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럽 성매매 합법화 논란(7월 29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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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취재리포트

 

유럽 성매매 합법화 논란
        7월 29일 방송 <김새별 PD>

 

작년 10월, 그리고 지난 6월 말,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매춘부’까지 데모를 하다니, 세상 참...”

곳곳에서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유교적 전통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그녀들이 벌인 반란은, 과연 ‘말세’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 반란의 역사

독일 베를린의 오후. 펠리치타스 바이크만은 자신의 카페 ‘Pssst!'(조용히, 쉿! 이라는 의성어)으로 출근을 한다. 가게 내부를 정리하고 있노라면 거래 업소로부터 술이며 음료수 등이 배달된다. 아가씨들이 가게로 오는 것은 초저녁 쯤. 25명가량의 아가씨들이 이 가게를 드나들며 남자 손님을 찾고, 거래가 성사되면 바이크만으로 부터 시간당 30유로를 내고 방을 빌린다. 매춘의 거래 장소와 방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업주인 바이크만 역시, 과거 성매매를  ‘직업’으로 삼았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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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치타스 바이크만.  소송 당시 독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인이다.

베를린 거리의 성매매 여인
 

바이크만은 독일에서 유명인물이다. 독일사회에서 성매매에 관한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97년, 바이크만의 가게가 풍기문란 방조 혐의로 단속을 받게 되고, 행정기관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당시 독일은, 성매매에 대해 합법적으로 인정도, 단속도 하지 않는 비범죄주의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행정기관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승소했다. 그녀의 소송은, 독일사회에서 성매매 문제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제 가게가 사람들에게 어떤 해악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은 모두 등록이 되어 있고, 매우 독립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직원들을 위해 건강보험료, 실업보험료 등을 내고 있어요.”

그녀는 뻔뻔스러울 만치 당당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반란’의 역사는 1975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리옹의 성매매 여성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Saint-Nazier 성당을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1980년, 독일에선 최초의 성매매 여성들의 단체인 ‘히드라’가 탄생한다. 이 단체는 20년이 넘도록 성매매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최초의 반란이 있은 지, 30년. 유사한 문제가 우리사회에서도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1975년,  500명의 프랑스의 성매매 여성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리옹에 위치한 한 성당을 점거했다.

 

■ 합법화

9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한 정당이 ‘성매매 합법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성매매 당사자, 손님, 고용주 사이의 민법, 노동법, 사회보장법 상의 관계를 규정하는 ‘성매매 관련법’이 통과되었고, 2002년 1월1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법안을 발의한 것은 녹색당이었다. 환경정책과 여성정책, 에너지 정책 등을 주요 정책으로 다루고 있는 녹색당. 당원의 38%, 당 직원의 60%(유럽 정당에서도 상당히 비율이 높은 편이라 한다)가 여성인 이 정당이 성매매의 합법화를 추진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녹색당과의 인터뷰는 녹색당답게, 당사 안쪽에 있는 녹색의 정원에서 이루어 졌다.

녹색당 여성정책 담당관 슈렌커씨

“녹색당의 다른 정책들과 성매매 합법화는 대체 어떤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나요?”

그들의 논리를 듣고 싶었다.

“성매매 합법화는 反차별화 정책의 일환입니다. 강제적인 성매매는 물론 강력히 단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그런 일을 하는 경우는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전제해 버린다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현재 독일에는 40만 명의 성매매 종사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이용하는 남자들은 대략 하루 백만 명. 존재하는 상황을 없는 것으로 못 본 척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성문화가 개방된 독일이라고 해서 합법화가 그리 간단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법안이 최초 제안되었을 때 반응은 무척 날카로웠다고 한다. 정당, 종교단체, 여성단체, 성매매 여성들의 단체 등 각계의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고, 통과되기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녹색당이 단독으로 추진한 것일까? 다른 정당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놀랍게도, 법안의 내용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기민당(CDU, 기독교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합법화’ 자체에는 찬성을 했다. 이 쯤 되면, ‘성매매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다르긴 굉장히 다르구나.’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자민당(FDP)의 이나 렌케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일 연방의회 의원(자민당) 렌케씨

“저는 도덕을 대변하기 위해 의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매매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포주들의 횡포, 미성년 성매매, 인신매매 등이 문제라는 점입니다.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적 성매매는 줄이고, 가능한 한 양성화해, 인권을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이 법을 통해 득을 보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라는 점도 강조했다. 즉,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소수의 성매매 여성을 말하는 것이다.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포주도 아니요, 성을 사는 남성도 아닌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 지방자치

