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넘긴 디자이너 이영희는 깐깐했다. 청담동 의상실에서 만난 그는 전날 드라마 '궁S'에 등장한 한복 사진들을 스크랩해 보여 주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되지 못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했다.  

"활옷에는 머리 모양을 이렇게 하면 안 어울리는데. 패션쇼와 달리 드라마 화면에서는 의도한 대로 옷의 느낌이 살아나지 못해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매일 촬영현장을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난주 방영되기 시작한 드라마 '궁S'에 등장하는 한복은 이 씨의 작품이다.  

그는 디자이너 지춘희와 함께 이 드라마 의상을 맡아 상상 속의 황실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에 부분적으로 의상을 협찬한 적은 있지만 드라마 전체에 걸쳐 의상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목표는 단 한가지입니다. 한복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자는 거죠. 요즘 젊은이들은 한복을 불편한 복장으로만 생각하고 멀리 하잖아요. 젊은 연예인들이 한복을 입고 나오는 걸 보면 한복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친숙해지지 않겠어요?"  

이 씨는 드라마의 배경이 현대인 만큼 전통에만 매달리지 않고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된 한복을 많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 당의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파스텔톤의 옅은 잉크색을 써서 색다른 느낌을 냈어요. 이 검무복은 앵두색 위에 안이 비치는 까만 천을 덮어 두 겹으로 처리한 거예요. 색감도 독특하고 춤출 때 날리면 더욱 멋스럽죠. 앞으로는 한복 드레스처럼 한복의 색과 선을 응용한 현대적인 의상도 등장할 겁니다."  

사실 이 씨는 한복을 파격적으로 변형시킨 의상을 앞장서 시도해 온 인물이다.  

요즘 시상식에서 여배우들이 즐겨 입는 저고리를 없앤 한복 드레스도 이 씨가 처음 선보인 것이다.  

1994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무대를 장식했던 이 파격적인 옷은 당시 '저고리를 벗어 던진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왜 한복을 변형시키냐구요?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서죠. 전통만 고집하면 외국에서도 통할 수 있는 옷을 만들 수 없어요."  

이 씨는 자신의 말대로 한복의 세계화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1993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해 20회 넘게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다. 2004년에는 미국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열고 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 의상과 전통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아무도 나서지 않던 시절부터 홀로 해외에 나가 일하면서 정말 힘들었다"고 회고하면서 "이제는 외국에서 먼저 나를 불러주니 10년간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복 인생 35년을 맞는 이 씨는 올해에도 갖가지 국내외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그동안 살아온 길을 회고하는 에세이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당장은 드라마 의상 제작 때문에 의상실 식구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5월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한국관 개관식에서 패션쇼를 열 예정이고, 일본 회사로부터도 패션쇼 요청이 들어와 있어요.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인 자서전도 3월에는 나와야 할 텐데 뜻대로 될지 모르겠네요."  

연합뉴스 김희선 기자(hisunn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