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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4일
난징대학살 - 1부 잊혀진 홀로코스트
최초로 난징학살을 서양에 알린 작가, 아이리스 장(Iris Chang)의
자살
2004년 1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고속도로변에서 30대의 중
국계 여자가 머리에 총을 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장(Iris Chang),
지난 96년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논픽션 [난징의 강간 (The Rape
of Nanking)]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
던 작가였다.
[난징의 강간] 출판 이후, 아이리스 장은 난징 희생자들의 목소리
를 대변하고, 인권을 위해 싸우는 행동주의자의 상징이 됐다.
유명 작가로, 미국 내 중국 인권운동의 대명사로 부상하고 있던 그
녀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의혹, ‘일본이 죽였다?’
아이리스 장이 자살하고 며칠 후,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항간에는 일본의 극우 단체들에 의해 독살된 것이라는 소문도 돌
았다.
그녀의 부모와 동료들은 아이리스 장이 [난징의 강간]을 출간한
후, 일본우익의 협박전화와 이메일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않았
다고 했다.
아이리스 장은 정말 일본 우익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녀를 위험인물로 여겼던 것일까?
혹시 남겨진 사람들의 아쉬움이 죽음에 관한 의혹을 부른 것은 아
닐까?
잊혀진 ‘홀로코스트’, 난징대학살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인간이 인간에 대해 저지른 만행 중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별다른 저항이나 전투가 없었던 상황에서 자행된 대학살은 일본군
이 중국에 공포를 주기 위한 목적에서 공식적으로 저지른 발작이
었다.
일본군은 백기를 든 포로는 물론이고 어린 아이, 노파 할 것 없이
배를 가르고, 사지를 자르는 등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30만이 넘
는 사람들을 ‘도살’ 했다.
그러나 희생자들은 침묵해야 했고 학살자들은 망각했다.
사망자의 규모와 잔혹함에 있어, 역사적으로 기록될 난징대학살
은 냉전의 분위기와 양자의 필요에 의해 잊혀졌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을 잊혀진 ‘홀로코스트’라 일컬으며 다
시 쓰기 시작했다.
난징대학살의 유일한 영상 기록, ‘마기 필름’
일본군의 난징에서의 학살은 당시 난징에 선교사로 가 있던 존 마
기(John Magee)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됐다.
1937년 당시 난징을 기록한 세계 유일의 동영상인 마기 필름에는
거리에 널려있는 수많은 시체들과 일본군이 찌르고, 베고, 강간하
고, 불태운 환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난징의 쉰들러, 욘 라베
당시 난징에는 여러 서양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학살 기간 동안 매일 일기를 써 기록을 남겼고,
학살을 막기 위해 일본군을 어르고 협박했다.
그 중 아이리스 장이 주목했던 인물은 독일인 사업가 욘 라베
(John Rabe).
그는 중국 난민들의 피난처였던 안전지대의 리더로, 난징 중국인
들 사이에서는 영웅이자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었다. 당시 난징의
책임자이기도 했던 그는 일본 대사관에 학살을 중지할 것을 요청
했다.
또 히틀러에게 난징의 상황을 전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로 돌아온 그는 결국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난징에 대
해 침묵할 것을 강요당하고 침묵과 칩거 속에 불행한 여생을 보냈
다. 게다가 나치였다는 이유로 수십만의 목숨을 구한 ‘중국의 쉰들
러’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난징의 강간], 논쟁의 불씨가 되다
난징대학살을 ‘20세기 최고의 거짓말’이라 주장해온 일본은,
97년 출간되자마자 60만부를 넘기며 미국인들에게 난징대학살을
알린 [난징의 강간]을 주목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출판되지도 않은 책을 비판, 규탄하는 대규모 집
회를 잇따라 개최한다. 아이리스 장은 일본 우익의 협박에 시달리
게 되고, [난징의 강간]은 난징대학살의 진실공방에 새로운 불씨
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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