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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호점> vs <커피프린스 1호점>│신인류의 사랑

“인간 대 인간으로 좋으면 된거지, 남자 여자가 무슨 상관이야.”

와플을 구우며 옛 여자를 찾는 선기의 말처럼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세계에선 모든 관계가 남자 대 여자로 구획지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한 여자나 남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지도 않을 뿐더러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빠져서 허우적 대기 일쑤다. 이성애,동성애 편가르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느끼는대로 서로를 사랑하는 <커피프린스 1호점> 속 사람들. 이 새로운 인류의 전혀 새로운 사랑을 <매거진t> 차우진 기자와 조지영 TV평론가가 말한다. / 편집자주

<커피프린스 1호점>은 이상한 드라마다. 이상하다는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살짝 바꿔 말하자. <커피프린스 1호점>은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 굉장히 낯선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낯선 이유는 ‘일대일 관계의 이성애 구조’라는 멜로드라마의 전형성을 변칙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그 남자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들은 기존 드라마 구조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성역할과도 어긋나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 등장하는 남자들 중 세대를 막론하고 ‘한국남자’처럼 보이는 남자는 하나도 없다.

남자 어른이 없는 세계

 
최한결(공유)의 아버지(최일화)는 이미 생계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고(현재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할머니(김영옥)지만 그 때문에 기성세대 사이의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홍사장(김창완)은 지나친 낭만주의자인데다가(그는 오래전 한 여자를 쫓아 재능과 회사도 포기했다), 정육점 주인 구씨(이한위)마저 시인 지망생이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남성들이 수동적인, 혹은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묘사되는 점은 흥미롭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들 중 누구하나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들로만 구성된 은찬(윤은혜) 가족의 가장은 ‘외형적으로 남자 같은’ 은찬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어른 남자가 없는 멜로드라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상식’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 ‘상식’이란 바로 멜로드라마 안에서,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들’이다. 극의 초반부에 한결과 은찬을 연결했던 에피소드를 다시 보자. 한결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주선한 선 자리를 망치기 위해 ‘남자’(로 알고 있는) 은찬에게 ‘애인 대행’을 제시하고, 은찬은 남자 애인 역할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 소문을 접한 한결 주변인들의 반응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분노하거나 당황하기는커녕 ‘작전실패’라고 여길 뿐이고, 최한성(이선균)은 단지 “소문 들었다”라고 말할 뿐이다. 그들이 유난히 개방적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세계에서는 성역할의 구분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유를 만난 진하림(김동욱)의 대사를 보자. “형, 얘가 그 소문의 주인공이야? 반할만 하네!”한국 TV에서, 그것도 프라임타임에 방영되는 멜로드라마에서 남자가 남자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술에 취해 모든 남자들에게 입을 맞추는 황민엽(이언)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외형적으로(그리고 내면적으로도) 마초에 가까운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그의 이런 스킨십을 <커피프린스 1호점>의 어떤 남자도 적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커피프린스 1호점>의 남자들이 관계 맺는 방식은 소녀들의 그것과 닮았다.

커피 프린스들의 성역할 놀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피프린스 1호점>이 한국사회에서 대안적 성역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차라리 이런 묘사들은 야오이, 혹은 동인지처럼 소녀들의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감수성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물론 이런 ‘장르 뒤틀기의 가능성’은 흥미롭지만, 엄밀히 말해 이 드라마는 기존 한국남자들의 성역할을 아주 조금 비틀어놓았을 뿐이고, 이 정도의 풍자를 대안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커피프린스 1호점>의 남성들이 재현하는 성역할 놀이(gender play)가 한국사회에, 적어도 30%에 가까운 시청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수용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 세대를 관통하는 감수성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지지하는 (여성)시청자들이 만들어갈 한국사회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커피프린스 1호점>은 멜로드라마의 규범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구조를 가지고 놀고 있는 드라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커피프린스 1호점>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멜로드라마’가 되는 근거다. 역시나, 이상한 드라마다.

글 차우진

은찬(윤은혜)은 유주(채정안)를 동경한다. 그리고 유주 또한 은찬을 부러워한다. 명백한 연적의 구도로 굳어가는 와중에도, 그녀들은 적대감을 비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대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서로가 갖지 못한 것 혹은 영영 잃어버린 것을 동경할 뿐이다. 은찬과 유주는, 지금, 새로운 트랜디 드라마가 꿈꾸는 매력적인 여자의 모습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무심한 듯 시크한’ 그녀들의 양다리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은찬과 유주지만, ‘동시에 여러 남자를 좋아한다’ 는 점에서는 비슷하기도 하다. 심지어 3명의 남자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유주는 ‘탁월한 어장 관리’라는 찬사(?)를 받을 만한 저력을 과시한다. 은찬이도 한성(이선균)과 한결(공유)를 동시에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자세히 뜯어보면 은새(한예인)도 선기(김재욱)를 좋아하지만 민엽(이언)을 싫다 하지 않았고-최근에 민엽이 쌀쌀맞게 나오자 당황하는 중- 은찬엄마(박원숙)도 카페 홍사장(김창완)과 정육점 구씨(이한위) 사이를 편안하게(?) 오간다.<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 여자들은, 모두 관계를 주도한다. 관계를 주도한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녀들은 모두 ‘감정에 솔직하다’. 딱히 여우같거나 요부같지 않아도, 착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가 아니어도 양다리를 걸칠 수 있다.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마음 때문에 곁에 있는 누군가는 언제나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잡을 수 없이, 물처럼 흐르는’ 유주 때문에 한성은 괴롭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가장 힘든 건 역시, 머물지 못하는 유주 자신이다. 아무도 옳다, 그르다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랑과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여자들이 바라는 이상형의 2가지 버전

애정인지 우정인지 존경인지 쉽게 가를 수 없는 감정이지만, 한성과 한결은, 은찬과 유주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다. 은찬과 유주가 매력적인 여자의 요소를 나눠 가졌듯 한성과 한결 역시 ‘여자들이 바라는 남자’의 모습을 투영한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 그것도 ‘노래를 만드는 일’ 처럼 근사한 일을 하는 사람, 때로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는 사람, 즉 ‘내가 기대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한성이라면, 예측불허의 묘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사람, 어딘지 안쓰러워 어깨를 빌려주고 싶은 사람이 한결이다. ‘어른이지만 마음 어딘가에 소년이 자리잡은’ 그런 남자를, 여자들은 기대한다. 한결이가 비밀의 방이라며 한사코 안보여주던 방에 ‘레고왕국’이 자리잡고 있던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말하자면, 여자의 시각에서 꿈꾸는,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이상형을 제시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도 재벌 2세가 나오고, 출생의 비밀도 나오며, 3각, 4각관계가 나오지만 그 모든 설정은 ‘배경’으로 포커스 아웃된다. 심지어 필살의 조커 같았던 ‘남장 여자’ 설정조차 거추장스러워졌다. 드라마의 동력은, ‘완결된 어른’이 되기 전에, 마음 속의 소년과 소녀들이 사투를 벌이는 그 순간들의 생생한 구체성이다. 지나고 나서야 아쉬워지는 그 찰나들을, 겪고있을 땐 지긋지긋할 뿐인 혼란과 통증을 누구나 기억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갈팡질팡 헤매는 소년과 소녀들을, 지극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응시한다. 홍사장의 말처럼 ‘지금 당장은 죽을 것 같아도 세월 지나면 그게 그거’가 되고 마는, 청춘의 영롱한 흔적들이, 그 두근거림의 기록들이 <커피프린스 1호점>에 숨어있다.

글 조지영






2007-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