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휴양지들로 유명한 태국, 하지만 그 곳에 평화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그 땅을 , 공포와 상처를 남긴 것은 쯔나미뿐만 아니었다. 태국 남부 3개주에서
벌어지는 남부 무슬림들에 의한 유혈 테러, 100여년 넘게 계속되어온 소수민 무슬림들의
불만과 저항이 최근 들어 그 과격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태국 남부 파타니주를 찾았다. 현재 남부 3개주지역에는 작년 1월 이후 계엄령이
발휘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핫야이공항을 출발해 남부 3개주중에 하나인 파타니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0번이 넘는 검문검색을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진입을 하는
차량에 대한 검문은 철저한 반면 반대쪽 차선의 경우는 그다지 철저하지 않았다.
외부로부터의 진입에 더욱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현지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차안에서 촬영하던 우리는 순식간에 3대의 경찰차에
의해 포위되었다. 계엄령으로 인해 언론, 특히 외국언론에 대한 통제가 엄격했다.
지역경찰서로 끌려간 취재진은 다행히 미리 연락이 닿아 있는 경찰관계자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취재진은 우선 테러현장을 찾았다. 10월에만 무려 20회가 넘는 유혈테러가 있었던
탓에 테러현장을 수소문해서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 찾은 곳은 파타니주에 위치한 한 불교사찰. 사찰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사찰
곳곳에 남아 있는 테러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 곳곳에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들은 물론, 암자가 있던 자리에는 검은 재들만
바닥에 남아 있을 뿐 암자가 있었음을 짐작케 할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사찰 곳곳에 세워 있는 불상이나 석상들은 하나같이 참수의 형태로
목이 떨어져 부서져 있었다.
당시 상황을 물었다.
“밤 12시쯤 20여명의 사람들이 절 뒤쪽으로 침입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절에 불을 지르고 절 곳곳을 각목으로 부쉈습니다.”-사찰 관계자
피해는 비단 사찰시설뿐 아니었다. 1명의 승려와 3명의 사찰사환들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 직후 촬영한 현장사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사진들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였다. 총을 맞고 숨진 승려의 시신은 불에 태운 것도 모자라 시신
곳곳을 칼로 난자하여 벌어진 틈으로 뼈와 장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환들의
시신 역시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불에 타있었다.
숨진 희생자들 외에 당시 총에 맞은 부상을 입은 승려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이후 승려를 그만둔다며 절을 떠난 상태였다. 사찰 근처에 살고 있다는
사환의 가족들을 수소문해봤지만 자식을 잃은 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말만 주민들에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3개주 지역중 한 곳인 얄라주에도 테러를 입은 사찰이 있었다. 10월 31일에 사고를
당한 이 곳은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을 이번에 처음당했지만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매우 두렵습니다.”-사찰승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어두워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 중 몇 명은 무슬림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사찰
관계자.
사찰관계자의 증언과 더불어 방화에 사용된 후 현장에 남아 있던 휘발유통등에서
채취한 지문을 통해 몇몇 무슬림 용의자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있다고 했다.
태국 남부 지역에 왜 이러한 유혈사태들이 벌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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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톰 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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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톰 아리야/태국 남부사태 진상조사위원회 사무총장
“남부의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100여년 전 쑤코타이왕조가
세워지면서 남부지역의 불교도와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있어
왔습니다.”
남부의 파타니왕국은 쑤코타이왕국 이후 태국의 영토로 합병되어 하나의 주로
전락했지만 자치권은 인정받아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종교, 언어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라마 5세인 쭐라롱껀대왕의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1902년 ‘남부 7개 소주 통치에 관한 법령’을 공포하여 시행하면서 중앙정부가
지방 영주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고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태국인 관료들로 영주를 대치시키면서 무슬림에
대해 강압적인 동화정책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계속되어온 태국정부와 무슬림 간의
갈등은 1960년
대 이후 태국정부가 무슬림사회에 종교적 특권부여, 교육기회확대, 그리고
경제적 지원 등 통합정책을 실시해오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일부 이슬람 무장
세력의 게릴라 활동과 소요 사태는 간헐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특히 2004년 1월에서
3월 사이에 관공서, 군 및 경찰 시설에 테러 공격이 잇따라 55명이 목숨을 잃는 등
치안상황이 악화되자 태국정부는 남부 3개주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하였다.
