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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취재기
박 상 일(뉴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앨라바마 등 미 남부에
상륙한 건 지난 8월 29일 월요일 이었다. 허리케인은 우리가 8, 9월에
연례행사처럼 겪는 태풍처럼 늘 겪는 일이라 일상적인 대비와 경보,
그리고 대피가 이루어졌다. 현장에서 만난 이재민들도 그전처럼 2-3일
잠시 피했다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부분 카트리나 상륙 이틀 전인
8월 28일에 집을 떠났었다. 하지만 카트리나가 상륙한 월요일 8월 29일이
되자 상황은 돌변했다. 카트리나는 하리케인 등급 최고인 카테고리 5의
위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엄청난 바람과 비로 남부를 강타했다. 미
언론에서도 처음엔 그리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서
속속 피해소식이 들어오고 예상보다 피해가 커지자 카트리나에 대한
보도를 늘려갔다. CNN은 종일방송 체제로 돌입했고, 계속해서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뉴욕에 있던 우린 이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질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미시시피주의 해안도시인 빌록시(Biloxi)는
거의 전 도시가 파괴됐다. 그리고 마침내 뉴올리안즈 시내를 동서로
나누는 커넬(canal)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시의 80%가 잠겼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린 본능적으로 혹시나 하면서 CNN 방송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향후 제작시 참고자료로 사용할 요량이었다. 당시
나는 9월 2일 금요일 방송을 준비 중이었다. 지난 8월 중순 LA에서 있었던
미주한인입양아 가족대회를 취재해, 편집하고 대본을 쓰던 중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하게 돌아갔고 결국 서울에서 팀장의 전화가
왔다. 카트리나 관련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것 같아서 입양아 아이템 대신
카트리나 관련 방송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상황은 이해가 갔지만
당장 뉴올리안즈로 날아간다는 건 여러 사정상 쉽지 않았다. 9월2일
금요일 다시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든 방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결과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식을 전하기로 결정이 됐다. 하지만
당장 직접 취재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 자료를 이용 화면(P/B)을
제작하고 화상전화를 이용, 현지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갑작스런 방송으로
퇴근했던 카메라맨 손준혁씨가 불려나오고, 코디네이터 박윤숙씨는 집에서
CNN을 모니터하면서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방송자료를 준비하고 카메라를
셋팅하는 등 정신없이 방송준비를 했다. ‘화제집중’ 방송시간은 한국시간으로
5시35분 ,이곳 시간으로는 새벽 4시 35분. 드디어 방송이 시작되고 무사히
5분여의 방송을 마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8시 비행기로 휴스턴으로 날아갔다. 12시경
휴스턴 공항에 도착, 휴스턴 시내에 있는 총영사관으로 달렸다. 그곳에서는
토요일 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본율 영사, 조근호 교육원장 등 여러
직원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었다. 대강의 상황을 듣고 인터류를 담고
곧바로 뉴올리안즈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수용된 아스트로돔을 찾았다.
아스트로돔은 실내경기장으로 메이저리그(MLB) 휴스턴 아스트로스의
홈구장이다. 주변에는 이재민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서둘러 촬영을 하고 아스트로돔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보던 중 오늘부터
제한된 시간이지만 언론에게 출입을 허용한다는 얘길 들었다. 미디어센터에
등록을 하고 다른 외국 언론사들과 함께 안내를 받아 아스트로돔 안으로
들어갔다.
취재조건은 까다로웠다. 허용된 취재 시간은 단 15분. 장소도 한정됐다.
서둘러 촬영을 하고 이곳에 직접 들어온 것을 증명키 위해 기자들이
흔히 쓰는 Stand up도 담았다. 그곳에는 약 18,000명의 이재민들이 수용돼
있었다. 대부분 간이침대에서 침식을 해결하는 열악한 형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에 지친 듯 침대에 누워있었다. 특히 노약자들은 많이
힘들어보였다. 몇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아직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를
몰라 안타까워했다. 그곳에서 만난 크리스 릴씨도 툴레인(Tulain) 대학에서
헤어진 여자 친구의 생사를 몰라 안타까워 했다. 인솔자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함한 여러 기자와 PD들은 인터뷰하고 촬영하느라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재난을 피해 집과 재산을 두고 피난해와
상심해 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사히
아스트로돔 취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다시 바깥 촬영을 했다. 자원봉사자
인터뷰를 하고, 또 우연히 텍사스 연방하원 의원인 쉴라 잭슨 리(Shiela
Jackson Lee)를 인터뷰했다.
