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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6회의 아찔함과 자유로움
커피프린스 16회에서 내 인상에 남는 것은 어쩔수없이 '남녀7세부동석'인가 보다. 은찬이 유학을 가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하더니 극의 마지막에 한결의 집에 쳐들어간 은찬이 함께 자겠다고 하는 장면에서 같이 보던 아들녀석을 힐끔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찬이 한결을 올라 타 서로 부등켜안은 요상한 포즈로 끝났는데 유난히 수줍음 많은 아들이 이내 얼굴을 돌린 것이다.

(허허 ~ 이런 이런 고얀지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연소자 불가시간의 방영이라고 해도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방송위원회에서 저걸 어떻게 심의할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시비거리가 되려면 될 수 있는 묘한 장면을 연출자는 교묘하게 편집해 놓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녀의 애정표현이 저 정도면 봐줄만한 건 아닌가 하는 갈등도 생긴다. 요즘이 어느 시절인데 권위주의 시절의 검열기준을 들이댄단 말인가. 가당치도 않은 잣대를 들이대다가 개명한 시민들로부터 몰매라도 맞을 수 있겠다 싶어 이내 관대해지기로 했다. 누구는 이를 전략적 관대함이라고도 하더라만.

애정표현과 관련된 우리사회의 기준은 없다. 왜냐면 그 기준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걸 두고 세대간 잣대 양극화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평균치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양극단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인간형이 한반도 남단이란 조그만 땅 덩어리에서 득시글거리며 함께 살고 있으니 애정표현에 대한 잣대를 어디쯤에 두어야 할지는 국민전체가 투표해보기 전엔 알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규제의 잣대는 제도적으로 기성세대에게만 주어져 있다. 방송위원회나 법원이라는 곳이 성인들, 그리고 기성질서에서 교육 잘받고 성공한 사람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기관이라 어쩔수 없다.물론 나는 갈 세대가 아니고 올 세대의 추세적 관점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성숙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갈수 있다고 보지만 말이다.

사실 은찬과 한결의 기묘한 포옹자세도 나에게는 그리 낯설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지나치게 수줍어하는 아들에게도 자연스런 남여애정표현을 보라고 권할 정도로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