합법화가 되었다고 해서, 독일 전역이 모두 다 같은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매매 정책에서도 지방자치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베를린 같은 경우, 업소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나 길거리 호객행위 등이 모두 허용된다. 반면, 도르트문트나 쾰른 시 같은 경우는 제한된 구역 안에서만 이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쾰른 시가 관리하고 있는 한 성매매 구역을 찾았다. 쾰른 시의 외곽. 산업지대를 죽 따라가니, 한 쪽 구석에 컨테이너 박스로 된 사무실과, 작은 도로를 낀 시설물이 나왔다. 오전 11시경, 쾰른 시 보건부의 직원인  페넬로페씨가 우리를 안내했다. 11시에 약속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낮 12시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기 전인 오전 시간을 택한 것이다.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는 쾰른시 보건위생국의 페넬로페씨

중세 고딕양식의 쾰른 대성당과 그 앞을 흐르는 라인강.  이런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곳에도 성매매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노골적인 모습으로.

“여기는 ‘맥도널드 드라이브-쓰루’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

설명을 듣고 보니 과히 충격적이다. 도로 곳곳에 놓인 의자에는 성매매를 원하는 여성들이 앉는다. 차를 탄 손님이 원하는 여성을 골라 협상을 한다. 그리고, 칸막이 주차장(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데, 세차장과도 비슷한 분위기였다.)에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행위가 이루어진다.

이런 시설이 정부의 관리 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미디어에 시설을 공개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 될 정도였다. 배경엔 쾰른 시 나름의 고민과 결단이 있었다고 한다. 공장을 비롯한 산업시설이 밀집한 이곳에선, 과거 성매매 여성을 살해하거나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가 만연했다. 경찰들이 끊임없이 이들을 ?고,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마약으로 인한 문제도 심각했다. 시 공안국과 보건부가 관여해 이런 시설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쾰른 시의 결단입니다. 과거엔 성매매 여성들, 이들을 둘러싼 범죄자들을 쫓아다니는데 너무나 많은 인력을 낭비해야 했습니다. 마치 성매매가 없는 것처럼 덮어두기엔 문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 실험

유럽에서 독일 이외에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로는 네덜란드와 그리스가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의 대부분의 나라는 합법화도, 단속과 처벌도 하지 않는 비범죄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실험에 들어간 나라가 있다. 바로 벨기에다.

벨기에는 2001년, 안트베르펜 시를 실험구역으로 정했다. 과거 18개의 성매매 거리가 존재하던 이 지역을 정부 관리 하에 두고, 세 개 지역으로 정리했다. 특이한 것은, 이 세 거리의 중심에 ‘가프로’라는 의사들 단체이자 병원이 있고, 파출소도 있다는 점이다. 성매매 여성이나 남성들 모두 이 병원을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 안에는 의학박사 뿐 아니라 카운슬러, 성매매 여성과 단체를 이어주는 ‘엉트리지’(홍보담당과 유사한 역할)도 존재한다. ‘엉트리지’인 미슐린에게 물었다.

<가프로>에서 의학박사 류리단씨가 한 성매매 여성을 진료하고 있다.

시범구역 안트베르펜의 한 성매매 업소

“성매매 여성들과 원활하게 대화하시는 비결이라도 있나요?”

“특별한 비법은 없어요. 단지 저 역시 과거 성매매 일을 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도 잘 알고 있고요.”

미슐린은 업소의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애로사항을 묻고, 건강문제에 대한 상담을 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예방,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준다.

성매매 여성과 상담하는 미슐린.  그녀 역시 과거 성매매를 했었다.

유럽의회 의원 쇠렌센씨.  인신매매 퇴치를 위해 일해 온 지난 수십 년 간, 협박은 물론, 본인과 딸의 납치 등 시련이 끊이질 않았다고.  집에 도둑이 든 것만 해도 14번이나 된다고 한다.  사무실 한 편엔 국가별로 정리해 놓은 인신매매 피해자 관련 자료가 가득하다.

 이런 실험에도 역시, 지역적 특수성과 현실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에서는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등지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폭력조직들에 의해 팔려오고 팔려갔다. 미성년, 강제적 성매매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쇠렌센 의원(현 유럽의회 의원)이 나섰다. 87년부터 시작된 그녀의 활동에 국왕이 관심을 가지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범죄를 줄이고 자발적 성매매는 양성화 해 정부의 관리 하에 두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강압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법을 제정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존중합니다. 그들에겐 그들에게 필요한 인권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선택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수 천년동안 존재해온 성매매문제의 해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각 사회가 내린 선택은, 그 사회가 처한 상황, 문화와 가치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유럽사회는 ‘양성화는 성매매 자체를 옹호하는 부도덕한 처사’, ‘단속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도’라는 식으로 단순화된 논의를 하지는 않았다. 그 중심엔 언제나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 사회의 논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