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렌잔(連戰)의 선택(6월 3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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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취재리포트


렌잔(連戰)의 선택(강지웅PD 연출)


  기획의도

  지난 4월 29일 중국 베이징에선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 후진타오(胡錦濤)주석과
  타이완 제 1 야당 국민당 렌잔(連戰) 주석간의 만남이 그것이다. 최근 타이완 집권 민진당
  천수이벤(陳水扁) 총통의 대만 독립 주장과 2006년 헌법개정문제로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관계(兩岸關係)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렌잔의 방중(訪中)으로
  양안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924년과 1937년의 국공합작에 이은 제 3차 국공합작으로도 불리는 후진타오와
  렌잔의 만남은 ‘정치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렌잔의 방중 이후 중국은 중국 본토인들의 타이완 여행을 완전 자유화 했고, 타이완 기업의
  부가세를 50% 인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렌잔의 방중을 비난하던 천수이벤도
  후진타오의 타이완 방문을 요청하는 등 양안관계에 오랜만에 해빙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양안관계는 한반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파국의 불씨를 안고 있는 북핵문제의 통제에
  중국이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중국과 타이완간의 통일문제에는 미국이 심대한 관심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과 미국이 각자 자기 입장에 맞게 선택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즉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고, 미국은 대만을 희생시켜서
  상호이익을 맞교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렌잔의 중국 방문에 미국이 깊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렌잔의 방중을 비난하던 천수이벤이 막판에 “야당 주석의 방중을 축복”하게 된 것이 미국의
  압력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안문제와 남북관계는 미국의 지역안보와 연동돼 있다. 게다가
  한반도의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도 바라지 않는 일본의 입장까지,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양안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한반도 문제의 해법이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MBC “W"에서는 지난 5월 26일 렌잔 주석과 긴급 직격 인터뷰를 가졌다. 타이완 언론과의 접촉도
  삼가고 은인자중하고 있는 렌잔 국민당 주석의 심중을 MBC "W"가 독점 공개하고, 렌잔 방중 이후
  양안관계의 변화와 한반도간의 상관관계를 심층 분석해 본다.   


 

                    렌잔과의 첫만남

                 렌잔과 인터뷰 하는 모습

  주요내용

  ① 두 가지 풍경 : 타이뻬이 공항의 폭력사태와 북경대 강연에서의 렌잔의 눈물

   4월 26일. 1945년 중국 공산당 마오쩌뚱(毛澤東)과 국민당 장제스(蔣介石)간의
  충칭(重慶) 회동 이후 60년 만의 역사적인 회동을 위해 렌잔이 타이완을 떠나던 날.
  그날 공항에선 민진당(民進黨) 지지자들의 격렬한 반대시위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과 손잡고
  타이완을 팔아 넘기려는 매국노”라는 비난 끝에 결국 시위는 렌잔의 지지자들과 민진당 지지자들
  간의 폭력사태로 끝을 맺었다.
  4월 29일. 렌잔의 북경대 강연이 끝나고 깜짝 이벤트가 마련됐다. 1920년대에 북경대를 다녔던
  렌잔의 모친(96세)의 북경대 시절 성적표와 사진이 기념품으로 증정된 것이다. 70줄에 접어든
  노 정객도 이 선물 앞에선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에 불과했다. 4월 26일 방중해서 난징?베이징?시안?상하이로 이어진 렌잔의 행로는
  중국 언론들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중국 전역이 감격과 환영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② 렌잔과 국민당의 선택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인터뷰 내내 렌잔이 강조한 점이다. 그는 대부분의 타이완 국민들이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방중이 천수이벤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책략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얘기했다.
  렌잔과 국민당이 원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독립을 원하지도,
  무력에 의한 통일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양안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천수이벤의 "눈을 띄워"줄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천수이벤이
  "편협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타이완 연합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렌잔의 방중 이후
  천수이벤 총통에 대한 지지도는 2000년 취임 이래 최저 수준인 34%로 떨어졌으며,
  민진당 지지도도 26%로 하락했다. 반면, 롄잔의 지지도는 2004년 9월의 31%에서 44%로 뛰었으며,
  국민당 지지도도 덩달아 37%에서 43%로 올랐다.

  ③ “국민당 주석직을 연임할 생각은 없다. 정치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중이후 국민적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렌잔은 단호하게
  국민당 주석직을 연임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주석직에서 물러난 후 정치를
  그만 둘 생각이라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렌잔의 수석공보비서관이 황급히 취재팀에게 달려와 렌잔의 말을
  액면 그대로 싣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직도 국민들은 그를 원하고 있고 지지자들이
  그의 퇴진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2000년과 20004년의 대선패배. 2004년의 대선패배는 불과 3만 598표차였다. 과연 렌잔은
  2008년 대선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인가? 취재진이 보기에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렌잔의 다짐은 진실로 보였다.

  ④ “타이완도 중국도 모두 변했다. 이미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60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배한 후 장제스가 국민당 일파를 이끌고 타이완으로 들어온 것이
  1949년 12월.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 하에서 국민당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하고 동북아시아에서
  냉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타이완 국민당. 중국 공산당과는 ‘접촉하지도 대화하지도 타협하지도
  않는다’는 3불통(不通) 원칙을 내세웠던 게 엊그제였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국민당도 변했다. 2000년 민진당에 정권을 내어준 후 만년 야당신세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당으로 낙인찍힌 국민당이 선택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 국민당의 눈에, 30만 명이 넘는 타이완인들이 중국 본토에 투자하고 기업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타이완만의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천수이벤과 민진당의 노선은
  너무나 무모하게만 보였다.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를 존경한다는 시카고 대학
  정치학 박사 출신의 노정치가 렌잔의 정치철학은 “정치는 너무 외골수가 돼선 안 되며,
  반드시 적당하게 타협하여야 하고, 특히 정치적인 현실의 환경에서 어느 것이 더 유리한 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렌잔의 선택, 그리고 국민당의 선택이 중국과 타이완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놓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렌잔과 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