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처음부터 고백하고 들어가야겠다. 나는 정확히 <커피프린스 1호점>을 12회까지만 봤다. 그 다음 회부터는 게을러서,
다른 약속이 많아서 등등 변명을 해보지만 사실은 일부러 안 본 것이다. 썩어빠진 홍어회를 찾아다니고, 쓰디 쓴 다크 초콜릿을 녹여먹고, 생마늘을
씹어대는 나로선, 이미 사랑한다고 공표한 은찬과 한결의 달콤할 게 뻔한 후일담까지 지켜보고 박수쳐 주기엔 성미에 안 맞았나보다. 나는 결국
사랑의 1부에만 관대한 사람인가보다.
사랑에는 1부와 2부가 있다
사랑에는 1부와 2부가 있다. 1부는 슬픔과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가슴 졸임과 눈물이 일렁이는 시기이다. 보고 싶어서 손톱을 깨물고, 혹시
고백하면 달아나버릴까 밤새 걱정하는 시기. 어떻게 하면 날 좋아하게 만들까 머리를 쥐어뜯고, 더 많이 좋아해서 아프고 눈물이 나는 시기다. 그
고달픈 연애의 가시밭길을 밟고 지나고 나면, 상처투성이가 된 맨발을 씻겨줄 행복한 2부가 기다리고 있다. 서로가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내것이 네것이고 네것이 내 것이다라며 크로스되는 순간에 2부가 샤방하게 열린다.
1부에서 은찬의 고난은 특히 더했다. 그냥 여자도 아니고 ‘남장여자’라는 언젠가는 터트려야 할 금지된 다이너마이트를 속에 품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폭탄을 안고 있는 은찬을 점점 좋아라하는 한결. 그냥 동생으로서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연인의 감정을 품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는 한결. 금지된 사랑에 뛰어든 두 젊음의 1부는 가슴 졸이며 지켜보기에 충분했었다. 어떤 대학을 나왔고, 무슨 일을 하고,
혈액형은 무언지를 물으며 번호표가 달린 호텔 라운지에서 선을 봐야 하는 이 30대 늦깎이 총각의 가슴에도 ‘진짜 사랑’ 하고싶다는 불을 지폈다.
아, 만일 끝이 있다면 나도 사랑의 끝까지 가고 싶다는 치기가 솟았다.
내가 은찬이였다면...우린 깨졌을거야
밤바다에서 해변을 거닐다가 어색하게 손이 스치고,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 “형,동생 사이에도 손을 잡을 수 있잖아요.” 저런 순진한
멘트를 날리며 나도 어색한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날 사촌오빠라고 생각해요. 오빠동생 사이에도 손은 잡을 수 있잖아요.”
담요에 누워서 잠이 든 은찬의 입술과 눈동자를 보면서 입술이 떨리고 가슴이 떨리는 한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잠든 은찬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한결. “안아, 그냥 확 안아버려. 그리고 말해, 말해버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미쳐버리겠다고.”
같이 소리쳐주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밤바다에 가고 싶어졌다.사랑의 역사가 시작된 후에 가장 많이 우려먹는 ‘우리 바다
보러 가자’ 그 말을 무엇보다 해보고 싶었다. 피곤한지 차 안에서 잠시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내가 더 사랑해도 될까...’라고 나도
한결 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해보고 싶었다. 최대한 순수한 사슴 같은 눈빛으로. 말리면 말릴수록 더 붙고 싶고, 금지된 것일수록 더
유혹적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누구나 한번쯤은 살짝이라도 마음에 담가보았던 금기된 사랑을 순정만화적으로 들려준 건
아니었을까.
내가 2부를 보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만일 현실의 은찬이었다면, 한결에게 분명, 많이, 자주 따졌을 것이다. “제가
지금도 남자로 보여요? 오빠, 남자 좋아했잖아요. 저기 저 남자, 오빠가 좋아하는 타입 아니에요? 쳐다본 거 맞죠?” 하고 달달 볶다가 결국은
깨졌을 것이다. 이런 상상이나 하고 있어서 나는 이렇게 폭염과 폭우를 오가는 여름 안에서도 커피 같이 향기로운 사랑은커녕 도둑고양이처럼 한없이
외로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