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ㅣ  200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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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1일 

난징대학살 - 2부 진실게임

무엇이 아이리스 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2부에서는 일본의 난징대학살 부정파들의 움직임과 주장을 살펴본
다. 그리고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 오류에 관한 논쟁과 ‘100
명 목베기 시합, 난징대학살 사진 진위 논란 등을 통해 일본 내 난
징대학살 진실공방의 현주소와 의미를 알아본다.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은 거짓이다?!

97년 미국에서 출간된 [난징의 강간]은 일본 내 난징대학살 부정
파의 관심의 초점이 된다. 출간되자마자 50만부를 훌쩍 넘긴 [난징
의 강간]이 서구 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 
판단한 부정파는 [난징의 강간]을 반일위서(反日僞書)로 규정한
다. [난징의 강간] 일본어판을 펴내고자 했던 한 출판사는 결국 계
약을 파기하고, 일본에서는 출판조차 되지 않은 [난징의 강간]의 
비판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부정파들의 주장대로 [난징의 강간]에는 아이리스 장이 잘못 인용
한 사진들이 있다. 난징이 아닌 사진도 있고, 영화 장면에서 온 것
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난징대학살 부정파는 [난징의 강간]에서 
잘못 인용된 사진을 난징대학살 전체를 부정하는 근거로 삼는다. 


‘난징대학살은 조작됐다’ - 일본 난징대학살 부정파들의 논리

난징대학살 부정파의 대표주자로 새롭게 등장한 히가시나카노 교
수는 책 [난징사건, 증거사진을 검증하다]에서 난징대학살에 관
한 143장의 증거사진이 있지만, 증거로 통용될 만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고, 이를 근거로 난징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히가시나카노 교수는 난징에서 발견된 사진 속 일본군은 사실 중
국인이 위장한 것이다, 학살 장면 사진을 찍는 것을 일본군이 허용
했을 리 없다, 사진 속의 시체들이 난징대학살 희생자라는 증거가 
없다는 식의 논리를 들어 증거 사진 143장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부정파들도 부정할 수 없는 참전군인 ‘무라세’의 사진첩

당시 난징전에 참가했던 일본군 무라세는 학살 장면을 직접 카메
라에 담았다.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필름은 검열을 피해 일
본에 있는 부인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
본으로 돌아온 그는 난징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사진첩을 발간
했다. 무라세의 앨범 안에는 사진과 당시 상황에 대한 메모가 함
께 있다. 

이 사진들에 대해, 그리고 사진 아래 빼곡히 적어놓은 무라세의 메
모에 대해 부정파들은 어떤 논리로 반박하고, 또 부정할 것인가?


패자부활전, 난징대학살 부정파들의 재기 

 [난징의 강간] 출간을 두고 벌어진 난징대학살 논란은 일본사회
에서 난징대학살 부정파들이 재기하는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다. 부정파들은 [난징의 강간]의 몇 가지 오류를 [난징의 강간] 전
체의 오류로, 결국은 난징대학살 자체의 오류로 확산시켜 난징대
학살이 조작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전반에 걸친 난징대학살 논쟁에서 에서 이미 패배했던 부정파에
게 [난징의 강간]은 재기의 발판이 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 후소
샤 교과서 등으로 일본사회에 난징대학살은 조작된 것이라는 분위
기가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