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6년간의 동거, 다이애나와 왕실 1부(6월 17일 방송)
조회:

 PD 취재리포트

 

16년간의 동거, 다이애나와 왕실 1부

김현철 PD


 

2005년 4월 25일 영국 런던, 길거리에 전시되어 있는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Evening Express>지였다. 첫면에 실린 기사가 충격적이었다. “응답자의 약 94%가 다이애나는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제목이 실려 있었다. 물론 기사의 내용에는 사고 결과를 뒤집거나 할 만한 증거나 진술은 나와 있지 않았다. 설문조사의 오차범위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부풀리기 보도였다. 
 

다이애나 죽음에 음모가 있다는 음모론은 일부 언론에 의해 증폭되고 있었다.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는 파리의 알마터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04년 1월 영국 정부는 마이클 버지스라는 법의학자를 대표로 하여 사고 재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는 2006년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7년이 지난 뒤에 사고를 재조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 경찰은 약 3년간의 조사를 통해 운전사의 음주와 과속으로 인한 사고사였다고 이미 결론내린 바 있다. 물론 그 당시 다이애나가 탄 차량을 뒤쫓았던 파파라치들은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일부 국민들은 사고가 프랑스에서 일어났고 영국 경찰이 아닌 프랑스 경찰이 조사를 해서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전통을 중시하고 자부심이 강한 영국인의 특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재조사에 대한 희미한 끌림이 있었다.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다. 의혹들은 과연 무엇이며 납득할 수 있다면 7년이 지난 뒤에 재조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뿌앙 드 뷔> 잡지사를 찾아 갔다. 그들은 먼저 다이애나 사고 직 전과 직 후의 파파라치들이 촬영한 충격적인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사고 직전의 다이애나와 도디 사진, 호텔을 출발하기 직전의 사고 차량에 있는 도디와 머리를 돌리고 있는 다이애나, 사고 직후 찌그러진 벤츠 승용차, 눈에 띄는 한 장의 사진은 파파라치가 급하게 셔터를 눌러 초점이 흐릿한 차량 사진이었다.

희미하게 차의 유리창 안으로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잡지사의 기자인 필립 세기는 사고는 음주운전에 의해 일어났고 파파라치들은 그들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앙리 폴의 가족들은 현재 명예훼손 소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술을 먹지 않으며 평소에 세심한 성격이라 운전을 하는데 아주 적응을 잘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잡지사인데도 기사의 약 40%가 영국 왕실 이야기라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없어진 왕정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했다. 콩코드 광장에서 루이 14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를 단두대에서 처형했고 그 다음 공화정을 시작했던 프랑스가 영국에 있는 왕실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왕실 이야기들은 판매부수를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마이클 버지스, 사고 재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법의학자는 2개월 전부터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언론과도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사고 관련 자료역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영국에서 다이애나와 그의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가 사고가 아닌 살해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인물은 다름아닌 도디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였다. 이집트 출신으로 영국에서 성공한 몇 안되는 갑부 중 한명이다. 영국의 유명한 해로즈 백화점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해로즈 백화점 지하에는 다이애나와 도디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하메드가 주장한 음모론의 핵심은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첫째 당시 사고차량 운전사인 앙리 폴은 자기가 고용한 인물인데 술을 잘 마시지 않으며 당시에도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앙리 폴은 프랑스 정보기관에 정보를 팔고 있었고 그 프랑스 정보기관은 영국 정보기관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죽기 직전까지 미국 CIA와 영국 정보기관인 MI5에 의해 다이애나와 도디는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미국 정보기관에 감시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역시 진행중이다.


도디는 무슬림, 그가 만약 다이애나와 결혼을 한다면... 미래 영국의 왕이 될 윌리엄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영국정부는 대단히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 사고사인 것처럼 가장되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다이애나의 전 경호원 켄 워프를 찾아갔다. 그의 1시간 인터뷰료는 750파운드, 약 150만원정도이다. 다이애나의 곁에 있었다고 그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책도 이미 한 권 출판하여 상당한 돈을 벌었고 강연도 다닌다. 영국 런던 시내 중심에서 약 50억 가까운 집에서 산다.

 

영국에서는 다이애나를 팔아서 갑부가 된 사람들이 몇 있었다. ‘찰스가 자기를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이려고 한다’는 다이애나의 편지를 공개한 다이애나의 집사 폴 버렐, 다이애나의 연애편지를 187억원에 공개해 거금을 벌어들인 제임스 휴잇(전 다이애나의 승마 교관) 등 모두 책을 썼고 지금은 모두 갑부가 되어 있었다. 


켄 워프는 다이애나의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호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운전사가 음주를 했다는 징후만 보여도 차에 태워서는 안 되고 빠른 속도로 가면 천천히 가라고 혹은 운전사로 하여금 내리게 하고 경호책임자가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사의 음주는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고 당시 경호를 맡은 트레버 리스 존스, 도디에 의해 고용된 경호원에게 다이애나 죽음의 책임을 물었다.



