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의 땅 수단,
평화는 오는가
연왕모 PD
21세기 최대 비극의 하나로 꼽히는 수단 내전은, 지난 21년간 2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수단이라는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비극에 종지부를 찍는 평화협정이 지난 1월 맺어졌고, 드디어 수단에
평화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러나 남부 수단의 지도자였던 부통령
존 가랑의 헬기 추락 사고로 사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곳곳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남부 수단의 2인자였던 살바 키르가 부통령직을
승계함으로써 다시금 평화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취재팀은 오랜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땅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그들의 현재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수단으로 향했다.
수단으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다. 물론 급하게 비자를
신청하긴 했지만,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던 수단 대사관의 상무관은
수단 현지 외무부에서 답신이 없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원래 예정되었던 발급일도 훌쩍 넘겨버렸고, 부득이하게 일정을
늦췄음에도 불구하고 비자 발급은 기약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했던 터라 담당 상무관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된 나는 담판을 짓기로 작정하고 대사관을 찾아가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두 명의 부통령 인터뷰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사실 현지 코디네이터와
부통령들의 인터뷰 일정을 잡아둔 상태이기도 했다. 그 히든카드는 곧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그는 부랴부랴 대사와 연락을 취한 뒤 이미 필요한
서류는 다 전송된 상태이니 사전 발급을 해주겠다며 그 자리에서 비자를
내주었다.
수단행 항공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승객의 약 80%가 중국인이라는
점이었다. 중국을 경유한 비행편을 이용했기 때문에 두드러진 현상이었겠지만,
어쨌든 그 모습은 그만큼 중국의 진출이 활발하다는 확실한 증거로 읽혀졌다.
입국 서류를 작성할 때 살짝 보니 대부분이 석유 관련 업종의 기술자들이었다.
우리 나라는 이미 20여년 전에 대우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수단에
진출했던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때 공들여 쌓아놓았던 노력은 온데간데
없고, 이후 후발 주자로 들어온 중국이 수단 내 기간 산업의 많은 부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수단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황량한
모습이었다. 포장된 도로라고 해봤자 겨우 몇 가닥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나무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온통 황토색으로 뒤덮인 데다, 고층 빌딩은
찾아볼 수 없이 드문드문 허름한 건물들만 들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곳이 한 나라의 수도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촬영 초반부터 현지 코디네이터인 올리버는 이전에 왔었던 타 방송사의
촬영팀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자신의 수고료도 받지 못했으며
그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나쁜 기억이고, 그 이후로 한국인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까지 꺼내놓았다. 하지만 현지 한국 대사관에서 들은
사실은 그가 얘기하는 것과 분명히 달랐다. 그때 촬영팀이 그와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다툼이 있었는데, 그가 원래 합의했던 금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원래 합의했던 금액만을 주고 떠났는데
그는 그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북부 수단 정부에만
치중돼있는 한국 대사관의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현지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부터 취재팀은 현지 코디네이터
선택에 애를 먹었다. 수단 현지에는 우리의 취재 내용에 따라 움직여줄
수 있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력 인사들의 인터뷰가 절실했기
때문에, 결국 현지 영어 신문사의 편집장으로 있는 올리버를 코디네이터로
선정했는데 그것이 촬영 초기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뒤로 하고, 일단 BBC 라디오의 특파원인 알프레드 타반의
인터뷰부터 취재가 시작됐다. 인종과 종교적인 차이가 수십 년간 이어져온
내전의 주원인이라는 것은 표피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었다.
“원유는 수단의 주요 자원입니다. 남부의 수단인들 또한 원유에서
비롯되는 경제적인 부를 누리길 원하기 때문에 원유 생산권의 쟁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유는 부와 권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주요 자원이기 때문에, 내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단에는 현재 막대한 양의 석유와 다이아몬드, 그리고 금, 우라늄
등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북쪽에 비해 남부 쪽의 매장량이 훨씬
큰 편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부 수단은 그러한 경제적 이득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프리카 토속민인 남부 수단인들은 아랍계인
북부 수단인들에 비해 사회적인 차별을 받기까지 했다. 남부 수단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부의 공정한 분배와 평등한 대우였다.
