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이애나의 죽음, 왕실의 죽음 2부(6월 24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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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취재리포트

 

다이애나의 죽음, 왕실의 죽음 - 2부

김현철 PD


97년 다이애나의 죽음, 죽음 이후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찰스 왕세자의 지지도는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왕실 전문기자 로버트 좁슨도 동의했다. 심지어 찰스왕세자의 인기도는 윌리엄 왕자에게도 4%뒤지고 있었다고 한다.


1998년 영국시내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영국 내에서 군주제를 반대하는 두 모임

M'AM(Movement of Anti Monarchy)과 Republic 두 단체가 주도한 시위였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를 처형한 것처럼 이들은 단두대에 찰스 왕세자의 머리를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고 군주제를 종식시키자며 런던 시내를 활보했다.


 “왕궁으로 쳐들어가자!!!”라고 외치며 흥분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왕실의 운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다이애나는 81년 왕실에 입성했다. 그녀는 이후 왕실속의 매력적인 여인으로 왕세자비라는 존재로서 인정받으며 살아갔다. 그녀가 어떤 구체적인 일을, 업적을 이루었다는 평가가 아닌 철저히 존재 그 자체로 인정을 받으며 미디어의 관심과 그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를 접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찰스왕세자와 그의 오랜 연인이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지속적이고 은밀한 관계로 인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다이애나의 전 경호원이었던 켄 워프는 다이애나는 결혼생활 내내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줄 사람을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92년 별거 발표가 존 메이저 영국 총리에 의해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후 다이애나는 변화를 역할의 변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켄 워프는 다이애나와 함께 그때 이미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인도의 한 병원을 방문한 이후 다이애나의 그 효과가 너무나 엄청나서 놀랐다는 말까지 전해주었다. 미디어가 그녀의 방문 기사를 다루었는데 그 효과가 너무 커서 방향을 결정하는데 막강한 힘을 실어주었다는 분석이었다.


 

왕실사람들과 다이애나는 달랐다고 한다. 그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은 자연스러움이었다고 한다. 찰스나 여왕 다른 왕실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 바로 자연스러움. 어느 곳을 찰스나 여왕보다 다이애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대중들이 훨씬 많았다. 찰스역시 이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다른 왕실사람들도 이런 다이애나에게 질투심을 느꼈다고 했다.


다이애나는 92년 이후 대인지뢰 문제, 에이즈 문제, 빈곤 문제, 등을 직접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아이들을 만났다. 에이즈 환자의 손을 잡는 장면을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져 에이즈문제를 공론화시켰고 앙골라 대인지뢰 피해자들을 만나 대인지뢰금지협약을 이끌어내는데 초석을 담당하기도 했다.


왕실 전 대변인인 디키 아비터,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침체된 왕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평가했다. 여왕의 카리스마로 버텨 온 왕실,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그리고 태어난 두 명의 왕자, 윌리엄과 해리, 모두 영국왕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고 했다. 대중들의 잊혀져가고 있던 관심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이애나는 영국왕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다시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21세기에도 영국 왕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이애나는 보여주었다. 21세기에는 왕실이 더 이상 신비로움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었다. 인간적이고 친근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 열쇠를 다이애나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영국 왕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머지 왕실 사람들과 갈등도 있었지만 다이애나는 분명 침체된 왕실에 활력을 제공해 주었다. 왕실의 지지도가 높아졌지만 다이애나의 죽음 후 왕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이애나와 이혼, 잔혹한 방법으로 동물을 사냥하고 결혼 생활 중 다른 여인인 카밀라와 밀회를 즐긴 찰스에 대한 불신의 수위가 높아졌다.  도덕적으로 찰스 왕세자는 타격을 입었다. 다음 왕위를 윌리엄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디키 아비터는 다음 왕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찰스가 계승할 것이라고 했다. 찰스왕세자가 다음 왕위를 계승한다면 그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는 먼저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며 영국 헌법상 최고 수장이 된다. 또한 영국 의회는 찰스의 개회선언에 의해 열리게 된다. 모든 법안들은 찰스의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직접 법을 만들고 집행하지는 않지만 명목상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지위에 대한 고민들이 이제 슬슬 영국사회에서 제기되기 시작한다.



 

군주제 반대 단체, Republic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21세기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의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지도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왕실정치에서는 지도자가 세습되고 있다. 어떠한 실수를 해도 자격이 되지 못해도 바꿀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민주주의 훼손이다. 이론상 왕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의회가 의결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월권행위라는 것이다.


