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키호테의 아이들과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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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한학수 PD

파리의 생 마르탱 운하를 붉은 텐트들이 점령하다

프랑스 파리 세느 강을 가로지르는 생 마르탱 운하.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이곳에는 300여개의 텐트들이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다. 텐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파리의 노숙자들. 이들이 한데 모여 텐트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공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프랑스는 이 문제의 해결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현장에서 만나본 노숙자 아메드는 “우리는 성을 원하는 것도, 저택을 원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 곳이나 좋아요. 조그만 방이라도 있으면 돼요”라며, 자신들의 소박한 요구를 호소했다. 또 다른 노숙자 크리스티앙은 “파리에는 1만 3백 채의 빈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아파트가 없죠. 그러니까 텐트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파트를 한 채씩 달라”며 좀 더 분명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표현했다. 텐트촌에는 연일 이곳을 채우고 있는 노숙자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 현지 언론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언론사들이 취재 경쟁을 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시작된 시위는 어느덧 리용, 마르세이유, 니스 등 프랑스 주요 도시로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텐트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 ‘동키호테의 아이들’( www.lesenfantsdedonquichotte.org)이다. 이 단체는 지난 해 12월에 결성되었는데, 영화배우 겸 제작자인 오귀스탱 르그랑과 장 밥티스트 르그랑 형제가 산파역을 했다. 르그랑 형제는 집과 가정이 있는 평범한 시민인데, 노숙자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다. 오귀스트 르그랑씨는 “자기 집 옆에서 누가 죽어가도 프랑스 사람들이 모른 척 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곳을 직접 찾아다니고 또 프랑스 사회에 보여주기로 결심했어요. 프랑스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작정”이었다고 취지를 설명해주었다.

노숙자들에게 텐트를 무료로 나눠주는 활동은 이번에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이미 ‘세계의 의사들’(www.medecinsdumonde.org)이라는 의사들의 인권단체가 여러 해 전부터 수 백 개의 텐트를 노숙자들에게 꾸준히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동키호테의 아이들’이 시도한 시위는 수 백 명의 노숙자들을 파리의 한 복판에 집결시켜 놓고, 파리 시민들의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텐트는 단체에서 일괄 구매해서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장 밥티스트 르그랑씨는 이러한 텐트 시위를 사진에 담아 인터넷에 홍보하는 역할을 했고, 프랑스 시민들이 점차 이 시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리용에서 만난 ‘동키호테의 아이들’ 지부장 마린(20세)씨는 “현재까지는 리용시와 경찰이 우리를 잘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1월에 이곳 벨꾸르 광장에 처음으로 20개의 텐트를 설치했고 하루가 다르게 텐트 수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활기찬 표정을 지었다. 노숙자 제리씨는 벨꾸르 광장에 텐트를 친 뒤, 이곳을 방문했던 여성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리용시 벨꾸르 광장 텐트번호 41번 제리’라는 주소가 정확히 적혀있는 편지를 우체부가 얼마 전에 전해주었다고 한다. 제리씨는 노숙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받아보는 편지라며 여간 감격스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 파리 생마르탱 운하, 유명 관광지인 이곳은 관광객 대신 노숙자들의 텐트가 채우기 시작했다. 텐트시위를 통해 빈곤층의 주거권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현장.  

 

은행 건물을 점거하고 내건 ‘주택위기 대책부’

지난 1월 2일 파리 증권 중심가의 건물, 이곳 역시 노숙자들의 임시 보금자리가 됐다. ‘동키호테의 아이들’과 ‘검은 목요일’ 그리고 ‘DAL’, 이렇게 세 개의 시민단체와 노숙자들이 이 건물을 점거하며 ‘주택위기 대책부’라고 하는 상징적 문패를 내걸었다. 8만 명이 넘는 노숙자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건물을 점거한 것이다. 리요네즈드방크 그룹이 소유한 이 은행 빌딩은 매물로 나와 몇 해째 비어있는 상태. 무단 입주자들은 열려있는 창을 통해 들어가 벌써 욕조와 샤워시설, 부엌까지 갖추고 살고 있다.

스콰트(squat)라고 하는 이러한 운동은 애초 예술가들이 비어있는 건물을 점거해 작업실로 사용하는 행위를 일컬었다. 서유럽에는 이러한 무단 점거운동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지만, 이번에 일어난 파리 시내 한 복판에서의 빈 은행 건물 점거는 그 상징성으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동키호테의 아이들’이 벌이고 있는 생 마르탱 운하의 텐트촌 시위에 덧붙여져서 일어난 일이라 주목받을 만 했다. 특히 이 점거를 단행한 시민단체는 ‘주택위기 대책부’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노숙자 문제에 대한 공권력의 무대책을 성토했다.

