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차베스,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0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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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PD


△ 알로 프레지덴떼 (Alo Presidente)진행하는 차베스 대통령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정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 2004년이었다. 당시 한국은 이른바 탄핵정국이었고 그당시 나는 W가 아닌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MBC 시사교양국의 한 선배가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후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 있구나, 그리고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정치상황이 한국과 비슷하다며 흥미로워 하는 걸 보고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를 보게 되었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좌파 지도자 차베스가 쿠데타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민중의 봉기에 의해 다시 복귀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구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변혁을 강조하고 있으며, 권력을 잡기 위해 IMF와 타협한 변절한 좌파도 아닌, 진행중인 혁명의 중심에 서있는 육군 대령출신 차베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다큐멘터리에는 군부 쿠테타의 발발과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게 된 과정이 현장에서 생생하게 포착되었다. 이 과정에서 베네수엘라의 상업적인 미디어는 군부 쿠테타를 지지하며 이에 반대하는 민중봉기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은폐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 상업적인 미디어가 기득권의 상실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참주선동을 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만나게 된 베네수엘라 민중 봉기의 진실은 기존 외신을 통해 전해 들은 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서방언론을 통해 들어온 베네수엘라의 쿠테타는 반차베스진영의 상업미디어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논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와 같은 수준이었다.

뉴스 속에서 비춰진 차베스는 석유자원으로 자유민주주의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후세인과 같은 인물로 묘사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언론도 차베스를 주목했는데 쿠테타로 실각위기를 맞이한 차베스대통령과 탄핵으로 정권에서 퇴출 위기에 놓인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육군 대령 출신에다 원주민 출신의 과연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의 대통령과 고졸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의 계급적인 한계를 포플리즘에 기대어 돌파하려했다는 점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국내언론이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던 노무현과 차베스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차였다. ‘신자유주의’노선의 저항하는 권력과 그렇지 않은 권력. 이것은 ‘차베스’와 ‘노무현’의 정치적 위기의 토대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잣대이기도 하다.    

 

 

차베스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 알로 프레지덴떼 (Alo Presidente)는 차베스 대통령이 직접 진행할뿐 아니라
    장,차관등 정부정책책임자들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가족들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막내딸을 안고 차베스대통령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차베스 대통령은 바로 권좌로 돌아왔다. 정치적 위기는 이후에도 몇차례 계속되었지만 그때마다 차베스는 부활했고, 그는 현재 안정된 정치적 기반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게다가 차베스는 “반미‘ ’반세계화‘의 투쟁의 가장 중심인물로 위상이 강화되었다. 북한과 더불어 세계유일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쿠바 카스트로와의 돈독한 친밀감을 과시해 서방세계, 특히 미국의 강한 비난에 직면했음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정치적인 행보를 계속하는 자신감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 2005년 봄 개편때 W가 신설되면서 차베스 대통령의  정치실험에 대해 한번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차베스 대통령과의 단독인터뷰를 추진했다.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무응답‘이었다. 세계적인 이슈메이커가 된 차베스대통령은 전세계 주요 언론에서 인터뷰요청이 늘 쇄도하고 있어 일일이 응답하기 조차 어렵다는 것이 대통령궁 공보담당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언론취재와 달리 베네수엘라에서 일반시민들이 대통령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치적 위기가 올 때마다 차베스대통령은 자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돌파했고 차베스에 의존한 1인 정치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대통령이 직접 진행하는 TV프로그램이다.  VTV라는 국영 텔레비전에는 일요일마다 ’Alo Presidente'(여보세요 대통령)라고 대통령이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방송이 된다. 한국적 정서로는 대통령이 공중파를 통해 소위 ‘국정홍보 방송’을 장시간 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차베스 집권 초기부터 기득권층 특히 상업미디어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다보니 각종 개혁정책들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생방송으로 대략 6-7시간,  대통령이 직접 진행하고 장, 차관 등 그날의 주제에 관련되어 있는 부서의 책임자들이 모두 출연해 대통령과 국민에게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취재진들도 취재기간중 'Alo Presidente'의 취재와 방청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인터뷰는 절대 불가, 대통령 전방 1M이내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였다.


△ Vtv (베네수엘라 국영 텔레비전)을 통해 매주 일요일마다 방송되는
    알로 프레지덴떼 (Alo Presidente- 여보세요 대통령)


이날의 주제는 기후변화와 교토의정서였다.  국민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환경부 장관이 출연, 교토의정서가 무엇인지,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 가르치듯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고 대통령도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평소 ‘부시와 미국’에 대한 독설로 유명한 차베스 대통령은 이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하는 상황이 담긴 비디오 화면을 내보내면서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는 원인이 바로 지구 온난화와 때문이라는 발언이 시작됐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 산업계 전반’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를 해버렸고 카트리나가 왔을 때 ‘크로포드’ 목장에서 휴가중이던 부시대통령이 미국 국민들에게 했던 말은 ‘피하세요’뿐이었다는 비난을 퍼부어댔다.  

