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연왕모PD 방송: 2007년 01월 19일
악취가 나는 하수, 쓰레기가 뒤섞인 강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좁은 집, 각종
범죄의 온상. 아프리카 케냐의 가장 오래된 빈민가인 마사레 계곡을 대표하는 말들이다.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범죄와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마사레 사람들.
수도 나이로비 안에서 고립된 채 그들만의 작은 섬을 이루어 살아가는 이들의 비참하고
불안한 삶을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기회와 희망적인 삶을 찾아 대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거대한 도시의 한켠에
초라한 삶터를 마련해놓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난에 찌들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그들에게
삶은 그다지 희망적이지도 않고 기회도 찾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가난을 물려받고 사회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인해 쉽사리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런 빈민촌들은 외지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위험 지역이 돼버리고
만다.
그런데, 마사레 마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취재팀은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마사레 주민들 스스로가 나름대로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외신 기사에 따르면, 쓰레기와 도시 하수로 오염이 극에 달해있는
이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사레 마을의 청년들이 대대적인 대나무 심기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단체에서는 적은 비용으로도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범죄자들의 갱생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케냐에서 가장 오래되고 온갖 범죄의 온상으로 불리는 슬럼가 마사레, 그곳에서
희망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연락이 닿은 곳이
마사레 지역 봉사회(Mathare Community Outreach Centre)였다. 이 단체에서 진행하는
활동을 취재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의 생활 실태도 함께 취재해 나갔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무려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 가정은
하루 1달러도 되지 않는 수입으로 살아가는데, 맨바닥 위에 양철로 벽과 지붕을 만들어
세운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단칸방에 보통 대여섯 명의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상하수도
시설이나 화장실도 없다. 약 80원 정도 되는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곳곳의 후미진 곳에서 용변을 본다. 그래서 마을을 걸어다니다 보면,
신발 밑창에 인분이 묻어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길을 유심히 살펴보니 흙바닥이
아니었다. 수십년에 걸쳐 켜켜이 쌓여온 쓰레기와 먼지가 다져져서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땅을 파고 또 파도 쓰레기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사레에서 오물을 밟지 않고
걸어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은 마사레 계곡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어 있는데 그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른다. 그런데 이 물이 오염될
대로 오염돼 있어서, 악취가 대단했다. 바로, 나이로비 시내에서 흘러들어오는 하숫물이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안내를 맡았던 다니엘 오구투
목사의 말에 따르면, 이차대전 직후 나이로비가 한창 개발되던 시기에 이 마을이
생겨났다고 한다. 도시 건축을 위한 골재를 채취하던 곳이 바로 이 계곡이었고 그곳에
가난한 이들이 모여들어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골재 채취가 중단된 지금은
많은 이들이 도시의 하급 노동자나 거리 행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채 1달러도
되지 못하는 돈을 벌기 때문에 집에서 일터까지 두세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밖의 사람들은 법에 위배되는 일, 즉 범죄를 저지르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취재팀이 머물었던 기간 중에도 저녁 뉴스에서는 은행 강도 사건이
보도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는데, 대부분의 은행털이범이 마사레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나중에 은행까지 털게 되는 경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이번 취재의 대상으로 삼게 된 사람들이 밀주 제조자, 절도범, 매춘부였다. 그들이
바로 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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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스티브는 초등학교 졸업 후,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넝마주이, 도둑...
