자 한명에 남자 두명 식의 삼각관계가 설정됐는데 여주인공들의 최종 선택은, 2% 부족해 보여도 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애교가 많은 남자라는 점이다.

‘한강수타령’의 신률(최민수), ‘쾌걸춘향’의 변학도(엄태웅), ‘풀하우스’의 유민혁(김성수)은 한결같이 CEO에다 돈도 많고 외모까지 출중한 매력남으로 등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징징거리는 귀여운 남자에게 판정패해 여주인공에게 딱지를 맞는다.

이들 역시 과거의 잣대로 보면 굉장히 부드러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1992년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MBC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에 비해 ‘한강수타령’의 신률은 얼마나 달콤한 캐릭터인가.

최근 트렌드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이같은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우리 사회의 변화된 남녀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중문화평론가 배국남씨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산업적으로는 하드웨어 시스템이 급격히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바뀌고 사회적으로는 남녀차별에서 남녀평등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강한 것이 최고’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며 “이같은 흐름이 드라마 남녀 주인공들의 캐릭터에도 변화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경제력 측면에서 강한 남자가 필요했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현대는 동반자 개념이 통할 수 있는 감성적이고 부드러우며 자상한 남자가 여성들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가족의 형태가 자녀 중심에서 부부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변화는 한층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요즘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음은 이미 여러번 통계자료로도 드러난 바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남자가 데이트 신청은 물론 데이트 비용을 도맡고, 관계가 잘 유지되면 남자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는 오랜 공식이 해체되면서 지금의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데이트 상대는 마초 스타일이 아니라 베이비토크가 가능한 남성”이라고 말했다.

베이비토크란 어린애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일컫는다. 유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상호친화적인 대화가 가능한 남성이 인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종휘씨는 “정겨운 말을 주고받을 수 있고, 자기가 예뻐해줄 수 있는 남성을 선택하는 것은 모성본능과 다른 얘기”라며 “과거 대다수 여성은 남성에게 철저히 의지하는 기준에서 배우자를 선택했다면 요즘 여성은 일종의 자기애(愛) 측면에서 주도적으로 친화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남성을 고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비토크가 가능한 남성이 좋다”
‘쾌걸춘향’을 연출한 정기선PD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그들의 경험담도 많이 들었다”며 “요즘 남자들은 특히 자기 사랑 앞에서는 감수성이 매우 많아졌고 그런 모습에 여성의 마음도 흔들린다고 전해들었다”고 귀띔했다.

정PD는 또 “여자친구 앞에서 엉엉 우는 남자가, 과거의 잣대로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못난 놈이었던 반면 요즘엔 감성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감수성 강한 남성으로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쾌걸춘향’의 주인공들은 모두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철없는 남자와 철든 여자로만 잘라 말할 순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종휘씨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은 강해지고 남성은 부드러워지면서 대등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므로 일방적으로 남자보다 여성이 강하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남녀 캐릭터가 변화한 데는 대중문화의 소비층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배국남씨는 “대중문화소비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하면서 여성이 원하는 남성상이 남자주인공으로 설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여전히 남은 문제는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보여지는 남녀동등의 문화가 직업인으로서의 업무적인 부분은 누락된 채 지극히 남녀관계, 즉 성(性)적인 부분에서만 여성의 능동성이 강조되고 있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안방극장의 주인공으로 이같은 남녀 캐릭터가 얼마나 더 유효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이든지 과잉공급되면 시청자들이 이내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평등문화가 날로 강화될 것이 확실하기에, 현실 속 남자들과 여자들의 모습은 유행과 관계없이 지금의 드라마 남녀 주인공들을 한층 더 쏙 빼닮을지 모른다.

박주연기자 jypark@kyunghyang.com



[2005.3.24 (목) 뉴스메이커 박주연 기자]




2005-03-25(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