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7월 1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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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취재리포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동희 PD

시위대의 요구는 에너지 산업의 국유화였다. 수도 라파스로 통하는 모든 길은 봉쇄되었다. 온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른 광산노동자들이 인근 오를로에서 라파스로 진입하자 시위는 더 이상 통제 불능의 상황이 되었다. 사생결단. 그들의 각오는 무섭고도 독했다.

볼리비아 민중은 지난 3년동안 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교체했다. 그때마다 에너지 산업 국유화가 문제였다. 노동자, 농민, 학생들이 라파스와 수크레 등 주요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힘을 결집하며 결의를 과시했다. 까를로스 메사 대통령은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2년 전 대중운동에 의해 물러난 로사다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권에 오른지 불과 17개월만에 물러나야 했다. 메사 대통령의 과오는 무엇이었을까?  볼리비아의 에너지 산업이 무엇이길래 민중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가?

보이지 않는 적, 초국적 자본과의 싸움

이 사태의 핵심은 단순히 볼리비아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적, 초국적 자본가들에 대한 저항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에서는 천연가스와 수자원을 통제하는 다국적 기업에 맞서 일련의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자원은 대륙에서 그 규모가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볼리비아의 자산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원의 주인이 볼리비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1993년 곤살로 산체스 로사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그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기업을 민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영 항공사인 Lab, 전화회사, 청소용역회사와 수도회사, 전력회사, 가스, 석유회사 등 국가의 기간산업의 대부분을 민영화시켰다. 물론 여기에도 IMF의 압력이 있었다. 90년대 초, 중반 라틴아메리카는 IMF의 신자유주의 노선의 실험장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 IMF 경제모델은 자본의 토대가 빈약한 국가에서 초국적자본이 마음껏 약탈하고, 포식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주었다.

볼리비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볼리비아 산업의 상당부분이 초국적 자본에게 넘어갔다. 가스 개발을 위해 국제 석유 메이저들이 들어왔고, 식수공급은 미국계 자본인 벡텔사가 독점했다. 전화, 통신 분야는 유럽계 자본들이 독식을 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윤추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어이없는 상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40년간 독점공급권을 따냈던 벡텔사는 ‘물에 대한 통제권’을 마음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도료를 300% 인상했으며

농민들이 농사에 쓰기 위해 빗물을 저장하는 행위조차 금지시켰으며 수도관 설치에 드는 비용도 인상해 시민들이 월급의 절반을 내야 수도관을 설치할 수 있었다. 결국 볼리비아 국민의 상당수는 물조차 마음껏 먹고, 마시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같은 현상은 단지 한가지 예에 불과한 것이었다. 국가경제에 대해 볼리비아 정부는 완전히 통제권을 상실했다. 국가는 그야말로 빈껍데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볼리비아 국민은 맨손으로 초국적 자본의 횡포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는 볼리비아의 국민들

그들은 그냥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다. 코차밤바라는 볼리비아 제2의 도시에서 민중의 분노는 결국 폭발했다. 소위 ‘물투쟁’이라 일컫는 이 대규모 시위로 벡텔사는 볼리비아의 철수를 선언했다. 그리고  수도사업은 ‘코차밤바시’에서 넘겨받아 운영을 하고 있다.

당시 투쟁을 이끌던 지도부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항한 하나의 대안모델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물투쟁’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에 대한 저항은 ‘물투쟁’에 이어 에너지 산업에 투자한 외국계 자본에 대한 ‘국유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볼리비아의 가스자원은 남미 2위의 보유량을 자랑하고 있다. 국제석유자본은 로사다정권과 40년투자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계약의 내용이었다. 로열티 18%를 제외한 80%가 넘는 자본이익이 국외로 빠져나가도록 허용한 내용이었다. 인근의 베네수엘라가 로열티 18%와 기타 세금을 합쳐 이익의 50% 정도를 국고에 환수하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가 나는 계약이었다. 이렇게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한 로사다정권의 부정의혹이 제기되었다.  

배신자 메사 물러나라!!!!

자원은 있으되 자본이 없는 나라의 국민들의 현실은 참담했다.  풍부한 가스자원이 볼리비아 정부에 가져다 준 이익은 아주 작았으며 그나마도 부패한 정부에 의해 ‘사회적 분배’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석유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저항과 반란은 절대적인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불만을 가진 볼리비아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같은 지지는 2003년 ‘에너지 산업 국유화’를 주장하는 대규모 민중 봉기로 응축되어 나타났다.

이에 대해 외국 자본은 ‘국제소송’과 투자개발 중지를 선언하며 ‘로사다 정권’를 압박했고, 무능하고 부패한 로사다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치노선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시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곤봉을 휘두르고 연일 최루탄을 터트렸고 결국 시위현장에 군인을 투입해 시위군중을 향해 발포명령까지 내렸다. 결국 광산 노동자, 코카재배 농장의 농민등 60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총탄에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봉기로 로사다 정권이 전복되었고 당시 부통령이던 메사가 권자에 올랐다.

그러나 메사대통령은 전임자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의 정책을 계승했다.

메사의 과오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취임식에서 메사는 국유화 관련된 국민투표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약속 지키지 않았고 다국적기업들과의 기존 협약 깨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메사는 천연가스의 국유화, 헌법에 의한 인디오의 권리 주장, 로사다 퇴진 투쟁에서 사망한 인디오 67명의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관련자들을 재판 회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메사대통령의 사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메사는 민중봉기에 의해 물러나야 했던 로사다에 이어 계속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했고 자신이 집무한 날 수보다 더 많은 항의 시위에 직면해야 했다. 메사 집권 17개월 동안 820건 이상의 시위가 발생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던 정치권력은 결국 배신자와 매국노 소리를 들으며 권력을 내놓아야 했다.

잇단 정권교체의 핵심은 신자유주의노선의 문제

취재진이 만났던 볼리비아 운동지도자들은 현재 국유화와 혁명적인 민중 의회 수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누가 통제하든 정부가 자본주의 하에서 생존 조건을 협상하기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것이 이 사태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궁의 새로운 얼굴마담들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이미 보아왔기 때문에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질서에 대항할 수 있는 혁명적인 민중의회 수립을 원하고 있다. 실제로 IMF 경제 모델은 중남미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나라에까지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 그 결과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었으며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등 불안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서민들의 삶의 질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볼리비아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번 시위를 주도했던 MAS당의 에보모랄레스 총재도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어찌보면 대통령이 누가되던 볼리비아 국민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 않을 수 있다. 빼앗긴 자원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탄핵대상이다. 그들은 ‘석유자원 국유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추구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대통령과 같은 정치노선을 원하고 있었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볼리비아 국민들에게는 또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볼리비아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