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숙이는 죽지 않았었다(0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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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이는 죽지 않았었다

김현철 PD

△영숙씨 사진과 아버님

길영숙, 24세,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아프리카나 오지로 가고자 했으나 선진국으로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호주로 간 지 몇 개월, 그녀는 대한항공 화물칸에 실려 고국으로 돌아왔다. 서늘한 시신으로. 그녀는 무남독녀였다.

아버지와 영숙씨의 친구이자 사고 당시 목격자인 이정민씨를 방송국에서 처음 만났다. 대형버스가 영숙씨를 처음 쳤고 그때까지 살아있었던 영숙씨는 이후 커다란 버스바퀴가 앞뒤로 왔다 갔다를 반복한 뒤에 살아있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고 이정민씨는 증언했다. 왜 버스기사는 뒤로 차를 빼라고 했는데 앞으로 움직였으며 앞으로 다시 움직이라는 말에 뒤로 차를 몰았을까?

△목격자 이정민씨

△1m가 넘는 버스 바퀴

△사고 현장 횡단보도

△사고 현장에 꽃 다발을 놓는 아버지

△빈센트 병원

△빈센트 병원 응급실

호주에서는 사망한 사람에게는 배상금이 거의 없다고 한다. 장애인이 되면 평생 가해자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한다. 버스기사는 이런 호주 법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고의로 영숙씨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런 희한한 법이 있단 말인가?

길양이 사망한지 5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 아버지 길덕기씨는 호주를 세 번째 들어갔다. 아버지는 사고 현장이 사거리, 우회전하는 대형버스에 길을 건너던 딸이 치여 죽은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우회전하는 차량은 대부분 시속 5km를 넘지 못한다. 그냥 우리가 걷는 속도다. 이런 속도로 가는 차에 치여 사람이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횡단보도 약 2m정도 떨어진 곳에서 길을 건너려 했는데 우회전하는 대형버스를 보고 잠깐 멈추었는데 버스도 정확히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건너라는 신호인 줄 알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버스가 다가와 친구 영숙씨를 ‘툭’쳤다고 했다.

그날 길양과 함께 길을 건넜던 이정민씨가 취재진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냥 말 그대로 ‘툭’쳤다고 했다. 차량 앞부분에 부딪친 영숙씨는 차량 밑 부분, 앞바퀴 앞으로 빨려 들어가 누워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멈추고 차를 뒤로 빼라고 버스 옆 유리창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소리쳤다고 했다. 그러나 기사는... 차를 움직였다 앞으로.

너무 놀란 정민씨는 친구를 꺼내기 위해 다시 차를 앞으로 움직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사는 이번에도 차를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결국 영숙씨는 대형버스, 관광버스용 coach버스바퀴, 지름이 약 1m가 넘는 거대한 바퀴에 두 번 눌린 것이다. 영숙씨는 외상은 거의 없었지만 입으로 피를 토하고 맥이 약해지며 결국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된다.

정민씨는 기사에게서 고의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왜 사람이 차 밑에 깔려 있는데 주위의 사람들 말대로 하지 않고 반대로 그것도 두 번이나 버스를 움직였을까? 고의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그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영숙씨의 흉부 뒤쪽에는 버스 바퀴자국이 남아있었다고 그 자국은 목까지 이어져 있었다고 빈센트 병원 의사는 말했다. 갈비뼈는 거의 다 부러졌고 가슴 정 가운데 커다란 뼈도 부러졌다고 했다. 내출혈도 심했다고 했다. 병원에 오기 전에 이미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정민씨는 운전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음을 토로했다. 앞뒤로 움직인 것 외에도 운전사는 사망한 영숙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응급차도 주위의 시민들이 불렀고 차에서 내려서 바퀴에 깔린 영숙씨를 구제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운전사가 한 일은 유일하게 차에서 내려 주위의 사람들에게 종이와 펜을 들고 가서 목격자 확보 서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운전사는 왜 이렇게 납득 못할 행동들을 계속 했을까? 운전사가 속해있는 회사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인을 상대로 호주내 관광 사업을 하고 있는 여행사였다. 여행사 사장은 이미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언급했고 물어 볼 것이 있으면 경찰서에 가보라고 했다. 영숙씨 아버지가 사건 후 만나자고 세 번이나 연락을 했지만 이 사장은 만날 이유가 없다고 아버지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했다.

경찰 발표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가해자 측 관계자들은 사건은 종결되었고 경찰이 이미 공식적인 보고서를 내 놓았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또 그 보고서에 의하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로 결론났다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영숙씨 아버지를 도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경찰서 담당 경찰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온 피터라는 유학생에 의하면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뉴사우스웨일즈 경찰서

△대만인 목격자 제시천

△호주 변호사 에드먼드 텅

담당 경찰과의 몇 번에 걸친 전화통화내용을 영어로 우리 취재진에게 피터는 전해 주었다. 통화내용에는 ‘아무의 잘못도 아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다’ ‘버스가 피해자 몸 위로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버스 옆면으로 두 여학생이 뛰어들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상반되는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가해자 측 사장이 한 이야기와는 일맥상통했다. 가해자는 죄가 없는 걸로 결정 났다는 그 말과.

