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말기, 시한부 3개월을 선고 받은 한 남자가 오열하고 있습니다. 그걸 눈물로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고, 살아 있는 동안은 사랑하겠노라고 울부짖는 이 가여운 연인들은 MBC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 의 주인공 지석(강지환)과 미연(김하늘)입니다.

첫사랑이었기에 더욱 서럽고 애달팠던 두 사람. 이젠, 두려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90일이라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지석의 방을 찾은 미연은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춥지는 않어? 건조하니까 가습기 틀고... 또...” 그가 덜 아프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던 지석이 한 권의 책을 내밉니다. 며칠간 읽던 <뇌내혁명>(사람과책. 2002)입니다. 인간 두뇌의 생리와 심리 현상의 인과관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지석이 책에서 어떤 확신을 얻은 모양입니다.

“시간 날 때 읽어봐 우리가 왜 서로를 못 잊는지 보니까 알겠더라”

지석의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못 본 채 하는 미연. 책을 집어 듭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인지할 때 좌 뇌를 사용해. 근데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고 잊기 힘들면 그 정보가 직관을 담당하는 우뇌로 넘어간대. 그러다가도 그게 너무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 없으면 그 정보가 어디로 넘어 가냐면 유전자로 넘어간대”

미연의 눈이 커지기 시작하자 지석이 가슴 아픈 한마디 말을 ‘툭’ 던집니다.

“너네 할머니하구 우리 할아버지 너무 애절하게 사랑해서 유전자 속에 기억을 남겨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너 하구 내가 첫 눈에 끌려버리게”

사람들이 기억한다는 전생이란 게 조상이 유전자 속에 남긴 기억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책 속에서 답을 얻은 지석, 위안을 얻은 듯 보입니다. 미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렁그렁 눈물만 담고 있습니다.

“널 죽어도 잊지 못하는 게 내 고집도 아니고 유전자 속에 박혔으니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 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도 뭔가 헛헛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 게,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마디라도 더 이어지면 왈칵하고 쏟아질 눈물입니다. 애써 웃으며 상황을 모면해봅니다.

“교수답네, 학문적으로 해답 찾아내고. 멋지다. 읽고 줄게”

지석은 미연에게 책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씁니다.

“살아 있어서 고마운 미연에게”

지석은 고마워합니다. 이렇게 살아있어 준 미연에게. 곁에 있어 준 미연에게. 방아래 내려오는 한줄기 햇살 사이로 두 사람이 환히 웃습니다. 90일이 마치 9천일인 것처럼.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슬픔이 기적인 것처럼.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가이드 & 리뷰' 방송전문 인터넷 미디어 'TV리포트'
제보 및 보도자료 tvreport.co.kr <저작권자 ⓒ 파이미디어 TV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