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자 지구 정착촌 철수(2005년 8월 26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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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 정착촌 철수 현장

지난 2004년 2월.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 지구 정착촌 철수’(Gaza Disengagement)를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지난(至難)한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 이것은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이스라엘은 단 한 치의 땅도 양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1967년 3차 중동전 때 이집트에게 뺏은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에게 뺏은 ‘골란 고원’을 몇 년 후에 돌려준 적은 있었지만, 역시 3차 중동전 당시 점령한 ‘동예루살렘’(East Jerusalem)과 ‘요르단 강 서안지역(West Bank)', ‘가자 지구’(Gaza Strip)는 이스라엘 입장에선 ’성서(the Bible)에 약속된 땅’으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2005년 8월 14일 밤 12시. 가자 지구 유대 정착촌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키슈핌 검문소’가 완전히 폐쇄됐다. 그 시간을 기점으로 가자 지구 유대 정착촌으론 외부인은 물론 취재진들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취재팀은 현장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15, 16일 양일간은 정착민들에게 마지막으로 자진철수할 기회를 주지만, 17일부터는 에누리없이 ‘강제철수’시킨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엄포가 있은 직후였다. 일반 차량의 통행은 금지됐지만 계속 검문소를 통과해 가자로 들어가는 군용차량들, 특히 탱크와 불도저가 눈길을 끌었다. 군인들과 경찰관들도 속속 검문소 앞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십 명씩 모여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있는 군인들과 경찰관들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넘쳐 났다.

여기서 잠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을 제외하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의 역사를 제대로 꿰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에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국가를 건설하기까지의 과정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들의 유랑의 역사는 기원 후 1세기 경 로마에 의해 유대 왕국이 멸망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로마는 자신들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유대인들에게 철저한 복수를 했다. 유대인의 근거지인 지금의 이스라엘 땅을 철저히 파괴했고, 유대인들은 대부분 고향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후 2,000년 간 유대인들은 소아시아와 러시아, 유럽 지역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들 지역에서 지배 종교가 되면서 유대인들은 더욱 배척받는 민족이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숨지게 한 주범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유대인들이 그들이 거주하는 국가의 ‘신민(臣民)’으로 동화돼 갔지만 많은 수의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거주지역’(게토)에서 그들 고유의 종교를 지닌 채로 살아갔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사정이 바뀐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러시아와 중동부 유럽에서 민족주의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유대인들도 서서히 민족 공동체로서의 자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시오니즘’(Zionism) 즉, 유대인의 본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시온’(Zion)은 고대 이스라엘 다윗 왕의 궁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의 산 이름이다. 시온 산이 확대된 것이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이 확대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인 것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시오니즘 운동은 점점 세를 더하게 됐다. 한편으론 당시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던 옛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 이주자들을 보냈고, 다른 한편으론 팔레스타인을 식민 통치하던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에 이스라엘 건국을 허용토록 맹렬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이었다.

하지만 시오니즘 운동의 주창자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유대인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의 소수민족이었던 유대인들도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눈에 팔레스타인은 ‘임자 없는 땅’이었다. 그곳에 수천 년간 살아왔던 아랍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눈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이 늘어가기 시작하자 선주민(先住民)이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위기감은 증폭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폭력 사태로 번지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 후 팔레스타인 땅을 위임통치하기 시작한 영국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양자 모두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었다. 즉,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 독립국가를 세우게 해 준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충돌은 날이 갈수록 격화됐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찌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촉발시켰고, 유대인들의 국가건설은 민족 생존권과 관련된 ‘지상과제’가 됐다.

1947년 11월 국제연합(UN)은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 국가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관리하에 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UN의 결의안을 수용하고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그날,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로 구성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전격 침공한다. 1차 중동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1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면서 원래 분할된 영역보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 땅이 이스라엘의 영토로 편입되고,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근처 아랍 국가로 피신하면서 난민신세로 전락하게 됐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에 점령당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남서부의 가자 지구(Gaza Strip)와 팔레스타인 중북부의 요르단강 서안지역이 각각 이집트와 요르단의 관할로 넘어가게 된다.

