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방글라데시 염산폭력을 고발한다 (0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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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영PD

방글라데시 정부도 염산폭력의 실태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방글라데시로 가는 길은 제 3국을 거쳐서 갈 수밖에 없다.
선교, 사업...아직은 실험적인 나라 방글라데시...
세계최빈국이면서 행복지수가 세계1위라고 알려진 나라 방글라데시...그곳에 아직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염산폭력!....염산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왜 그곳은 염산 폭력에 두려워하며 행복지수 1위로 알려져 있는 것인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염산테러 실테를 취재하기 위해 ASF(ACID SURVIVORS FOUNDATION) 즉, 산에 의한 공격을 받고 생존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회를 찾았다. 이곳은 말 그대로 국제사회의 지원과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염산 피해자의 재활과 법적 소송등에 도움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서 만난 단체 협회장은 취재진을 반지기 않았다.

다음은 그와 잠시 만나서 나눈 얘기의 전부다.

기금회관계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우리 NGO단체가 염산관련된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취재진
“당신들 단체도 염산피해자를 돕고 있고 우리도 그런 염산피해자를 세계에 알림으로써 그런 피해를 직,간접으로 줄이고자 한다. 취재에 협조해 달라.”

기금회 관계자
“최근에도 BBC기자등 외국기자가 염산테러 문제를 취재중 잡혀서 감금되었었고, 그일을 도운 방글라데시 기자들은 현재 징역형을 살고 있다. 당신도 취재가 불가능할 것이다”

취재진
“취재 정보를 절대 방글라데시 내에서 들키지 않겠다. 인터뷰등의 취재협조를 부탁한다.”

기금회 관계자
“인터뷰는 절대 할 수 없다. 당신이 한국에서 방송을 하는것은 우리도 환영이지만 그전에 당신이 잡혀간다면 도움을 준 우리 단체도 힘들어진다.”

 

방글라데시에서 염산문제를 놓고 가장 큰 지원을 하고 있다는 비정부 단체 ASF...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방글라데시 정부는 염산폭력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외국에 흘러나가는 것을 극히 원하지 않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실정이기에...이런 NGO단체도 정부를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인가...

 ASF가 공식적으로 취재진에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시골로 내려가면 취재가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우린 도와줄 수 없으니 지방에 내려가서 한번 찾아봐라...이런 식이 된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아직도 수도 다카를 제외하고는 어떤 정치적인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고 한다. 결국 수도 다카를 나와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쟈스민에게 염산을 뿌린 범인은?

△염산테러 전 자스민의 사진

△염산테러를 당한 후,
    6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자스민

보리샬이라는 지역을 찾았다. 그곳에서 스피드트러스트라는 단체를 현지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 역시 취재의 허용에 대해 조심했지만 수도 다카와는 먼 거리에 있으므로 짧은 기간의 취재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왜 염산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대답은 실태를 파악하기 전에는 믿기 힘들었다.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좋아하는 여자를 강제로 차지하기 위해 염산을 뿌려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염산에 의한 폭력의 원인은 재산문제, 땅문제, 정치적인 갈등, 청혼거절의문제등등 ...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청혼거절의 문제라고 한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당연히 여성(70%)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거부한 ASF의 책자에 따르면 최근6년간 약2000건의 염산폭력이 신고 되었지만 그 횟수는 깊은 시골등지에서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절대 부족한 통계치라고 한다.

어떤 여성들이 이런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취재진은 염산폭력 피해자인 쟈스민(20)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낯선 취재진을 보자마자 몸을 숨겼다. 가족의 설득으로 겨우 얼굴을 드러낸 쟈스민...

“방글라데시 기자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 그녀가 내 뱉은 첫마디였다.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라고 하며 그녀와 인터뷰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행동에서도 방글라데시 정부의 손길이 아주 미흡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몇 건의 방글라데시 내의 취재가 있었지만 정부의 도움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얼굴은 물론 가슴과 배 팔 손...그리고 녹은 얼굴에 살을 붙이기 위해 일부 잘라내어진 허벅지...... 대부분이 복원이 불가능한 화상... 눈은 염산의 독으로 거의 실명상태...

20살의 여인으로 보기엔 너무나 큰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범인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던 종업원이었다고 했다. 평소 쟈스민을 짝사랑하던 범인이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염산을 뿌린 것이라고 한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 못 가게 하기 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에 염산을 뿌렸다니... 한 여자를 그렇게 만들면서 그 여자를 소유하려는 어리석은 인간이하의 생각을 하다니.... 단 1초만 생각해도 너무나 미련하고 인간이하의 짓이었다. 정말 그는 그녀의 그런 얼굴을 보고 평생을 살려고 했단 말인가....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한마디로 반 살해다.