둘째 왕실 운영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작년 한해만 674억 원이 지출되었다. 전세비행기로 외국을 다니고 왕실 가족들이 점점 확대되어 왕실이 너무 비대해 진다는 것이다. 이런 비대해진 왕실 운영경비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1689년 명예혁명으로 시작된 입헌군주제.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 하지만 실제로는 여왕의 영향력이 전 영국 사회에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애나의 집사였던 폴 버렐의 재판이 여왕의 한 마디로 열리지 못한 것을 예로 들고 있었다. 통치행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왕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들은 평생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주제 옹호 잡지 <sovereignty>발간인

알리스테어 맥코나키.


그는 먼저 군주제는 민주주의와 상충한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했다. 현재 법안은 의회에서 의결하여 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의회가 민주적이며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국사회는 지금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여왕은 힘이 없다. 이론상 법안에 반대할 수도 있지만 근래 들어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잘못한 지도자를 바꿀 수 없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택권의 제한이지만 현재 영국사회에서 여왕은 그리 큰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습된다는 것은 어는 정도 문제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제가 군주제보다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4-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군주제를 유지하는 비용을 초과한다는 것이다. 자주 바뀌는 최고 지도자, 그에 비해 안정적으로 몇 십 년을 한명이 국가를 대표함으로서 국정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맥코나키는 또 이런 이야기도 언급했다.

 

대통령들은 색깔이 있는 정당에 속해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된다. 그러나 왕은 여왕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다. 이런 중립적인 위치는 대통령은 결코 확보할 수 없다. 군주제의 장점이다. 국정에 오랜 기간 안정성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왕실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으면 된다. 변화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왕실은 시대의 흐름에 아주 잘 적응해 왔다.

또한 현재 영국의 관광수입은 대부분 왕실이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전 왕실 대변인 디키 아비터는 2003년과 2004년에 왕실로 인해 벌어들인 국부가 무려 1억 파운드(약 1800억 원)이라는 것이다. 버킹엄 궁 앞에 가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와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고 했다.




군주제 반대 단체 M'AM 회원인
트레버 바크.

그를 만난 곳은 버킹엄 궁 앞이었다.


그는 프랑스는 몇 백 년 전에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을 시작했지만 관광객이 영국의 3배나 더 찾아온다. 마르세이유 궁전을 찾는 관광객은 무려 영국의 버킹엄 궁을 찾는 사람들보다 10배나 된다고 했다.


 

현재 영국왕실은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여왕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국민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왕의 어머니 마가렛 모후가 사망했을 때 여왕은 상속세 2천만 파운드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의로 탈세를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처럼 유혈혁명이 영국에도 있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보통사람들은 많은 특권 속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 왕실 사람들 그 자체를 혐오한다고 했다.


유럽의 군주제가 막을 내린 것은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왕실이 살아남을 수 있던 데에는 2차 대전 동안 버킹엄 궁을 떠나지 않고 지켰던 조지 6세의 공이 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현재 영국 군주제의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버지 조지 6세의 후광을 입고 왕위에 등극했고 그녀 자신역시 큰 실수없이 여왕의 직무를 수행해 왔기 때문에 당분간 군주제는 존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망, 그 때가 영국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공화정이 시작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전망했다.

지금이 영국사회는 ‘떨고 있는 아랫입술 대 굳은 윗입술의 대결’의 양상이었다. 밑에서는 서서히 군주제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왕실은 묵묵부답 예전의 방식대로 국민들과 의사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왕실 전 대변인 디키 아비터 


여왕은 현재 매년 약 500여개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한다고 초인적인 일이라고 했다. 영국을 대표해 전 세계를 다니고 있다고 그것도 곧 80세가 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군주제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73-76%의 국민들이 지지를 해오고 있다고 했다. 공화정 지지 세력은 15-18%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또한 여왕 개인의 지지도는 지금까지 한번도 83-84%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현재 여왕과 나아가 군주제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지지는 견고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여왕의 죽음이후에는 지금처럼 군주제가 견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영국 군주제의 핵심인 여왕, 왕실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그녀가 죽고 난 후 왕실의 존립여부에 대해선 공화주의자와 왕실지지자들 모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경호원들이 지키는 성에서 살면서 많은 부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왕실, 국민들은 이제 특권만을 누리면서 사는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그들의 존재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다이애나를 통해 국민들이 왕실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드러났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를 어떤 식으로 선출해야 하느냐는 문제역시 제기되고 있다.


영국 국민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여왕의 죽음 그 이후 영국 왕실의 운명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