△사진1

 △사진2

그리고 1967년 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은 나머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역, 그리고 그때까지 요르단의 관할하에 있던 예루살렘 동부지역(East Jerusalem)을 점령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길고 긴 갈등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점령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가자 지구는 우리나라의 마산 정도 크기이다. 폭이 8km, 길이가 40km 정도 되는 조그마한 땅이다. 이 땅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두 140만 명이 살고 있다. 그런데 가자 지구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을 유대 정착촌이 차지하고 있다. 1967년 점령 이후 가자 지구에 건설된 정착촌의 수는 21개. 모두 8,500명의 정착민들이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불평등해 보인다. 자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유대 정착민들간의 분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1-가자 지구의 모락(Morag) 정착촌

8월 17일 1차 철수대상이다. 모락 정착촌은 모두 35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정착촌인데, 취재팀이 방문한 8월 15일까지 모두 16가구가 철수를 거부하고 남아 있었다.

△사진2-모락 마을을 배경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CNN 취재진들

가자 지구 정착촌 철수 이벤트 취재를 위해 CNN 말고도 전 세계에서 3천 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지구 유대 정착촌 출입이 봉쇄된 15일 이후에도 특별히 취재진들을 버스로 정착촌까지 안내했다.

지난 2000년 9월 30일 가자 지구 ‘네차림(Netzarim)' 정착촌 부근에서 12살 소년 ‘무함마드 라미 알 두라’가 정착촌을 지키는 이스라엘 방위군에게 저격당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방영된 적이 있다. 이때 총격의 부상자들을 구호하기 위해 달려 온 앰뷸런스까지 총격을 당해 앰뷸런스 운전자까지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 정착촌과 인근 팔레스타인 마을 간의 해묵은 분쟁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사실 유대 정착촌의 건설은 국제법상 불법이었던 것이었다.

3차 중동전이 끝나고 UN은 ‘UN 결의안 242호’를 통해 점령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의 즉각 철수를 권고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고 점령지역에 유대 정착촌을 건설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요르단강 서안지역은 성서에 ‘사마리아’라 일컫던 유대 민족의 땅이었고, 가자 지역은 ‘갓’이라고 일컬어지던 역시 성서에 약속된 유대인의 땅이었던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聖殿)’이 위치했었던 ‘동예루살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를 완전히 편입한 상태의 이스라엘 국가(the Great Israel)! 드러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이었다.

△사진3

△사진4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무단으로 점유한 침략자였다. 1947년 UN 결의안 당시의 영토 회복까지는 (감히) 바라지 않았지만(현실적으로 너무 불가능한 얘기가 돼버렸다), 최소한 1967년 3차 중동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당시의 국경을 유지한 채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1967년 3차 중동전 이후 이스라엘은 새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에 무서운 속도로 유대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 집권당인 리쿠드 당 정부가 집권하게 된 1977년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밀집한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의 정착촌 건설이 추진됐다. 이때 리쿠드 당 정부의 후원으로 정착촌 건설운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시오니즘 운동에 이념적인 토대를 둔 극우파 종교집단인 ‘구쉬 에무님(Gush Emunim)’이었다.

△사진3-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는 정통 유대교 신자들

△사진4-정착촌 철수 문제로 논쟁중인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인

이스라엘 군인이 쓰고 있는 것은 ‘키파’라 불리는 유대 전통 모자이다. 이 모자는 정통 유대교 신자들이 주로 쓴다. 이스라엘 군인들 중에선 ‘성서에서 약속한 땅’을 버릴 수 없다는 순수 종교적 이유로 상부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심지어 탈영하는 군인들까지 발생했다. 지난 8월 초 탈영한 이스라엘 군인이 버스에서 총을 난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4명이나 죽이는 사태도 벌어진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구쉬 에무님’은 공식적으로는 리쿠드 당 정부로부터 독립됐었지만 리쿠드 당 정부의 정착촌 추진정책을 사실상 대변했다. 구쉬 에무님이 요구한 것이 바로 “대 이스라엘”(the Great Israel)의 건설이었다. 그들은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권리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착촌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1978년에 구쉬 에무님의 정착촌 건설 기구인 '아마나'(Amanah)는 51개 정착촌에 75만 명의 유대인 정착을 요구하는 “구쉬 에무님 기본 계획”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표방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유대아와 사마리아(요르단강 서안지역)에 있는 정착촌들은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라는 성서의 명령을 실행할 것이다. 정착촌들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현실을 창출해서 정치적인 통치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용이하게 한다.”

현 총리인 샤론도 1977년 당시 농림부 장관으로서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 200만 명의 유대인 정착을 요구하는 20년 계획을 제안했다. 일명 ‘샤론 계획’(the Sharon's Plan)으로 불리는 이 계획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 점점이 박혀 있는 정착촌들을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망으로 연결해서 결국은 팔레스타인 땅을 고립 분할시켜 이스라엘 영토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사진5

△사진6

정착촌 사람들에게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들이 부여됐다.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의 15-25%에도 못 미치는 싼 가격의 아파트. 가구당 20,750달러의 국가보조금. 무이자로 11,750달러를 대부해주고 나머지 필요한 금액에 대해선 연 5.7%의 이자만 부담시켰다.