그가 책임을 묻고 있는 트레버 리스 존스는 사고에서 살아 남은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는 사고 당시 운전사 옆자리에 타고 있었다. 몇 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에야 살아 남은 트레버 리스 존스는 그 후 사고에 대한 기억을 못한다. 모든 것을 함께 했지만 그는 사고 충격으로 사고의 원인에 대해 말해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억을 못하는 그였지만 그 역시 책을 출간했다. 책에는 사고의 정확한 원인으로 집요한 파파라들의 추격과 앙리 폴이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만 적고 있었다.


음주를 했다면 왜 그는 사전에 그것을 알고 다른 사람으로 운전사를 바꾸지 않았을까?


당시 출발지가 파리의 리츠 호텔, 호텔 CCTV에 녹화된 앙리 폴과 경호원인 트레버 리스 존스는 약 1m정도 옆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물론 그 옆에는 다이애나와 도디도 있었다.

사고 후 발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운전사인 앙리 폴의 혈중 알콜 농도는 약 1.74g/l였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음주 단속기준이 0.5g/l다. 약 3배를 웃도는 수치인 것이다.


프랑스 경찰들은 이 정도 수치면 비틀거리고 거의 인사불성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똑바로 선 자세로 1m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다이애나와 도디, 그리고 경호원과 이야기를 몇 분간 주고 받는 동안 앙리 폴이 술을 먹었는지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고 발생시간은 약 0시 25분, 혈액 채취 시간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새벽 2시, 그렇다면 앙리 폴은 사고 전 이미 1.74를 넘는 수치로 만취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호텔 직원들은 그날 앙리 폴이 호텔로 들어 온 시간 약 10시 7분, 그 때부터 앙리 폴을 보았을 것이다. 호텔 직원 누구 한명만 나와서 증언을 하면 앙리 폴의 음주 여부, 사건에 있어 가장 큰 의혹이 해결되는 것이다. 정황상 다른 부분에서는 사고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어떤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호텔의 몇 몇 직원들, 특히 당시 야간 호텔 안전 책임자를 찾아보았지만 모두 법적인 문제가 남아 있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앙리 폴이 혈액을 채취해서 검사를 했던 피티 살페티에르 병원, 당시 책임 간호사였던 베아트리체 험버트 간호사와 담당 의사 모두 사전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호텔의 몇 몇 직원들, 특히 당시 야간 호텔 안전 책임자를 찾아보았지만 모두 법적인 문제가 남아 있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앙리 폴이 혈액을 채취해서 검사를 했던 피티 살페티에르 병원, 당시 책임 간호사였던 베아트리체 험버트 간호사와 담당 의사 모두 사전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응급차 운전사들도 찾아가 보았지만 모두 법적인 문제가 남아 있어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모두 빈틈이 없었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에 있어 아주 중요한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회피하고 있었다.  이런 빈틈없음에서 오히려 추측들은 새어나오고 있었고 점점 더 확대되고 있었다.

 

왕실 전문기자인 로버트 좁슨

 

 

그는 음모론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젊어서 죽은 다이애나, 그녀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뭔가 이유를 찾는 다는 것이다.

‘아닐거야 아닐 거야 뭔가 있을 거야’하며 이유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음모론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증거들을 살펴보았는데 충돌사고 운전사가 음주를 한 후에 과속으로 터널 내의 교각과 충돌한 단순한 사고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영국 사람들은 약 60%정도가 죽음 뒤에 뭔가가 있다고 했다. 정보기관이라는 사람도 있고 영국 왕실, 정부라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진실은 영원히 모를 것이라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2000년도 한 신문에 의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50%가 다이애나는 단순히 사고사로 죽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과연 1,74라는 수치인 상태에서 운전이 가능할지? 그리고 그 정도의 알콜을 섭취하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아보려고 모의 실험을 했다.


일단 혈중알콜농도는 주량과 상관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량이 센 사람은 같은 수치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과 알콜이 몸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에게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주량이 센 프랑스 남자를 선택했다. 사고 당일 앙리 폴이 마셨다는 술로 알려진 리카라는 것과 비슷한 보드카와 쥬스를 함께 마시게 했다. 약 2시간 가량을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마셨다. 조금 시간을 두고 알콜수치를 측정해나갔다.  1.7이 나왔을 때 운전을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프랑스 남자는 취한 상태였다. 걸음은 비틀거렸고 말투나 행동이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갓길로 들어가더니 아예 차량을 멈추어 버렸다.

사람이 나타나고 친 뒤에야 핸들을 꺽었고 중앙선을 넘어가서도 쉽게 원래의 차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상적인 상태보다 약 15%정도 과속을 했고 차선이탈횟수는 무려 5배 정도였다. 운전을 약 시속 120km로 운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혈중 알콜수치가 1,7인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달랐다. 간격이 있어 보였다.

그 간격을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다이애나와 갈등관계에 있었던 찰스 왕세자 나아가 왕실 전체의 위상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쳤다. 다이애나의 죽음이후 스캔들과 권위의 상징인 왕실에 대한 반감역시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영국의 상징인 왕실, 군주제의 존재에 대해 묻고 있는지 2부 <다이애나의 죽음, 왕실의 죽음>에서 취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