이후 4월에는 수 십 곳의 공공 시설물에 대한 방화사건이 동시다발로 이루어졌으며,
100여명의 무슬림청년들이 군경을 습격했다가 몰살당하는 등 유혈사태가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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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규모 무슬림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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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0월 26일에는 남부 국경지대인 나라티왓주에서 반정부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78명의 무슬림이 후송차량 안에서 질식사한 것을 계기로 일반 무슬림주민들까지도
종교적 결속을 다지는 결과를 낳았고 유혈사태는 더욱 과격한 양상으로 변하였다.
전 세계 언론 및 이슬람단체들은 탁씬 총리가 불필요한 강경진압정책이 대규모 참사를
초래했다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탁씬 총리는 지난해 선거를 앞두고 남부지역 평화기원
종이학 날리기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였지만 전시행정이라는 비난과 함께 민심을 돌리는데는
실패, 결국 남부지역에서는 여당이 참패하는 선거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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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평화기원 종이학날리기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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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외에 외부세력의 개입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남아에서 주로 활동하는
무장단체인 제마이슬라미야나 중동의 알카에다와의 연관성. 실제로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변화들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주로 학생들에게서 일어나는 변화중 눈에
띄는 것은 일부 학생들의 중동식 복장이 그것이다. 태국 무슬림들은 전통적으로 흰색
복장을 하는데 비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같은 중동식 검은색 무슬림복장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또한 몇 년 사이 파키스탄등 중동유학파 출신 교사들이
늘어나면서 잘못된 신념을 학생들에게 전파하는게 아닌가하는 의심도 하고 있었고,
테러에 참여하는 계층중 학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그러한 의심을 보태는
이유였다.
“먹고 사는 문제인데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파타니주 무슬림 지도자
실제로 남부 3개주의 경제수준은 태국 50여개 주중 낮은 축에 속한다. 제조업등
2차 산업이 전무하고 주로 어업이나 고무농업등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그나마
부의 대부분은 농장주등 5%안팎의 일부 부유계층이 독점하는 상황으로 실제 주민들의 생활은
통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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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당한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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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소득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였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들이 남부지역 무슬림들이
과격한 폭력사태들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소수과격단체의 경우 분리독립등의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남부 주민들은 태국국민으로서 조금 더 나은 정부의
혜택과 생활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이러한 정부에
대한 불만들이 군인이나 경찰, 교사등 제복으로 대표되는 정부기관원과 불교도나
승려들에 대한 테러로 표출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이란 문제는 비단 남부 무슬림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남부지역에
사는 불교도들 역시 지역적 소외에 의해 그다지 풍족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정부에 대한 불만 역시 가득했다. 다만 남부지역 내에서 소수인 그들의 목소리는
낮았고 요즘의 분위기에 더욱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윤회를
믿는 탓에 현재의 삶에 쉽게 수긍하는 이유도 적지 않아 보였다. 이것 역시 테러가
무슬림들에 의해 주로 행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요즘 남부 분위기를 대변하듯 테러에 대한 위험에 대비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있었다. 학교에 대한 군경의 경계가 눈에 띄게 강화되어 있고, 또 하나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승려들의 탁발 또한 경찰의 철저한
보호아래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산하의 군수산업체에서는 이러한 승려들의
안전을 위한 보호장비들이 개발되고 있다. 전통승려복의 색채를 띈 방탄조끼나 탁발도구들,
거기에 방탄유리를 두른 오토바이등까지 개발되어 보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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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호위아래 이뤄지는 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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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승려보호용 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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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현지의 공포분위기는 무슬림주민들 또한 느끼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조금 달랐다. 아무런 이유없이 테러용의자로 오인되어 군경에 의해 희생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무슬림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보에 의한 테러용의자에게 별다른
조사과정도 없이 대로변에서 총격을 가하거나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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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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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로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폭력이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여, 군경들의 눈에 띄는 활동을 자제시킴으로서 조금은
이러한 악순환을 줄이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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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두라메 마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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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두라메 마민치/파타니주 무슬림지도자
“무슬림을 태국 국민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종교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무슬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지역적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탁상공론식의 정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교육과 생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비록 살기 위한 외침으로 시작됐지만 과도한 폭력으로 변질되어버린 남부무슬림들의
목소리, 어느 한 쪽의 잘못을 탓하기에 앞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간디는 말했다. “특정한 목적들은 분명히 폭력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그러나 폭력으로 이룰 수 있는 목적들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의 전체적인 결과는 나라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
것 이다.”
-고명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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