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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의 귀여운 황태후 김혜자
예순을 넘긴 여배우에게 ‘귀엽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김혜자에게는 그렇다. 그는 요즘 귀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MBC 드라마 ‘궁’에서 황태후 박씨를 연기하면서부터다. 황태자비로 간택된 채경(윤은혜)이 철없이 내뱉는 인터넷 용어 ‘열공’ ‘대략난감’을 못 알아들어 눈을 멀뚱멀뚱 뜨고, TV 앞에서 깔깔거리다가 인기척이 들리자 얼굴빛을 고치는 황태후 모습이 시청자에게 웃음을 준다. 그에게 “귀엽다는 평이 자자하다”고 말을 건넸더니, “아이, 뭘…’하며 수줍게 웃는다. 귀엽다는 표현이 그다지 싫지 않다는 뜻이다.

#2년 만에 다시 연속극으로

그는 아무 작품에나 출연하지 않는다. 작품과 배역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주인공이어야 돼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순진무구할 정도로 솔직하다. ‘주연이건 단역이건 상관없이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형식적인 답에 비하면 신선한 대답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주연이 아니지만 출연하기로 했다. 황인뢰 PD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이다. 90년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드러난 황 PD의 연출력이 돋보였다. 지난해 청룡영화제에서 황정민이 말했듯 작품성, 연출력 등이 잘 차려진 밥상처럼 준비돼 있으면 배우는 자연히 극에 몰입하게 된다. 김혜자는 “그동안 출연 제의가 들어와도 작품성이 흡족하지 않아 고사했다”고 도도하게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이렇게 엄격한 출연조건을 제시한 뒤 그는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너무 오래 쉬면 연기를 영영 못할 것 같아서 ‘궁’에 출연했지요”하며 배시시 웃는다. 당찬 소녀 같지만 새침데기다. 그는 어떻게 소녀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어딘가에서 들었어요. 20세라도 방바닥에서 ‘뒹굴뒹굴’거린다면 늙은 것이고, 60세라도 생각이 젊으면 청춘이라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음악을 즐겨 듣는 것도 그를 젊게 한다.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같은 클래식을 좋아한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볍고 편안한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고정시켜 놓는 게 습관이다.

#난 오드리 헵번이 아닌데…

“솔직히 나 오드리 헵번에 비교되는 거 별로예요”

오지 봉사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드리 헵번 얘기를 꺼냈더니 시무룩한 반응이었다. 미국의 대스타와 견주는 의례적인 찬사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드리는 오드리일 뿐, 한국의 김혜자는 김혜자대로의 삶이 있다”는 딱 부러진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아프리카 오지, 인도 등 제3세계 빈민촌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열중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2004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참상을 보여줬다. 사람들의 시선을 낮고 어두운 곳으로 이끌고 싶었는데 정작 그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이 못마땅하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달은 안중에도 없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책을 출간한 후 여기저기 강연요청이 들어왔지만 거북살스러워 모두 물리쳤다.

“그런 처참한 생활에 한번이라도 눈길을 돌리면 누구라도 저절로 구호의 손을 내밀 거예요. 불행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으니까요. 그게 바로 책을 낸 이유인데, ‘김혜자가 선행을 했다’는 것만 강조해 속이 상했어요”

그는 이번 드라마가 끝나는 3월 다시 오지로 떠날 것이다. 어디로 떠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국제 구호기구 ‘월드비전’을 통해 결정할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가 있으면 어디든지 갈 생각이다.

“내 인생의 커다란 두 축은 연기와 헐벗은 아이들이에요.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혹자는 김혜자를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표본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그는 단지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돕는다’는 지극히 단순한 심성을 지닌 연기자일 뿐이다.


[세계일보
심재천 기자]





2006-01-22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