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호영PD 방송일: 2007년 01월 12일
탈북여성 인신매매실태
'난 중국으로 팔려왔습네다'
연변에서 왔어요!


중국 칭다오의 한 노래방 거리, 이곳에는 한국의 노래방 문화가 자리잡은지 오래다.
이곳에 접대부로 일하고 있다는 북한여성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네온싸인이
화려한 노래방들... 밤거리를 탐색하던중 한 노래방 업주가 북한여성을
불러준다며 취재진을 유혹했다.
취재진이 자리잡은 방으로 들어온 두명의 여성...
'고향이 어딘가'
'연변에서 왔다'
노래방 업주와 그녀의 말이 다르다. 그녀들은 신분을 속이고 있었다. 잠시후
계속 되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녀가 어렵게 대답한다.
'5년전 중국으로 팔려왔다. 여기 있는 여자들 백이면 백 중국으로 팔려온 북한
여자들이다'
그저 탈북한 것이 아니고 팔려왔다는 그녀들의 말...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잠시후 노래방에 중국공안의 단속이
떳고 그녀들은 술잔을 엎어가며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탈북! 그리고 인신매매 강제 결혼! 막다른 길... 노래방 매춘! 다음날
또 다른 노래방에 일하고 있다는 여성들을 만날수 있었다. 만남의 장소는 한
민박집... 이곳 민박집은 탈북여성들의 돈벌이 수단이다.
'손님들과 노래방에서 놀다가 여기(민박집)에서 매춘을 한다'
그녀 또한 중국으로 팔려온 북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취재진과의 인터뷰 내내
불안해 하고 있었다. 취재진임을 밝혔지만 그녀는 취재진의 신분증을 보여줄것을
요구했으며press가 뭐냐고 되물으며 재차 확인을 했다.
'그저 장사하는 줄 알고 북한에서 부터 한 남자를 따라 넘어 왔는데... 어떤
남자한테 넘기더라'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혹했다.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중국
땅에서 매춘은 막다른 길이었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 나이 이제 20대 중후반...
20살에 40대의 아버지 뻘되는 남자에게 팔여왔다가 2년전 그 남자에게서 도망쳐서
현재 칭다오의 밤거리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고 했다. 수년간 매일 밤마다 벌어진
원치 않는 잠자리... 그렇게 그녀는 지처가고 있었다.
'내 아는 여자동무는 머저리 같은 남자와의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침대에
묶여져서 그 남자의 사촌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탈북여성을 돈을 주고 사는 남자들은 몸에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라고 한다. 수년간 폭력과 성착취에 시달린 이 여성은 말도 통하지
않고 일가 친척도 없는 중국땅에서 쉽게 도망나오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었고 어떤 외침도 할수 없었던 중국에 팔려온 20대의 삶...
'여기서 사는 동안 가짜 신분증도 만들고 말도 배워서 도망쳤다. 처음엔 그렇게
당하고도 신분(탈북자)이 이렇다 보니 어쩔수 없이 살아야 했다'
그녀는 한국으로 밀입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일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다시 한번 본인의 신분을 감춰줄것을 부탁하며 돈벌이(매춘)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 여자들 소값이다 소값
취재진은 북한여성들을 관리하고 있는 한 남자를 어렵게 만날수 있었다. 매춘을
알선한다는 그 남자는 그녀들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변방지대(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서 처음으로 거래되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몇차례의 매매를 거쳐서
이곳까지 온다고 했다. 여자들의 나이, 인물, 키에 따라서 가격이 책정되고
중국 내륙으로 들어올수록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고 했다.
'변방에서 3000위안(한국돈 약40만원)정도에 첫 거래가 되는데 그거 뭐 소값이지
소값. 허허허.'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의 웃음소리에서 인신매매된 탈북여성들이 짐승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주고 산 사람 마음대로


중국 변방지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취재진은 탈북여성
인신매매 실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변방지역인 연변으로 향했다. 접선이
이뤄진다는 두만강은 영하20도의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고 불과 30-40미터 앞의 총을
든 북한군의 경계가 예사롭지 않았다. 취재진이 북한군을 향해 소리쳐 인사를
해보았지만 그들은 묵묵 부답이었다. 변방지대의 탈북여성 매매브로커와의
접촉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북한여자를 판다는 한 남자를
만날수 있었다.
'당신들(취재진)이 원하면 북한 여자를 데려다 줄수 있다. 나이에 따라서
1만위안(한국돈 약 130만원)이상 거래된다.'
안전하게 데리고 오냐는 물음에 그의 입에서 이어지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군(북한군)출신이다. 북에 아는 군인들이 뒤를 봐주고 데려온다. 재수없으면
잡히는 것이고... 여기(중국)에 데리고 오면 또 여기 사람에게 건네주고 그
사람이 또 팔고...'
그는 놀랍게도 북한군 출신이었고 현재도 북한국적의 남자 였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를 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 만날수 있었던 중국측 인신매매
브로커에 따르면 96년부터 탈북여성 인신매매가 이뤄졌고 전체적으로 보면 3만명
남짓 중국으로 팔렸을 것이라 했다. 북한의 현재 사정을 묻자 경제적인 사정은
조금 좋아졌지만 군비로 많이 써서 국민들이 여전히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돈을
벌수 있다고 말하면 중국으로 탈북을 쉽게 결심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속이고 데리고 왔는데 요즘엔 여자들에게 의사를 묻고 데려온다.'
도리어 취재진에게 자신있게 말한다.
'북에서 배고파서 죽느니 차라리 목숨걸고 넘어와서 먹다 죽는게 나은거 아니냐?
난 그 사람들한테 기회를 제공하고 댓가를 받는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사고 팔며 그녀들의 잠깐의 현실탈피를 도와주는 것으로
할일을 하는 것이라는 이 남자... 팔린 후 그녀들의 짐승 같은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제껏 떳떳하게 말하던 그의 입에서 무책임한
말이 나왔다.
'그거야 돈주고 산 사람이 알아서 할일이고...'