그리고, 3개월 전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 ‘창아’라는 술을 불법으로 만들어 파는
일이다. 옥수수 가루와 설탕 등을 넣어 발효시켜 만드는 이 술의 재료 상태나 발효
과정은 상상 그 이상으로 비위생적이다. 심지어 메틸 알콜을 섞어서 만든 가짜 술로
사망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을 내다팔아 벌어들이는
돈은 한 달에 2만원도 안 된다. 그나마 집값과 경찰에게 건네주는 뇌물을 제하면
손에 쥐는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 마을을 순찰하는 경찰은 10여개 팀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뇌물을 걷으러 다니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강도 현장에 정작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창아 제조가 이루어지는 하천 주변에서만
어슬렁거리는 경찰들을 자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취재팀에게까지
뒷돈을 요구했고, 그들이 원하는 돈을 쥐어주면 촬영은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치안과
사회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경찰들이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고 탈법을 자행하는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사레에 만연해있는 범죄에 대한 불감증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더욱 심화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나이로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피우스 무투쿠에 따르면, 사실 케냐는 정치적인
부패의 정도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들의 부패 문제 역시 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도 역시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들 만큼의 박봉에
시달리기 때문에 공공연히 뇌물을 받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관광 대국으로서
그리고 동아프리카 물류의 중심지로서 케냐에는 많은 외화가 유입되고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 상류층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탈법과 부패에 의해 재화가 편중되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굶주림에 지친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보고 따를 수
있는 모범 답안이 없는데 어떻게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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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마이클은 동네에서 쿠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달리기를 잘 하는 그가
특기를 살려서 하는 일은, 고작 절도범이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범행 대상이 나타나면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물건을 빼앗는 식으로 일을 저지른다.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범행의 피해자도 이 마을 사람이고,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일 텐데 왜 그들의 돈을 빼앗느냐고.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가 누구인가는
상관하지 않고, 다만 그가 돈이 되는 물건을 쥐고 있느냐 하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수렵 부족민들이 오늘의 끼니를 위해 사냥에 나서는 모습과 흡사했다. 비록
그들이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 역사를 거치고 그에 따라 개화 과정을 거쳤지만, 현대
문명이 가져다주는 편리한 생활의 혜택은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마사레 마을 바깥에서
부자들이 고급차를 타고 쇼핑몰에서 화려한 옷을 사입고 유기농 음식으로 차려진
식사를 할 때(실제로 케냐 상류층들의 생활은 서구 사회의 부자들과 다를 바 없다),
상대적인 빈곤감은 더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문명화되지 못한 채
아직도 부족 사회의 수렵 생활로 하루를 연명하는 일종의 도태된 부류인 셈이다.
그는 14살 때부터 남의 것을 훔치기 시작했고, 다른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외부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기만 할 뿐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현재 그가 기대하고 의지하는
곳은 마사레 지역 봉사회라는 단체다. 그곳에서 이미 여러 범죄자들이 갱생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는 교회를 다니며 마을 정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의 생업인 절도 행위는 그만두지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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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곳에서든 빈곤 지역에서는 여성들의 삶이 더욱 힘겹고 고단하다. 배운
것도 없고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매춘이라는 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17살부터 매춘을 시작했다는 주디는 1살 난 딸을 데리고 산다. 매춘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아이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주디는 굳이
아이 아버지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마사레 마을 남자들 중에 가정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모두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후, 중학교 진학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딸만큼은 자신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 길은 너무 멀기만 하다.
이처럼 도처에서 범죄가 횡행하는 지역에서, 어떻게 별 탈 없이 취재를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이번 취재의 경우를 놓고 보면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먼저, 취재를 도와준 사람들이 마사레 마을 내부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며 신임을 얻고 있는 단체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인데, 특히 그 중에서
존 마콰타라는 친구는 마사레 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주먹패였다. 다행히 그는 마사레
지역 봉사회의 전과자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현재는 신학대학 4학년에 다닐 정도로
개과 천선을 한 경우다. 취재팀의 곁에 그가 있었기에 마사레 사람들이 큰 경계심을
갖지 않고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이유를
그들로부터 듣게 됐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을 볼 때 모두
무술에 능한 사람들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취재를 하면서 많이 들었던 얘기는,
내가 ‘부르스 리’ 아니면 ‘잭키 첸’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부르스 리(이소룡)’와 닮았다고 하고 나이 어린 아이들은 ‘잭키 첸(성룡)’과
닮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내가 그들과 닮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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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레 지역 봉사회(Mathare Community Outreach Center)에서는 범죄에 의지해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탈피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직업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범죄자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런 활동에는 당연히 금전적인 지원이 따라주어야만 한다. 이
단체도 그간 독일의 NGO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지원이 중단됐고,
따라서 활동도 거의 중단 위기에 처하게 됐다. 대나무 심기 프로젝트의 경우도 역시
외국 NGO의 지원 하에 마사레 청년 커뮤니티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련자도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활동은 중단된 지 오래였다. 그 역시 지원금이
끊겼기 때문이다. 마사레의 희망을 찾기 위한 활동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획기적인 프로젝트라도 또는 어떤 NGO의 막강한 지원이
있더라도, 60여년 동안 뿌리박힌 50만 마사레 인구의 삶을 통째로 뒤바꾸긴 힘들
것이다. 마사레 마을의 환경 개선은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 마련되고, 경찰과 범죄 조직 간의 유착 관계가 끊어지고,
부패한 관료들의 행태가 사라지고,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마사레의 지붕에도 밝은
햇살이 비치는 날에는 보다 현실적인 희망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장기적인
계획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케냐에 가난한
사람은 마사레 사람 뿐만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곳의 개선을 위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거라고. 그렇다면, 과연 빈곤과 범죄와 부패... 그 사슬은 결코 끊을 수 없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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