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MBC·KBS 연기대상 대기록 세운 고두심씨

“나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머니가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모든 어머니의 힘이 위대합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1일 새벽, 전파를 타고 쏟아져 내린 탤런트 고두심의 ‘일성(一聲)’이 새해를 맞으며 들떠있는 사람들 가슴에 정결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30일 밤 MBC에 이어 이날 KBS에서도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 방송가의 ‘대사건’이다.

“어머니 역할로 이번에 큰 상을 2개나 탔어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며 세상 순리를 따르지만, 항상 당당함을 잃지 않는 어머니상(像). 지난 한 해는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 아직도 제 어머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2일에도 새벽 6시까지 MBC ‘한강수 타령’을 촬영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그녀의 목은 깊이 잠겨 있었다. 수상소감을 묻자 고두심은 어머니 얘기를 차분하게 들려줬다.

“4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워’, ‘한강수 타령’의 제 연기에 다 녹아있어요. 순종적이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인내하시던 어머니였지만, 강단이 있으셔서 웬만한 청년보다 쌀가마도 훨씬 잘 짊어지고 동네를 다니셨죠.”

고두심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특히 저는 거듭 태어나도 우리 어머니 몸을 빌려서 태어나거나 인연을 맺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말투는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자식들 일로 마음이 아프다며 ‘빨간 약’(머큐로크롬)을 가슴에 찍어바르며 보는 이를 울리던 ‘영자’를 떠오르게 했다.

고두심은 이미 89년 KBS(사랑의 굴레), 90년 MBC(춤추는 가얏고), 2000년 SBS(덕이) 등 방송3사 연기대상을 모두 휩쓴 ‘그랜드 슬램’의 경력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손길 뻗치면 금방 닿을 것 같은, ‘동네이웃’ 같은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배우답게 행동하라’는 핀잔도 가끔 듣지만,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털털한 천성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72년 MBC 탤런트 5기생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제주 출신의 고두심. 34년째에도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다면 남다른 ‘연기관’이 마음 한구석 오롯이 자리잡고 있을 것 같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낄 때, 항상 좋은 것, 긍정적인 것만 받아들이려고 해요. 고운 것만 취하기에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거든요. 배우로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깨끗하고 곱지 않으면 누가 같이 울고 웃어 주겠습니까? 제 연기 생활의 철학이 있다면 이것밖에 없어요.”



[2005.1.2 (일)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