1990년대 이후 오슬로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정착촌 건설은 계속됐다.

1998년 10월 31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더욱 더 많은 고지를 확보하라. 우리들이 차지한 영토가 우리들의 것이 될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그들이 차지한 영토는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이 상황에서 도울 수 있고, 도와야 한다. 우리는 교묘하게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사진5, 사진6-정착민들의 항의에 곤혹스러워 하는 이스라엘 군인

유대 정착촌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현재 가자 지구에 건설된 정착촌의 수는 21개에 달하고 정착민은 8천 5백 명에 달한다. 요르단 강 서안지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서 정착촌의 수가 170여개에 달하고, 정착민의 수는 무려 20여만 명에 달한다.

정착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정착촌 지역위원회’는 1978년 5개의 지역위원회로 출발하여 1999년에 25개로 증가했다. 현재 정착민들은 이스라엘의 對팔레스타인 정책의 선두에 서서 인종주의적이며 급진적인 시오니즘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내에서 그들은 각종 이권을 대변하며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 정부는 정치세력화한 이들의 견해를 무시하고 자의적(恣意的)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도 없는 형편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유대 정착민들의 급속한 정치세력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평화단체인 ‘피스 나우’(Peace Now)의 ‘아리엘 아르논’ 교수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장공격을 초래하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이며, 현재 위기의 타개책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이 어떻게 펼쳐지는 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스라엘이 현재의 정착촌 확장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간의 분쟁과 갈등 해결은 요원하기만 한 것이다.  

기존의 팔레스타인 마을들 사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정착촌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기존 팔레스타인 마을이 공동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강제 몰수하는 등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착촌에 대한 적개심과 위기감은 극도로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정착민들 입장에서도 주변에 수적으로 우세한 팔레스타인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착민들의 생존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로가 경원시하면서 갈등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형국이 돼버렸다.

2002년 4월 19일 가자 지구 최대의 정착촌인 ‘구시 카티프(Gush Qatif)' 정착촌 입구에서 자살 폭탄 공격이 감행되는 등 유대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2000년 9월 당시 야당인 리쿠드 당 지도자였던 샤론은 이슬람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전격 방문했다. 비록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지만 그들 신앙의 성소(聖所)만은 침탈당하지 않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수백 명의 경비원을 대동한 샤론의 무단방문에 격분했고, 급기야 대규모 시위로 비화되면서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시작됐다. 이후 2001년 2월 샤론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사진7

△사진8

샤론은 총리에 취임한 후,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주창한 ‘아라파트’를 철저히 무시하는 정책을 폈다. 이스라엘 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 안에서 고립된 채 죽어간 아라파트의 모습은, 자신에 대한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샤론의 강경파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던 샤론이 2004년 2월 갑자기 충격적인 발표를 한 것이다. 가자 지구 21개 정착촌을 2005년 8월까지 모두 철수시키고, 가자 지구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손에 넘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착촌 주민들이 그 누구보다도 샤론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후견인 역할을 해 왔던 샤론이 정착촌을 철수시키다니.

△사진7, 사진8-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농성중인 모락 정착민들

과연 샤론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가자 지구에서 유대 정착촌 철수가 시작된 8월 15일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광복절’(the liberation day)이라 부르며 기뻐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하마스 · 지하드 같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 비록 입장은 달랐지만 가자 철수를 기쁨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같이 우려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번의 가자 철수가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의 보다 더 확고한 이스라엘의 지배’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고작 8,500명밖에 안 되는 가자 지구의 정착민들을 포기하는 대신,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 20만 명이 넘는(동예루살렘 주변지역을 포함하면 40만에 육박하는) 정착민들을 국제사회의 암묵적 동의하에 ‘합법적으로’ 계속 거주시킬 수만 있다면, 이스라엘이 이를 마다할 리는 없을 터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정착촌 철수를 강행하면서도 여전히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의 정착촌은 ‘증축’하고 있다.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의 북에서 남까지 무려 800여km의 ‘분리장벽’도 여전히 건설되고 있다. 동예루살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분리장벽은 9월 1일부터 실질적인 ‘국경'(border)으로 기능하게 된다. 동예루살렘까지 이스라엘의 확고한 영토로 편입되는 것이다.

가자 정착촌 철수는 과연 평화를 향한 첫 걸음이 될 것인가?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행보에 세계가 숨죽여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