아스트로돔 취재를 마치고 4시에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휴스턴 한인회를
찾았다. 그곳에서는 토요일에도 불구(이 기간은 미국에서 거의 드문
노동절 3일 연휴였다)하고 여러 교민 분들이 나와 뉴올리안즈에서 피신해온
교민들에게 잠자리와 먹을거리 등 편의를 제공하고, 성금도 모금하고,
또 서로 연락이 두절된 교민들 간의 연락업무를 하고 있었다. 대체적인
상황을 듣고 휴스턴 외곽에 한인 이재민들을 위한 쉘터(shelter)에 한
가족이 있다는 얘길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뉴올리안즈에
있는 툴레인(Tulain) 대학 MBA과정에 수학중인 김태일씨 가족이 카트리나를
피해 와 있었다. 교회에서 청소년 센터로 사용하던 곳을 이재민들을
위해 제공한 것이다.
김태일씨는 TV 대피방송을 듣고 지난 토요일(8/27) 휴스턴으로 피신해왔다고
한다. 그는 작년에도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2-3일 정도
생각하고 나왔다가 이 같은 일을 당해 암담한 상태라고 했다. 특히 학교가
홍수피해로 인해 1학기 동안 휴교를 해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할 처지라고
했다. 유학생들은 학교에 적을 두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등학교(2학년)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자녀도 학교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부인인 이송하씨는 1년전 한국에서와 어렵사리 적응한
아이들이 다시 낯선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이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다보니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저녁 9시가 됐다. 예정대로라면 바로 루이지애나의 배튼루지(Baton Rouge)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4시간 이상 걸리는 밤길은 위험하다는 목사님의
권유로 할 수 없이 하루를 이곳 쉘터에서 묵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5시 배튼루지로 향했다. 휴스턴에서 베튼 루지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30분,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침 10시경 배튼 루지에
도착, 휴스턴 총영사관 임시사무소가 차려진 한 한인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30분전에 뉴올리안즈에서 도착한 교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삶의 터전인 그곳을 떠날 수 없어 끝까지 버티다 식량, 물이
떨어지자 할 수 없이 그곳을 탈출했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한다는 장미숙씨는
언제 직장이 다시 문을 열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직장을
다녀 급여를 받아야, 자동차와 집 할부금 등을 내고 또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이 피신해온 남지인씨는 뉴올리안즈 시내에서 자그만 선물가게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렵사리 장만한 희망이 사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가게가 물에 잠겼는지, 잠겼으면 얼마나 잠겼는지,
약탈은 안 당했는지 등 소식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또 그곳에서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도 휴스턴으로 피신한
김태일씨처럼 학교가 정상적으로 문을 열지 않을 경우 새로운 학교를
알아봐야하는 여려움이 있다고 했다. F1비자로 입국한 이들은 정상적으로
학교에 등록, 학업을 이수해야만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이를
이행치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을 당할 수도 있다. 헌데 문제는
급하게 나오느라 입학허가서인 I-20, 여권 등을 제대로 갖고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여렷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했고 이제 남은 것은 뉴올리안즈
시내로 들어가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 하지만 우리를 뉴올리안즈
시내까지 안내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리에 밝은
뉴올리안즈 시민이 안내를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나 민간인들은
출입이 제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마침 집이 걱정돼 뉴올리안즈
시내를 들어가고 싶어했던 박상철 목사 부부와 홍석진씨 부부를 만나
동행하기로 했다.
배튼루지에서 뉴올리안즈까지는 한시간 남짓. 들어가는 고속도로(I-10)에는
군용차량이 많이 모였다. 반대편 차선에는 이재민들을 수송하는 대형버스의
행렬이 자주 눈에 띄였다. 뉴올리안즈시 외곽에 임시 검문소가 차려져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취재팀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뉴올리안즈시 안쪽으로 들어가자 허리케인에 강타당한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넘어진 가로수, 지붕이 날아가 몸체가 앙상하게 드러난 집,
버려진 자동차 등등. 우리는 먼저 근처 한인 가게를 찾았다. 핸드폰,
옷, 신발, 액세서리 등을 파는 잡화점이었는데 가게 문은 없어지고 창문이
깨지는 등 약탈의 흔적이 역력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값나가는 핸드폰은
거의 없어지고 신발, 옷 등만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 옆 음식점도
약탈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행했던 박목사님은 처음엔 먹을 것을
찾아 음식점을 중심으로 약탈하다 점차 비싼 물건을 파는 가게 등으로
확대됐고, 심지어는 총기상까지 약탈당했다는 것이다.
