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PD
웨스트파푸아의 국기(빈땅끄조라)는 없는가?
1952년 웨스트파푸아는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의 꿈을 꿨다. 하지만 그 꿈은 인도네시아의
무력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리고 미국등 국제사회는 인도네시아를 지지하게 되고
미지의 파푸아는 국제사회의 묵인 하에 인도네시아 식민지 역사를 쓰게 됨과 동시에
그들의 국기(빈땅끄조라=샛별을 의미)를 내리게 된다.
ACT OF FREE CHOICE(‘인도네시아를 원하는가?’, 식민지화에 대해 당시
파푸아인들이 참여한 찬반투표)
“내가 지켜본 사람들의 표정을 봐서 명확하게 반대 하는게 드러났다. 하지만
분위기나, 공포, 그리고 매수당해서 일지 몰라도 그들은 찬성했다.”(고던 적켈/
당시 호주 대사)
......그리고 식민지로의 선택.... 취재진이 찾은 파푸아인들, 지금 파푸아는
인도네시아를 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평화적 투쟁, 단지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다.
무력도 침략도 아닌.... 바로 파푸아의 국기 ‘빈땅 끄조라’를 목숨을 걸고 게양
하는 것만으로 파푸아 인들은 인도네시아에 맞서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인도네시아의 파푸아섬, 그 중심가 자야뿌라..
이곳의 현재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 인도네시아의 국기가 곳곳에
휘날리고 있었고 파푸아 인들은 취재진의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 주며 외부인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곧 그들의 표정과 행동은 달라진다. ‘빈땅끄조라를 보고 싶다.’ 그 한마디에
그들은 정답게 맞아주던 카메라를 손으로 밀쳐낸다. 두려움! ‘내 마음속의 말을
할수 없다’ 한 파푸아시장에서 만난 상인의 말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두렵게 하는가?
독립투쟁을 하는 자와 막는 자
파푸아 내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교회봉사활동을 핑계로 감옥에 수감
중인 한 독립투쟁가를 만날 수 있었다. 형량은 10년, 그의 죄목은 ‘국기게양’....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불편해 보이는 그는 감옥에 수감 중이지만 그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진을 향해 힘든 표정을 짓진 않았다. 도리어 그런
감옥살이가 자신의 독립투쟁 의지를 꺽을 수 없다고 했다. 이 한국의 방송이 전 세계에
얼마나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의심도 하지 않았다. 교도관들이 면회종료를 알리며
취재진도 카메라를 집어 넣으려는 순간 그가 외친다. ‘독립투쟁!’
감옥살이는 그야 말로 다행(?)이었다. 취재진이 만난 조세파...그녀는 인도네시아
군의 침탈 증거물들을 모으고 있었다. 막 화약이 타들어 간 듯한 총알들과 최루탄...
‘한 여성이 수집한 정도가 이 정도라면 인도네시아 군이 뿜어낸 총탄들의 양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단지 국기게양을 하는 파푸아인들을 향해 뿜어낸
총알들....
그리고 인도네시아 군이 파푸아인을 살해한 증거 사진들...총구를 겨누며 기념사진이라도
찍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인도네시아군인들....그녀는 말했다. 이 사진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인도네시아의 강제 침탈이후 약40년동안 약 10만명의 파푸아 인들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현 파푸아인의 전체수를 듣게 되면서 더 놀라게 된다. 현재 파푸아
인들은 약130만명, 옆집건너 한명은 살해당했다는 얘기다. 국기를 게양하고 독립운동을
하고...그리고 그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파푸아인들...
왜 중심가 시장에서 파푸아 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없었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왜 인도네시아는 이 힘없는 파푸아 인들을 또 파푸아를 놓지 않는 것일까..
끝없는 자원수탈...그리고 버려진 파푸아인들
한해 벌목허가 수입만으로 100만달러, 세계 제1의 금메장량, 현재도 국내외 기업과
함께 개발중인 천연가스....
이것들로 인해 파푸아는 자원이 풍부한 곳이지만 파푸아가 아닌 ‘인도네시아에
천연자원이 많다’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파푸아 땅에서 나오는 자원은
인도네시아 중앙 자카르타로 보내지고 그 수익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챙기고 있을
뿐이다. 파푸아섬의 인도네시아 국회의원인 웨이난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 수십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지만 인구대비와 규모대비로 볼 때 파푸아는 2번째로 못사는
섬이라고 한다. 자원의 양은 1,2위를 다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많은 자원의
보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취재진은 파푸아의 한 주거지를 찾았다. 이들의 주식은 고구마등의 재배작물...뭐가
그리도 귀한지 구호물품으로 보내진 음료수 캔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들은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다. 판자로 지어진 집에는 식기조차 없다. 그저 손으로 집어먹으며 삶을
이어가는 파푸아 빈민들...과연 이런 상황을 인도네시아 정부는 알고 있을까...지구상의
그 어느 곳에서 이 가난한 이들이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굶어 죽어 나가는 상황을
알고 있을까....이들은 인도네시아에 의해 이대로 분산되고 잊혀 지고 마는 것인가....