오랜 내전에 따른 보안 문제,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경계
등의 이유로 여러 곳에서 촬영에 대한 제재가 있었다. 정복 경찰 외에도
곳곳에 비밀 경찰이 있어서 수시로 촬영 허가증을 요구했다.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촬영허가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이유를 들어
촬영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됐다. 그리고 코디네이터는 이것이 바로
수단의 현실이라며 한탄했다. 남부 출신인 올리버는 유력 일간지의 편집장임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경찰관들 앞에서 조금도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나는 코디네이터인 올리버의 말이 매번 바뀌고
있으며 그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의 성공적인 수행보다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금전적인
이득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 정도라면 다행이었다. 전날 분명히 9시에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0시 반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는 1인당
하루 160불 씩의 호텔비 지급, 코디료 전액 선불 지급, 매일 20불의
생명보험료 지급 등의 황당한 요구를 해왔다. 결국 그와는 결별을 하고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서 촬영에는 막대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 남부 수단의 대통령이자 수단 중앙정부의 제
1부통령인 살바 키르, 그리고 중앙정부의 제 2 부통령인 오스만 타하의
인터뷰가 실행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정상 그들의
인터뷰는 원래부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여기저기서 수시로 들을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수단이다”라는 말을 새기고 또 새길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현지인 코디네이터를 만났지만 정말이지 그는 최악이었고, 도저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한 인간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나머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 남은 것이라고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현지 한국 대사관과 현지에 파견된 국제기구의 한인들, 그리고
교민 몇 분의 도움으로 취재선을 찾아나갈 수 있었고, BBC 라디오 특파원을
통해 남부 수단의 수도인 주바 현지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주바로 떠나는 비행기 노선은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노선에 배정된 비행기는 겨우 한 대 뿐으로 거의 수명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때문에 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출발하기로 한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발 예정 시각을 다섯 시간이나
넘긴 후, 기체 결함이 있다며 집에 돌아가 기다렸다가 내일 새벽에 오라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승객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묵묵히 어딘가로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항공사 직원은 비행기가 언제 뜰지 알 수 없다며 무조건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샬라” 즉, 이것도 신의 뜻인데 어쩌겠냐는 식의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화가 치밀어올라 항의하기
시작했다. 취재팀도 촬영을 포기해야 할지 다른 방향으로 가야할지 기로에
서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남부 수단의 수도로 결정된 주바로
내려가서 취재를 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결국 며칠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동안 몇 명의 유력 정치인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남부 수단
출신의 국회의원 소니아 제노리코는 평화협정에 명시된 6년 후 분리
독립을 묻는 국민 투표의 향방에 대해, 분리 독립이 유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우린 50년 동안 서로를 이해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50년의 시간도 충분하지 못했는데, 과연 6년 안에 북부인들이
차별을 없애고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줄 수 있을까요?”
지난 1월에 나온 포괄적 평화협정의 내용은 남부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수십 년 간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이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부는 6년 동안 자치권을 갖고
6년 뒤에는 독립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현재
하루 약 32만 배럴 생산되는 석유의 수익을 북부와 남부가 동등하게
나누어 갖는다.’ ‘공직에서 공정한 비율로 인사 분배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간 반군 투쟁의 목표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얻어낸
셈이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지쳐있는 수단인들은 이제 재건을 위한
노력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중앙 정부가 이 협정 내용을 온전히 이행할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나중에 주바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승객들은 이미 얼굴이 많이 익어있었던
터라 서로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공항에서
얼굴을 마주친 시간만도 꼬박 20시간이 넘으니 서로의 얼굴을 익히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바는 오히려 카르툼보다도 첫인상이 좋은 편이었다. 나무들이 많아
푸르고, 밝은 햇살과 맑은 하늘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그런
인상도 잠시뿐, 도시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색할 만큼 그곳은 거의 아무런
기반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임을 깨닫게 됐다. 전기도 그나마
시내에서만 아주 가끔씩 들어오고, 도로는 움푹 움푹 패인 비포장 도로가
전부이고, 식당이나 상점같은 건 시장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는데,
그나마도 너무나 빈약해서 도저히 식당이나 상점으로 보아주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나마 시장에 나와 있는 곡식들은 인근에서 재배된 것들이었지만,
다른 생필품들은 대부분 상인들이 꼬박 몇날 며칠을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구해온 것들이었다. 그들이 물건을 운송하고 내다 파는 수준은
먼 옛날 우리네 보부상들이 했던 것과 흡사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열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네는 쉬어갈 수 있는 주막이라도 있지
않았던가? 이들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숲길에서 새우잠을 자가면서
먼 길을 걸어 땡볕 아래서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따져
보면 일반 가격의 서너 배가 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따라서
물가는 그들의 생활 수준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들이었다. 수십년에 걸쳐 짓눌려왔지만 이제는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바는 내전 당시 정부군의 관할 지역으로서 외부로 연결되는 도로는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 남부 반군이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 지역에
수백만 개의 지뢰가 매설되었기 때문이다. 평화협정 이후, 주바는 국제기구들의
지원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기반 시설이 전무한
형편인지라,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석유를
필두로 하는 천연자원들은 끝없는 내전의 불씨이기도 했지만, 이는 또
역설적으로 이제 발전을 향한 희망의 불을 피울 수 있는 불씨가 되고
있었다. 중앙 에콰토리아 주의 주지사인 알랄라 유니스 로로는 천연자원이
그들의 희망을 실현해줄 수 있는 자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린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석유뿐만 아니라 다양하죠. 평화협정으로 우린 자원을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군사적으로도 이번의 평화협정은 많은 부분 안정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내전 당시 남부 반군이었던 SPLA의 에콰토리아 지역
사령관인 토마스 시릴로는 이번의 평화협정이 그간 수차례 이루어졌던
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얘기했다.