신호등이 꺼진 텅빈 거리를 지나 박목사님 아파트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물이 찾던 흔적이 역력했다. 물은 대략 50cm 정도 찾다 빠진
듯 했다. 아직도 바닥에는 물이 고여있었고, 20년된 피아노는 흠뻑 물을
먹은 다리가 위태로웠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벽엔 하얗게 곰팡이가
피고 있었고 냉장고를 여니 음식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것저것
세간을 정리하던 사모님은 그나마 남은 물건들을 씻고 정리하고 싶으나
당장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없는 상태라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이번 카트리나는 돌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이어서 여기저기 바람 피해가
컸다. 간판들은 대부분 날아갔고, 커다란 가로수들이 뿌리채 뽑혔고,
부러진 가지들이 집을 덥쳐 많은 집과 차들이 파손됐다. 그래도 이곳은
물이 많이 차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간간히 아직 남아있던 주민들은
물에 젖은 카펫을 걷어 내는 등 집 수리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피해는 도시의 많은 부분이 물에 잠긴 것이다. 뉴올리안즈를 동서로
나누는 커널(canal) 제방이 무너진 동쪽 지역은 아직도 물이 집 지붕에까지
차 있었다. 해수면보다 낮은 뉴올리안즈시는 제방이 무너지자 속수무책으로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다. 무너진 제방 근처에서는 경찰들의 경계속에
헬기와 덤프트럭, 포크레인 등을 이용한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근처에서
같이 공사를구경하던 주민들과 공사인부들중 일부는 권총을 찬 모습이었다.
공사현장을 빠져나와 우리는 배튼루지에서 만난 교민들에게 아직
빠져아오지 못한 교민이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전해
받은 주소가 정확치 않아 헤메던 중 우연히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교민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을 박마리아씨라고 밝힌 그녀는 얼핏 보기에 건강은
문제 없어 보였다. 전기는 안들어 오지만 촛불을 켜고 지낸다고 했다.
물도 있고 음식도 있어 큰 불편이 없고 또 차에 기름도 가득 있어 여차하면
피신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 자식들이 이곳으로 들어온다는 약속이
있어 기다린다고 했다. 같이 간 교민분들이 안전 문제를 들어 같이 나가실
것을 권유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면서 사양했다.
박마리아씨를 혼자 남겨두고 우리는 커널 동쪽지역으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며 경찰이 저지했다. 우린 차에서 내려
걸어들어 가기로 했다. 하지난 얼마가지 않아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도로에 물이 가득차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일반 도로였던
그곳은 선착장을 방불케 했다. 이재민을 구조하는 배들과 물에 잠긴
집이 걱정돼 들어가는 사람들 배 등으로 복잡했다. 배를 타고 물에 잠긴
도시 안쪽 촬영을 시도했으나 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치안문제상
오후 6시부터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금까지 1시간이
채 남지 않은 관계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짧은 2박3일의 취재, 한반도의 2배 크기인 피해지역의 일부분을 잠깐
보고왔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 피해는 어머어마했다. 문제는 방대한 피해지역이
아니라 허리케인이 지나고 간다음에 일어났다. 고립된 이재민들의 구호작업과
이들에 대한 물과 식량보급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게, 쇼핑센터 등이 약탈되는 등 복잡하게 전개됐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이재민뿐 아니라 루이지애나주와 뉴올리안즈의 관료들도 연방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엄청난 재난의 피해지인 뉴올리안즈의
레이 내긴 시장은 이 엄청난 재난에도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서 휴가중인
부시대통령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연방정부의 안일한 인식에도
맹공을 퍼부었다. 일이 이같이 확대되고 비난 여론이 일자 부시대통령은
휴가에서 복귀, 국민들에게 지원을 호소하고 수해현장을 찾는 등 민심달래기에
애를 썼다. 이같은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다시 다른 곳에서
불붙었다.
재시 잭슨을 비롯한 몇몇 흑인 목사와 래퍼가 이번 재난 피해자의
대부분이 흑인이고, 이 때문에 정부의 구호가 미온하다면서 인종차별이라는
이슈를 던졌다.
부시 행정부는 국내적으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미숙한 대응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나라의 인도적인 지원을 여러
이유로 거절한 것이다. 얼마전에는 구호식량을 실은 독일의 항공기를
광우병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같은 책임 논란과 정치공방 속에서도 활발히 구호작업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이 완전히 빠지고 도시가 정상적으로 되기까지에는
아직고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가게를 잃고, 직장을 잃고, 미래를 잃어버린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막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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