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1월 15일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로 말하자면 정월 대보름이다.
메이지유신이래로 양력을 사용해온 일본은 설날이나 기타 명절들을 양력으로 지낸다.
그래서 1월 15일을 전후하여 일본 곳곳에서는 대보름을 맞는 축제, 즉 마쯔리가 열린다.


그 중에서 W가 취재한 곳은 우선 일본의 두 번째 도시, 바로 오오사카. 1월 14일에
열리는 오오사카의 마쯔리는 가장 큰 사찰인 사천왕사에서 열리는 도야도야마쯔리
축제는 오전 10시에 열리기로 되어있었지만 여름장마를 연상시키는 굵은 빗줄기로
인해 오전에 계획됐던 유치원생들의 행사는 취소가 되었다.

빗줄기로 인해 몇몇의 신도들외에는 한산했던 사천왕사는 10시가 조금 넘을 무렵부터
조금씩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의 무리가 속속 모여 들었다.

강당에 모여든 학생들은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열심히 뭔가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흰색과 붉은 색줄을 엮어 만든 것은 바로 머리띠, 각오를 다지기
위해 머리에 묶는 모습은 우리네 풍경과 다르지 않다. 준비중이던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에 일제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간 곳은 바로 화장실, 마쯔리 복장인
훈도시를 갈아입으면 화장실에 가기가 불편해 미리 다녀와야 하는 것. 화장실을 다녀온
학생들은 가방에서 훈도시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훈도시를 입혀주는 것은 바로
선생님들의 몫, 아무래도 훈도시를 착용할 일이 적은 요즘, 학생들에게 있어서
훈도시 착용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가 맡은 진영에 따라 흰색이나
붉은 색의 훈도시를 갈아 입는다. 단단히 고정해야 하는 만큼 선생님들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여기저기서 아프다는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학생들은 처음 참가하는 학생부터 세 번째 참가하는 학생까지
다양했다.
“어떻게 하는거예요? 줄을 만들어서 영차 영차하면서 달려가요. 그리고 나서
본당에서 부적을 잡는 거에요.”
부적을 잡으면 올 한해 행운이 있을거란 믿음을 가지고 축제가 참가한다. 특히나
올해 입시를 앞둔 예비 고3학생의 경우 각오가 남달랐다.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꼭 부적을 잡으려고요.”
게다가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학생들이 준비하는게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몸매관리,
비록 지역전통이긴 하지만 사춘기 나이 소년들에게 훈도시만 입고 많은 사람들앞에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대개 3개월전부터 몸만들기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 학교 여학생들이 눈여겨보기 때문에 신경을 좀 쓰는 편이예요.”



3시가 되자 선생님들의 구령과 함께 학생들이 밖으로 몰려 나왔다. 비록 다른
곳에 비해 따뜻한 오오사카지방이지만 겨울비가 내리는 1월의 날씨는 결코 만만한게
아니었다.
시작을 알리는 구령과 함께 훈도시차림의 학생들은 열을 맞춰 왓쇼이,왓쇼이(영차,영차)를
외치며 본당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가서 부적을 잡는다고 해서 그 명칭도
‘도야도야’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데서 유래되어 농민과 어부를 상징하는 백팀과
홍팀으로 패를 갈라 진행된다. 어느덧 버선을 신은 발이 온통 흙탕물로 젖었지만
학생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드디어 본당에 도착할 무렵 어느덧 본당 앞에는
이 광경을 지켜보기 위한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는 구경나온 사람뿐 아니라
참가한 학생들의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반대쪽에서는 다른 색의 훈도시를 입은 학생무리가
다가왔다. 그렇게 도착한 무리는 각자의 색깔에 따라 양 옆으로 갈라섰다.

두 무리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각오를 다지는 구령과 구호를 외쳐댔다. 그런 학생들의
머리위로 선생님들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맨 몸으로 부딪히는 학생들의 마찰을
줄이고 안전을 위해서 뿌리는 것이다. 학생들의 열기로 인해 금새 뿌옇게 김이 피어
올랐다.

그리고는 부적이 뿌려질 본당안팎을 들락날락하며 일종의 연습하기를 몇 번, 드디어
본당에 자리 잡은 학생들 머리위로 부적이 뿌려졌다. 저마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부적을 잡기 위해 학생들의 몸싸움이 이어졌다. 지켜보는 관객들도 숨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봤고 학부모인듯한 관객들은 아들이 부적을 잡길 바라는 마음에 “잡아,잡아“를
외쳐댔다. 순식간에 몇몇 학생들의 손에 부적이 쥐어졌다. 그렇게 마쯔리는 끝이
났다. 부적을 잡은 학생들은 기쁨을, 부적을 놓친 아이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적을 잡았는데 올해 어떨 것 같니? 올해 고3이 되니까 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기합이 부족해서 놓친거 같아요. 내년엔 꼭 잡을거예요.”