쟈스민은 흥분했다. “그를 다시 보면 똑같이 염산을 뿌려서 죽이고 싶다”...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을 엿볼 수 있었다.

범인은 범행 1주일 후 경찰에 의해 잡혀서 현재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살고 있다. 쟈스민이 말한다. “그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 무섭다.“ 무기징역을 받은 자가 감옥에서 나올것 같다며 몸서리를 치는 쟈스민....취재진은 마제다를 만나고서야 쟈스민이 한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제다의 범인은 여전히 방글라데시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7년 전, 염산테러를 당한 마제다

수소문 끝에 마제다(22)라는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7년전의 상처, 그리고..상처를 가리고 선그라스를 낀 7년후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임신7개월때 당한 염산폭력...그것은 테러였다. 당시 뱃속에 있던 아기는 벌써 커서 7살...아이가 커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통과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집안일도 감으로 하는 마제다...그녀의 남편은 이제 없다. 그 사건 후 남편은 그녀를 떠났다고 한다. 그녀에게 염산을 뿌린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던 이웃사촌...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임신을 하자 보복으로 염산을 뿌린것이었다. 그 범인은 3년간 도망다니다가 잡혀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3년간 옥살이를 하고 1년전 풀려났다고 한다. 도대체 이 나라 형법이 이 모양일까...방글라데시 정부는 염산의 후유증이 단지 흉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반 살인의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다시 풀려나서 활보를 하고 다닌다는 것인가...

마제다는 삶의 희망이 없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 미소는 지을 수 있지만 앞으로의 꿈은 없다. 언제까지 밖으로 나가 생활하지 못하며 이렇게 지내야 할까?......

 

신이시여! 그들을 벌하소서!

깊은 시골로 들어가면서 피해여성들의 상처는 더 깊었다. 고르노디 지역에서 만난 닐루파..

1여년전 돈문제로 남편과 다투다 남편과 그의 조카에게 염산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빌린돈을 갚기 위해 남편을 찾은 닐루파...하지만 새로운 가정을 차리고 새로운 부인과 그녀를 돌려보낸 그의 남편...그리고 그날 저녁의 염산테러...

고르노디의 경찰서의 1차조사에 따르면 그녀에게서 진술 받은 것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녀의 남편을 주요 용의자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뒤 1년이 지났지만 남편은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용의자인 남편은 어떻게 해서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을까?

글도 모르는 닐루파를 위해 그녀를 경찰서에 데려갔던 NGO단체 관계자는 말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안되는게 없다. 돈이면 이런게 가능하다”

취재진은 NGO와 함께 그 남편을 찾아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지방선거에도 출마할 정도로 지역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에 위험하다고 했다. 취재진의 설득에 NGO는 동행을 어렵게 허락해 줬다. 용의자로 지목된 그의 행방을 알아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취재진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그의 거처를 경찰은 찾아보지도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재진의 느닷없는 방문에 그의 새로운 식구들은 당황했다. 넉넉해 보이는 집안에는 그의 새 부인과 그 부인의 가족들이 있었다. 취재내용에 대해 가족들에게 말하자 잠시 후 닐루파의 남편이 나왔고 취재진을 향해 ‘앉아라..형제들이여 앉아라’ 이 말을 남기고 그의 새 부인과 함께 가로등하나 없는 산으로 뛰쳐나가버렸다. 분명 그의 행동은 범행을 인정하고 있었다.

닐루파는 어머니를 안고 오늘도 외치고 있다. “신이시여 그들에게 벌을 주소서, 나를 이렇게 만든 범인들을 벌을 주소서” 그녀들의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는 그렇게 방글라데시 어떤 정부의 힘도 받지 못하고 신을 원망하며 신을 기대하고 있었다.

행복지수가 1위로 알려진 나라 방글라데시.....

어쩌면 이런 문제를 생각조차도, 고민도 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진 것이 아닐까?..일반 방글라데시 국민도 정치인도 법조인도 이젠 알아야 할 것이다. 알려져야 하며 알려야 하며 이런 염산폭력으로 고통당하는 방글라데시 여인들이 없어질 때 까지 그들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행복하려하기 전에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글라데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