의혹이 많고 억울한 사고, 길덕기씨는 호주 내에 있는 한인 변호사들을 찾아갔다. 7명을 만났다. 모두 회피했다고 했다. 이유는? 바쁘다, 수임료가 너무 적다, 다른 변호사를 찾아가보고 안되면 다시 오라 등 회피했다고 했다. 이런 사건을 왜 호주 내 한인 변호사들은 수임을 꺼리는 것일까?

호주 변호사 에드먼드 텅은 돈 문제라고 했다. 사망사건이라 배상금이 너무 적게 나오고 그에 따라 변호사 수임료도 적게 배당되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꺼리는 것이라고 했다. 사망사건인데 배상금이 적다니? 호주 법이 그렇다고 했다. 부양가족이 없는 미혼의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배상금이 장례비 정도만 지급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되었다면? “변호사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가 8번째로 만난 김영하 변호사, 그가 현재 길덕기씨의 담당 변호사다. 김영하 변호사는 호주에서는 개인이 죽으면 모든 권리와 의무가 소멸되기 때문에 상해배상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서 교통사고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했다. 철저한 개인주의 영향이었다. 부모의 채무가 부모가 사망해도 자식에게 단 한 푼도 인수인계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하나 사망 시의 배상금은 한국보다 호주가 적지만 부상이나 장애인이 되었을 경우 배상금은 호주가 한국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실용주의의 측면도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산 사람이 잘 살아야지 하는 실용주의 측면이 어느 정도 보였다. 그래서 호주사람들은 이 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호주사람들은 개인 별로 다 생명보험을 가입한다고 한다.

무남독녀, 영숙씨, 24년을 키워 온 아버지에게 이 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법이었다. 물론 아버지, 길덕기씨는 먼저 죽은 딸을 통해 배상금 얼마를 더 받을 생각은 없으셨다. 다만 딸이 죽음으로 인해 곁에 두고 볼 수 없는 서러움은 그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관련 법 유가족 배상법은 1897년에 제정된 법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법 때문에 차량 운전사들이 일부러 사망사고를 내는 경우가 있겠네? 부상을 당한 것보다 사망사고가 보험금도 적고 간단하게 처리되니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김영하 변호사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호주는 보험이 잘 되어 있다. 대인 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차량은 차도에 올라 올 수가 없다. 사람이 다치면 운전사는 아무런 경제적 손실이 없다. 보험회사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

“그래도 일부러 죽일 가능성은 없나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사고일 경우에는 보험회사가 알아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지만 고의로 부상자를 다시 한 번 차량을 움직여 죽일 경우 민사가 아닌 형사사건이 된다. 형사사건이 되어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실이 입증되면 더 이상 보험회사가 아닌 기사 자신의 책임문제가 된다. 감옥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가 일부러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 때문에 기사가 고의로 그럴 가능성은 어느 정도 배제되었다.

하지만 아버지 길덕기씨는 담당경찰의 전화통화 내용과 중국인 가해자 측의 주장대로 수사결과가 발표되는 것이 아닐까 초조해하고 있었다.

담당경찰 피터 허친슨을 4일전부터 약속을 출국 하루 전 아침 7시에 근무를 시작하니 경찰서로 오라는 말을 듣고 경찰서를 찾아 갔다. 10분전에 전화로 확인, 분명히 출근한다고 했다. 7시에 들어가니 오늘 아프다고 결근했다고 지금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피터 허친슨의 직속상관은 그동안 피터 허친슨이 잘못이 부분이 있으면 시정하고 저녁 7시에 다른 담당 경찰관인 워런 경관에게 모든 자료를 준비시키겠다. 아버지의 질문에 성실히 답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저녁 7시 10분, 다시 경찰서를 찾아갔다. 또 펑크 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주차근무하느라고 워런 경관이 경찰서에 없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부모로서 호주에 와 있는 사람을 경찰서는 두 번이나 농락했다. 수사의 공정성을 위해 증인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공정한 호주 경찰,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촛불 집회

사건 초기 호주 내 한국 신문들에는 길영숙씨가 북한 관광객으로 보도되었다. 근원을 찾아가니 호주 경찰서 보도 자료였다. 북한관광객으로 추정된다는 정확한 문장이 그 보도 자료에 들어있었다. 경찰서에 문의했다. 실수라고, 사과한다고 했다. 아버지 길 씨는 경찰이 하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길 씨는 5일을 기다려 결국 담당경찰과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수사결과 발표다. 목격자들의 증언이 충분히 반영된 수사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정부나 우리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발표가 나온 후에 다시 뒷북을 치는 그동안 우리가 지겹게 봐온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사고 현장에서는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6시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