“1972년 첫 번째 평화협정이 제기되었을 때, 사람들은 중앙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군대를 해체했습니다. 그건 중앙정부의 의도적인 전략이었죠.
그리고 2-3년이 지난 후에는 더 이상 남부 수단을 지킬 독립군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린 이제 그런 과거로부터 배운 바가 있습니다.
평화협정이 이행되고 장차 통일이나 분리 독립의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위기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군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SPLA가 존속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번 평화협정이 희망적인
이유입니다.”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하고 또 앞으로 계획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라디오나 TV 등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함을 이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방송 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자재가
부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전기가 나가는 탓에 생방송이 중단되는
일도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았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마침 주바에서 예이로 이어지는 도로의 개통식이
있었다. 남부 수단의 수도인 주바와 국경도시 예이로 이어지는 그 도로는,
21년 전 내전이 시작된 이래 교량이 파손되고 수백만 개의 지뢰가 매설되는
등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로까지 이어지는
도로의 개통은 남부 수단의 발전이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도로 개통식이라는 얘기를 듣고 포장 도로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널찍한 길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그 도로는
웬만한 4륜구동으로도 가기 힘든 고난도의 오프로드 주행용 오솔길에
불과했다. 그런 길을 흙먼지 꼬박 맞으며 짐칸에 실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곡예나 다름없었다. 그런 흔들림 속에서 튕겨져 나가지
않는 게 오히려 희한해 보일 정도였다. 아프리카 사람들 특유의 유연성이
아니라면 아마도 그런 길을 매달려 가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행사 내내 그들은 흥분하고 즐거워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남부군과
정부군은, 이제 서로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했고 함께 춤을 추며 환호했다.
예이에서 주바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몰려선 사람들과 그들의 환호성을
보며 우리가 광복을 맞았을 당시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반군 투쟁이 있었기에 평화협정의 단초도 마련될 수 있었다. 하지만
포괄적평화협정은 남부 반군이 이룬 전투적인 성과라기보다는, 사실
미국의 경제적인 제재 조치와 테러리즘의 온상이라는 국제적인 압력으로부터
탄생된 결과물이었다. UN 평화유지군의 에콰토리아 지역 사령관인 까날
밀랏은 수단의 내전이 오래 지속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단의 내전은 상당히 방어적인 양상의 전쟁으로 20년간 이어져왔습니다.
그 이유를 군사적인 견지에서 얘기하자면, 승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부군과 정부군 모두 상대를 타도할 위치에
있지 못했으니까요.”
결국 강대국들의 입김에 의해 이루어진 평화협정 속에서, 평화를
향한 발걸음은 아마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놓여진 문제는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음흉한 전쟁들이다. 수십 년을 지속해온 내전에
강대국들이 주목했던 배경이 인도적인 차원이라고 설명하는 데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그곳에 자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늑대에게 공격당해 피 흘리는 토끼를
구하려드는 이는 없다. 토끼를 잡아먹는 늑대의 모습은 야생의 일상적인
풍경의 하나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슴 정도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뿔이나 사향을 얻기 위해, 또는 고기나 가죽을
얻기 위해 더 힘센 짐승이 늑대를 쫓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늑대를
쫓은 자가 인간과 같이 생태계의 최상점에 있는 존재라면 사슴을 죽이는
것보다 잘 키우는 게 득이 됨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슴이 살아있어야만
뿔이 더 크게 자라고, 또 적절한 시기에 사향도 얻을 수 있고, 또 언젠가는
가죽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이를 놓친 늑대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슴이 있는 울타리 주변을 서성거릴 것이다.
누가 늑대이고 인간이며 그것이 적절한 비유인가를 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수단에 있어서 우리가 바라보는 국제 관계의 구도가
비정한 야생의 생태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얘기하려는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