하지만 축제를 끝마치고 미소짓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 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부적
그 자체가 아닌 그러한 행위를 통해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다음 축제가 열린 곳은 동계올림픽개최지로 잘 알려진 나가노현, 그 가운데 노자와지역.
오오사카에서 차로 약 8시간가량을 가야하는 곳이다. 이 곳은 지난 12월경 니가타현과
더불어 엄청난 눈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이다. 노자와에 가까워 질수록 길가에 쌓인
눈의 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많이 녹았다는 지금도 고속도로 양 옆으로 많게는 3미터
가까이 눈이 쌓여 있었다. 도로 부분만을 중장비로 치운 도로는 마치 눈벽으로 된
터널을 지나쳐 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날이 따뜻해지고 눈이 녹아 내리면서
도로 곳곳에 무너져 내린 눈벽을 치우는 제설작업이 한창이었고 눈사태로 인한 붕괴사고나
도로통제에 대한 뉴스등이 라디오를 통해 계속 흘러 나왔다. 노자와에서 니가타로
넘어가는 도로는 산사태로 인해 전면통제 되고 있었다. 인근에서는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지붕의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시골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령화로 인해 눈을 치우는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생활을 하기에
최소한의 눈만 겨우 치운 채 저절로 눈이 녹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3,4미터의 눈 위에서 눈을 치우다 파묻혀 사고를 당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매년 이렇게 많이 오나요? 이렇게 눈이 많이 온 건 몇 십년만에 처음이야”
“피신은 안하셨었나요? 피신했다가 눈이 쌓여서 집으로 못들어갈지 모르니까
못갔지, 밖으로 나갈수 있게 문 앞의 눈만 계속 치웠어”
축제가 열릴 노자와 또한 많은 눈이 온 상태였다. 스키장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워낙 많은 적설량으로 인해 오히려 관광객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축제준비 또한
눈으로 인해 많이 지연되고 있었다. 축제가 열릴 당일 낮이었지만 아직도 축제장소에서는
축제에 불태울 나무 기둥, 신기를 만들어 세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보름에
열리는 마쯔리 가운데 대표격인 노자와의 불축제 못을 한 개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신전 속에 집집마다 장식했던 달마의 머리모형과 금줄을 넣고 태우는 160년의
전통을 가진 도조신 마쯔리다. 매년 새로 베어진 나무로 만들어진 한 쌍의 도조신.
우리로 치면 마을 어귀에 세워져있던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같은 의미이다.

“나그네들의 안전과 외부로부터 악령을 막아주는 신입니다. (노자와에서는) 자식복과
인연의 로 여겨 정월 15일에 축제를 엽니다.“

십미터 가까운 높이의 신기주위에는 몇 십명의 마을 남자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불이 붙었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굵은 밧줄을 단단히
묶기도 하고 사다리에 일렬로 올라 일사분란하게 불태워질 나뭇가지와 물건들을 머리위로
들어 나르기도 했다.
그렇게 신기가 완성되고 신기아래 제사상이 차려졌다. 전통복장을 한 신사관계자가
제사를 집행했다. 축제가 아무런 사고없이 끝마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는 것으로,
우리네 고사와 비슷한 의식이었다.

고사를 지내기 위해 줄을 선 마을 남자들을 보니 무리에 따라 다른 색깔의 복장들을
하고 있었다. 푸른색에서 오렌지색까지 다양했는데, 이는 연령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연령에 따라 각자 맡은 책임들을 달리 하고 있어서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번 축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남자들은 25세와 42세가 되는 사람들. 25세와
42세는 인생의 전환기에 해당하지만 몸을 조심해야 하는 특별한 나이. 마쯔리를 무사히
성공시켜야지만 액운을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들은 오늘도 도조신 축제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축제의 준비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질 무렵, 중요한 역할을 맡을 25세와
42세의 남자들이 전통복장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눈이 많은 노자와지역의 전통복장은
바로 짚으로 만든 모자와 외투, 그리고 장화.
“마을남자들에게 이 마쯔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음... 등용문이라고 할까요.
이 축제를 무사히 성공키지 못하면 노자와의 진정한 사나이가 될 수 없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길의 신’에게 올해의 복을 기원하는 마쯔리 행렬은 이제
특별한 곳으로 향한다. 불축제 때 반드시 필요한 불씨를 받는 특별 의식이다. 부싯돌로
만들어진 작은 불씨가 더 큰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축제 참가자들의 열기 또한 더
크게 점화되고, 해마다 첫 보름달이 뜨면 어김없 이 행해지는 노자와의 전통이다.
흥을 돋우는 북소리와 함께 도조신 불축제는 이제 절정으로 접어 들고,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불축제. 신전을 향해 돌진하는 불길, 축제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일본의 3대 불축제라는 그 명성을 확인시켜준다.

육아의 신으로도 숭배되는 도조신 축제에 마을 어린이들의 점화가 끝나고, 흥에
취한 성인들의 점화 차례, 그 기세가 달라진다. 신전을 사이에 둔 성인 남자들의
공방전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매년 열리는 노자와 불축제지만 보는 이의 흥미진진함은
변함이 없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 세네요.”
“다 같이 하나가 되어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니까 감동적이고 기분도 너무 좋아요.”
축제가 진행될수록 도조신 불축제는 더욱 격렬해지고, 오늘을 위해 일년을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대단한 열정을 내뿜는 노자와 청년들. 이틀간의 공동 작업으로 세워진
신전을 2시간만에 태워버린 후에야 축제는 끝이 나고, 모두 다함께 준비하고, 모두
다함께 성사시킨 마쯔리. 그 감동도 함께 나눈다. 축제를 무사히 마쳤다는 감동으로
함박웃음짓는 사람들부터 벅차오르는 감격에 부둥켜우는 청년들도 있었다.


“동생이 축제에서 무사히 역할을 마치고 진정한 사나이가 되어서 너무 기뻐요.”
“눈이 많이 내렸고,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만 봄이 오면 또다시 눈이 녹을거니까
그런 희망을 갖고 이번 축제를 통해 그간의 나쁜 일들은 다 날려버릴 겁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관심으로 이어져온 도조신 마쯔리.
작은 불씨가 만들어낸 그 불꽃이 일본의 대보름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