이같은 차베스의 ‘반미’, ‘반부시’ 외교노선은 베네수엘라에서는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들과 비슷하게 80년 대 후반 베네수엘라는 IMF의 요구대로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엄청난 석유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이 없었던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을 외국계 석유 메이저 자본이 지분참여를 통해 장악하게 되었다. 그 결과 기름값을 비롯한 각종 생활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고, 결국 유혈사태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외국자본에 대한 강한 반감은 현재까지 국민들 다수의 정서에 상당부분 녹아 있고, 차베스는 이런 국민들 정서 속에서 태어난 대통령이었다.

 

 

석유를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손에.....

 

베네수엘라의 수도 까라까스에 가보면 놀랄일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거고, 또 하나는 기름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었다. 취재용 차량으로 지프를 몰고 다녔는데 우리돈 4000원이면 기름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4위의 산유국이라는 걸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인 PdVSA는 생산량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이란의 NIOC, 멕시코의 페멕스의 뒤를 잇고 있다. 게다가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주된 석유 수입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의 미국법인인 'CTIGO'는 미국 내에서 1400여개의 주유소와 정유공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 전체 석유시장에서 차지한 비중이 약 16%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베네수엘라와 미국이 갈등의 핵심도 바로 ‘석유’ 때문이다.

92년 쿠데타 실패 뒤 감옥을 다녀온 차베스는 선거를 통한 제도혁명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거의 60%에 이르는 빈민의 지지로 집권에 성공한 차베스는 전면적인 사회개혁을 실시했다. 그 핵심에 국영석유회사 PdVSA(뻬데배사) 개혁이 들어 있었다. 기존의 PdVSA에 대해  차베스 대통령은 또한 PdVSA가 그동안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호의호식하고있다고 비난하면서 PdVSA 예산을 삭감하고 이사진 교체와 친정부인사로 사장을 교체하는 등 강력하는 구조개혁을 단행을 했다. 베네수엘라 GDP의 1/3을 창출하고 있는 PDVSA 장악은 개혁을 위한 재원마련에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차베스는 정권을 걸고 개혁을 단행했다.  물론 PdVSA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지난  2002년 말~2003년 초까지 총파업이 벌어지는 등 강력하게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차베스는 승리했다.

 

 

미션, 미션, 미션

  

집권 이후 차베스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과업은 석유이익을 민중에게 돌리는 일이었다. 베네수엘라 사회개혁의 핵심 동력은 민중과 석유다. 차베스 대통령은 강력한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들을 위해 혁명적인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같은 개혁 프로그램이 현재 진행 중인 것만 수 십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 미션 로빈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문명퇴치 프로그램은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생계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을 받은지 3개월이 지나면 기본 생계비를 지급해주기 때문에 참여율도 매우 높다. 라 베가의 어느 마을에서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꼰술또리오. 우리나라 보건소와 같은 곳으로 24시간, 개방되어 있다. 이곳에 의사는 남미에서 의료 수준이 가장높다는 쿠바인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차베스는 쿠바에 석유를 무상 공급하고 모두 만 3000여 명의 의사들을 지원받았다.  메르깔은 가장 먼저 시작된 차베스 정권의 개혁프로그램 중 하나다. 가난한 빈민들을 생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수퍼마켓이다. 식품은 물론 각종 의약품 같은 기초 생필품들을 시중가보다 절반 이상 싼 값에 공급하고 있다. 주로 중산층 이하 빈민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런 메르깔이 전국에 만사천여 개. 메르깔에 공급되는 물품의 차액은 전적으로 정부예산에서 지원된다.

 
△ 정부에서 빈민계층의 생계 유지를 위해 전국에 14000여 개나 설치했다는
    수퍼마켓 메르깔


△ 라베가 지역에 위치한 메르깔 내부 전경 


△ 라베가 지역 메르깔에서 시장 보고 있는 주부.
    차베스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다며
    자신은 차베스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라고 밝혔다. 

수도 카라카스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라베가 지역. 인구의 80%를 차지한다는 빈민계층이 차베스 정권의 지지 기반이다. 수시로 산사태가 일어나 피해가 발생할 정도 생활 환경이 열악한 곳,  취재진이 찾아간 날도 산사태가 나 길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된 후,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각종 개혁 프로그램들이 도입되면서 라 베가 지역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 까라까스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라베가.
    사회개혁프로그램의 집중적으로 실시되는 곳으로 차베스대통령의 인기가 절대적이다.
 


△ 미션 바리오 아덴뜨로(마을 안으로).
    빈민집단 거주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무료병원.
    쿠바에서 온 13,000여명의 의사들이 진료를 하고 있다. 
 

“전 차베스를 존경하고 지지합니다. 차베스 대통령이 우리에게 사람 같은 삶을 살게끔 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차베스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빈민들에게 부의 공평한 분배를 실현하고 있는 차베스의 실험에 대해 기득권층이 여전히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람들이 차베스를 지지하는 것은 로빗훗으로 착각하고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급진적인 경제개혁정책에 대한 반발로 쿠테타에 의한 강제 축출과 사임투표까지 겪었던 차베스 대통령, 게다가 쿠바와의 밀접한 연대를 통해 사회주의적인 혁명에 대한 지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그의 발언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혁명적인 사회개혁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 그리고 차베스 정권의 성패 여부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극화 해소의 또다른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