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VS 김정수 혹은 김희애 VS 김혜수. 각 분야 정상에 있는 네 김씨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던 KBS2 ‘부모님전상서’(사진 위·연출 정을영)와 MBC ‘한강수타령’(아래·연출 최종수)이 포연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대 시청률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매일 순위가 바뀌는 혼전 양상이다. 양사가 동원 가능한 드라마 제작인력을 모두 투입한 두 드라마는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가족극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소재와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매주말 오후 8시대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같지만 다른 매력을 알아본다.

#울음 VS 웃음

‘부모님전상서’의 주된 정조는 ‘슬픔’이다. 초등학교 교감 아버지(송재호)는 정직하지만, 두 번이나 교장 진급에 실패했다. 첫째 성실(김희애)은 어린 나이에 시집가 의처증 심한 남편(허준호) 때문에 고생한다. 설상가상으로 둘째 준이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남편의 외도 상대는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성실을 조롱한다. 아버지를 닮아 과묵한 둘째 지환(장현성)은 넉넉한 집안의 연인과 2년째 사귀고 있지만, 경제적 차이로 갈등한다. ‘사랑이 뭐길래’나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볼 수 있던 속사포 같은 ‘김수현표 대사’는 간 데 없다. 지난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완전한 사랑’보다도 무거운 분위기다. 김수현 작가 본인도 “이번 드라마를 보면 따분하고 졸릴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을 정도다.

‘한강수타령’은 시끌벅적하다. 한국 맏며느리의 대명사인 고두심이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욕쟁이 누님’으로 변신했다. 다 큰 자식들도 여차하면 주먹으로 등을 후려패고, 술 한잔 얼큰하게 취해 냄새나는 양말을 들이대는 짓도 마다않는다. 첫째딸 가영(김혜수)은 ‘아주 오래된 연인’ 준호, 냉소적인 명문가 아들 신률(최민수)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남녀의 삼각관계가 흔히 연상시키는 얽히고설킨 사랑타령은 볼 수 없다. 동화 속 환상이 아니라 진짜 있을 법한 삼각관계다. 애초 ‘미스캐스팅’이라는 우려를 낳았던 최민수조차 예의 부담스러운 눈빛 연기를 버렸다. 그는 ‘사랑이 뭐길래’ 시절 ‘대발이’를 연상시키는 유머와 진중함을 뒤섞으며 극에 융해되는 중이다. 명품에 사족을 못쓰는 둘째딸 나영 역의 김민선은 톡톡 튀는 감초 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사람 냄새 나는 것은 마찬가지. 주말 저녁 진중한 슬픔을 맛보고 싶다면 ‘부모님전상서’를, 시장 바닥의 왁자지껄한 인심을 느끼고 싶다면 ‘한강수타령’을 보면 된다.

#따로 또 같이

드라마에 ‘밥상 장면’이 사라진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소소한 가족 이야기를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두세 명의 톱스타가 벌이는 지지부진한 사랑싸움, 출생의 비밀, 불치병을 그리는 트렌디 드라마에 밀려, 온가족을 위한 드라마를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부모님전상서’와 ‘한강수타령’은 오랜만에 방영된 정통 가족드라마. 각각 김희애, 김혜수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두 배우가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 않다. 연출자의 시선은 화려한 한두 명의 톱스타보다는 전체 가족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김혜수는 “내가 튀려 하지 않고 대본 느낌만 제대로 전달해도 충분히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모처럼 중견탤런트와 신인들이 고루 어우러진 정통 가족드라마의 참맛을 볼 수 있다.



[2004.11.1 (월)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