고문, 강간, 살해 하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촬영 테입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취재진은 빈땅끄조라를 다시 한번 찾아 나선다. 그곳은 일명 ‘적색지대’ 현지어로
‘데라메라’라는 곳이다. 인도네시아의 잦은 침탈에 대항해 자진해서 형성된 파푸아
독립군이 지키고 있는 지역이다. 그곳에서는 빈땅끄조라를 볼 수 있을까?
취재진은 최근까지도 인도네시아 군과의 접전이 잦았던 만큼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군의 눈을 피해 늦은 밤 그곳을 찾기로 한다. 희미한
불빛조차 없는 비포장도로를 두 세 시간 정도 차로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몇몇의
군복을 입은 독립군을 만나게 된다. OPM (ORGANISASI PAPUA MERDEKA) ...그들의 어깨엔
파푸아의 국기 (빈땅끄조라)가 붙여져 있었다. 취재진이 그들에게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이 취재진에게 요청한 것은 ’그간의 촬영 테입을 안전한 곳에 숨겨야 한다.‘였다.
취재진의 안전과 그들의 안전보단 지금껏 담겨진 파푸아의 상황이 더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취재진의 촬영 테입을 숨겨줄 무렵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칠흙 같은
어둠속이지만 차로 이동이 가능한 곳이 이들의 독립기지란 말인가....잠시 뒤 취재진의
의문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지대와 숲이 우거진 밀림 속을 들어가기 시작한다. 본 기지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해진 길 없이 나무와 우거진 풀을 헤쳐 나간다. 길을 만들면 인도네시아
군에 의해 발각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왜 이들은 이렇게 산으로 밀림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까...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몰아낸 것인가...무엇이 몰아내어진
이들을 결속 시키고 있는 것인가...
취재진의 눈에 띈 여성 독립군 사라,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몇 시간째 간단한
음식과 물통을 들고 산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가족이 인도네시아 군에
의해 몰살당한 후 독립군에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한다. ‘내 몸은 여자지만
이렇게 동행하는 것이 남자독립군에게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원했고 그것도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난 두렵지 않다
새벽닭이 울기 시작하고 동이 틀 무렵 취재진은 독립군 기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은 지금껏 숲을 헤치고 도착한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그들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이 땅을 밟아 왔을까...총 대신 칼, 창, 활을 들고 지키고 있는
그들...그들은 이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약 40여 년간 산을 오르내리며 인도네시아
군으로부터 대항하고 있었다. 이 지역만도 4,800여명이 숲속 곳곳에서 숨어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군으로 부터 그간 6차례 정도의 크고 작은 침략을 받았지만 숲속에서
창을 들고 숨소리를 죽여 가며 이곳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밀림과 산과 숲에서
보초를 서가며 이들이 지켜나가고 있는 의식....바로 ‘빈땅끄조라’를 게양하는
것. 그들이 게양하는 ‘빈땅끄조라’는 최대의 절도, 예절과 함께 게양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식민지이기에 국기게양만으로 총살을 당하며 감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파푸아인이 처한 현실 속에서 국기게양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감격이 아닐
수 없었다. 국기를 게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산을 지켜왔을까...하지만
평화롭게 휘날리는 빈땅끄조라를 보며 잠시 감상에 젖을 수 있었을 뿐 이들의 안전
여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두려움이 없단 말인가...... 한 젊은
독립군 전사가 외친다. “전혀 두렵지 않다. 이것(빈땅끄조라)이 우리의 국기고 게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국제 사회는 우리를 주목해 달라.
다시 해가 질 무렵 취재진은 파푸아 독립군 기지를 빠져나오며 새벽에는
숲에 우거져서 보지 못했던 원주민과 독립군들을 만나게 된다. 취재진은 못 봤지만
그들은 우리를 지켜보며 안전을 지켜줬을 것이다. 국기를 게양하고 파푸아의 존재를
위해 산속에서 밀림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들....이들에게 둘러
쌓여 취재진은 기도를 받았다. 알아 듣지 못하는 현지어지만 분명 ‘꼬레아’라는
말이 있었고...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통해
작은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그들...‘우리는 인도네시아 인이 아니다. 파푸아 인이다’라고
큰 소리 치며 눈물의 국가를 불러준 전 독립군 전사....감옥안에서도 한국에서 온
작은 카메라를 향해 ‘독립투쟁’을 외쳤던 독립운동가...
비록 한국에서 늦은 밤 그들의 소식을 전했지만 몇 명의 한국인에게라도 그들의
상황을 알렸다면 파푸아 인들은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파푸아 인들은 어느 누구 하나라도
그들의 처한 상황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몇 초간이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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