물론 건물주는 점거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주거권 보장을 약속 받기 위한 일념으로 찬바람 부는 거리를 피해 급히 점거하다 보니 내부 시설은 아직 완전하지가 않았다. 점거한 건물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할피다씨, 한 달 전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살림은 친구 집 창고에 넣어둔 채 생활하고 있었다. 할피다씨는 “원하는 것은 진짜 집이죠. 여기서 사는 것이 밖으로 쫓겨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제 아이들을 제 집에서 돌보기를 바라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 텐트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동키호테의 아이들> 대표 오귀스탱 르그랑. 일반 시민들도하룻 밤을 노숙자 텐트에서 지내보라는 그의 제안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 새해 이튿날인 1월 2일부터 노숙자와 무주택자들이 점거해 살고 있는 파리 증권가의 빈 건물. 이곳에 3개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주택위기대책부>를 꾸리고 8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프랑스가 노숙자 문제에 답을 하다

각국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사회. 생 마르탱 텐트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국적도 없고 일정한 주거지도 없기에 이들은 사회로부터 두 번 소외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알제리인 노숙자 핫산씨는 “8년 동안이나 가족을 못 보고 이렇게 지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죠. 정말 어떨 땐 잠도 못자고 울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저는 참혹합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빈곤한 계층의 주거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노숙자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이 문제가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자 극우정당 국민전선(FN)측은 노숙자에게 국가가 살집을 제공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전선 파리지부장 마셜 빌드씨는 “노숙자들 중에는 동유럽을 비롯해 여러 이민자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민자들이 져야 할 부담을 프랑스가 모두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노숙자들의 시위가 무리한 주장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극우정당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1월 한 달 동안 프랑스 여론은 노숙자 시위를 점점 지지하는 쪽으로 변해갔다. 생활필수품과 먹을거리, 옷가지들을 모아서 노숙자들에게 전해주는 시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취재 중에도 많은 시민들이 옷과 먹을거리들을 노숙자 텐트촌에 전해주고 있었다. 부인과 함께 옷과 담요를 준비해온 뒤바르브씨는 “노숙자들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집이 없으니 일자리를 주지 않는 거죠. 정부가 무슨 대책이라도 내놓길 바라죠”라며, 노숙자 문제에 정부가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도 더 이상 여론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위 17일 째 되던 지난 1월 3일, 우파 정부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노숙자 문제에 대한 법률적 보장을 약속했다. 이날 빌팽 총리는 “이 법안이 채택되면 주거권은 2008년 말부터 시행되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 노숙자뿐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 모자 가정에 우선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또 하나의 혁명이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취재가 진행되던 지난 1월 17일에는 프랑스 국무회의에서 ‘주거권 보장 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2008년부터 이 법안을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2012년에는 실질적인 마무리를 하게 되어 있다. 이 법안을 국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2012년부터는 집 없는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고소할 수 있다. 이미 사회복지사와 시민단체가 함께 노숙자들의 실태 파악에 나섰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 1억 유로의 예산을 책정해두고 있다. 이로서 프랑스는 스코틀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민의 ‘주거권’을 인정하는 나라가 됐다.

▲ 프랑스 파리 인근의 공공임대주택. 지난해 프랑스에 건설된 43만 채의 주택건물 중 14만 채가 공공주택이다.

 

공공주택 17%가 있어서 가능했다

리용에서 만난 노숙자 다비드씨는 국가로부터 최저 생계비로 440 유로(한화로 약 55만원)를 매달 지원받고 있었다. 사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 노숙자들은 한 달에 5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지원받는다. 집이 없는 노숙자들이라도 최저 생계비는 지원받는다.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는 갖춰져 있는 셈이다.

프랑스에서 공공주택은 전체 주택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각 도시마다 20%에 해당하는 주택을 공공주택으로 짓도록 하는 도시재건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꾸준히 공공주택을 지어왔고 지난해만 해도 14만 채의 공공주택을 공급했다. 공공주택은 같은 크기의 민영주택에 비해 절반 이하의 낮은 가격에 공급된다. 그러나 노숙자들의 경우는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공공주택에 들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 했다.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지난 한달 동안 프랑스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것인데, 정부가 마침내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전체 주택 시장에서 20% 가까운 공공주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전체 주택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의 한 요소로 공공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공공주택이 확고하게 주택가격의 중심을 잡고 있으니, 민영주택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공공주택이 확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난 100년간 공공주택 정책을 착실히 펴온 프랑스에도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있다. 60-70년대에 늘어난 공공주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고밀도로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어놓은 곳이 슬럼가로 변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주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업과 차별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프랑스의 공공주택은 저밀도의 낮은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곳들이 눈에 띠었다. 근본적으로는 공공주택 거주자들의 계층적 특성을 다변화시키거나 혹은 차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한 ‘사회적 혼합(social mix)’에 프랑스 사회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부동산 광풍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경우 공공주택은 현재 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공공주택 영역의 모든 단체와 협회를 대표하는 ‘주거를 위한 사회연합’의 폴 루이스 사무총장이 제작진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국이나 미국식 정치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주택 정책은 일종의 자선사업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공주택 정책이 사회를 통합시키고 나라를 연대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