차라리 북한에 다시 가고 싶다
취재 도중 최근 인신매매된 뒤 도망쳐 나와 숨어사는 한 탈북여성을 만날수 있었다.
그녀가 거처하고 있는 집에는 분주하게 남자들이 컴퓨터를 옮기고 있었다.
팔려 온지 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직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생활에서 그녀가
숨어서 하는 일은 '성인화상채팅' 그나마 단속이 두려워 그녀를 고용한 조선족들이
그녀의 거처를 옮기는 중이었다. 그 조선족들이 짐 옮기러 자리를 비운 사이
짧게 인터뷰를 할수 있었다.
'아는 언니가 북에 잡혀가고 나서 내 거처를 말할까봐 걱정이 되서 집을 옮기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에도 수시로 창문 밖을 내다보며 불안함을 표했다.
'한족에게 팔려가면 잘 산다 해서 왔는데... 나를 판 사람, 산 사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그땐
중국에 와서 조금 고생하고 돈 벌어서 북에 가족한테도 보낸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그간의 생활의 고통을 엿볼
수 있었다. 북에서부터 어느 남자의 꾀임에 팔려간다는 것을 알고도 탈북한
그녀...
'북에 오자 마자 기차에 나를 태웠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한족한테 팔려서
7개월 동안 살았다. 그가 외출 나가면 문을 잠그고 나를 가뒀다. 매일
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나를 가졌다.'
중국의 한 지방에 팔려간 그녀는 필사적인 탈출을 해서 변방지역인 연변까지 와
있었다. 다시 북으로 넘어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북에 다시 갈 여비를 벌려고
성인화상채팅을 하고 있는 그녀... 하지만 그녀를 고용한 조선족은 계속 돈
주기를 미룬다고 했다.
'내 신분(탈북자)이 이렇다 보니... 돈을 안 줘도 어디 말을 할 데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올해 안에 중국을 떠날 것이라는 그녀에게 앞으로 닥칠 일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엄마가 누구에요?
많은 수의 인신매매된 여성은 매매된 뒤 몇 년이 지나고 말이 통하게 되면 삶의
고통을 참지 못해 도망가거나 탈북 신분이 드러나 잡혀가고 있었다. 그녀들이
겪은 중국에서의 고통, 그리고 남겨진 슬픔...
취재진이 방문한 한 변방지대의 농촌 가정에 사는 민철(가명,6세)이는 엄마가
없다. 아이는 친 할머니의 손에서 커가고 있었다. 첫돌이 지나고 엄마는 잡혀서
북으로 강제 소환 됐지만 민철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의 할머니는 그녀가 잡혀간 사실도
모르고 있다.
'애 돌 지나고 갑자기 없어졌다. 본인 생각과 생활이 다르고 힘드니까 도망간
것이겠지. 애 아빠는 정상적이지 않아서 애를 키울 수도 없고...'
탈북 신분의 민철의 엄마와 조선족인 아이의 아빠사이에서 민철을 낳았지만 탈북자
신분 때문에 아이의 호적을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칠순을 바라보는 아이의
할머니는 자신이 힘든 것 보다 아이 걱정에 인터뷰 내내 눈물을 적셨다.
'애 엄마가 신분이 그렇다 보니 애 호적이 아직 없다. 이제 학교를 갈려면 애
호적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다. 돈을 주고 만들어야 되는데...'
결혼식은 했지만 인정이 안 되는 결혼... 그리고 태어난 무국적의 아이...
기백만원이 드는 가짜 호적을 만들기는 엄두가 나지 않는 가정형편... 아이는
그저 집에서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커가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니?'
'엄마가 누구에요?'
더 이상 아이에게 엄마에 대해 물어 볼수 없었다.
북한은 그녀들을 책임져 주는가?
오늘도 한 북한 여성은 북한의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 드림을
가지고 또는 속아서 중국으로 팔렸을 것이다. 그리고 몇일 뒤 무엇인지
모를 '체념'을하며 중국에서 아버지 뻘의 한 남자와 살아가야 될 것이다. 폭력과
성착취... 그저 겪으며 살아야 될 것이다. 또... 다시 언젠가
그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녀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 정부는 왜 그녀들이 북한을 '탈출' 하려는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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