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라진 네팔의 딸들(5월 13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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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취재리포트


사라진 네팔의 딸들
(임경식PD 연출)

  
국제노동기구(ILO)의 발표에 따르면 인도로 팔려간 네팔 여자 아이들이 한해 평균 1만 2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이들을 밀거래하는 브로커나, 인도에 거주하는 네팔 친척들, 심지어는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이웃나라로 팔려간 네팔의 소녀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가혹한 노동과 수치심,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뿐이다.

국경의 두 여인  

 네팔-인도간의 국경 마을, 비르건즈(Birgunj).
 하루에도 수백 대의 릭샤와 탕가(우마차)들이
 국경을 지나는 유일한 통로인 다리를 건넌다.
 네팔인과 인도인은 여권검사 같은 기본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이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전날 릭샤를 타고 이곳을
 촬영하던 중 네팔 릭샤꾼이 평소처럼 우리를
 태운 채 인도 국경을 넘었다가 취재팀 모두 인도
 이민국 사무소로 끌려가는 곤혹을 치러야 했다.
 결국 촬영한 테잎을 이민국 직원이 보는 앞에서
 모두 지우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후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는데 그 덕에 우리는 다음날
 파란색 초소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맞은편에 국경을 지키는 수비대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땡볕에 서서
 지나가는 릭샤를 검문하고 있는 이 여인들의
 정체는 ‘마이티 네팔(Maiti Nepal)'이라는 NGO에서
 파견한 활동가들이다. 이들의 임무는 네팔 소녀들을
 태운 릭샤를 검사하여 혹시 소녀들이 인도로
 팔려가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강제로 약을 먹여 납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좋은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해준다고
 유혹해서 국경을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부분은 소녀들의 부모로 위장해서 인도로 데려
 가는데 미리 입을 맞추기 때문에 브로커들을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소녀들을 매매하다가 붙잡히게 되면 징역
 20년형에 처해지지만 브로커들이 개입된
 소녀 매매가 점점 더 성행하고 있다. 초소 안에는
 실종신고된 네팔 소녀들의 사진이 빼곡이 붙어 있다.
 

지옥에서 돌아온 아이들


     우마는 네팔 소녀들을 태운 릭샤를 검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지난 4월 9일 네팔 소녀를
    매매하려는 브로커를 검거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락시미는 현재 10살이다. 그녀는 유년시절은
    잃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인생의 피로가
    담겨져 있다.

 팔려간 네팔 소녀들은 인도에서 과연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카트만두
외곽에 위치한 매매아동보호센터를 찾았다.
CWIN이라는 아동보호단체에서 운영하는
이곳에는 인도에서 구출한 소녀들이 모여 있다.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 10세에서 15세 가량의
25명 소녀들이 한창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어린
나이(5세에서 7세)에 인도로 팔려갔기 때문에
수업 내용은 유치원 수준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5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커스로 팔려간 락시미를 만날 수 있었다.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왜소한 이 소녀는 5년 동안
서커스에서 자전거 묘기를 했다고 한다. 이제야
겨우 웃음을 찾은 락시미는 집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도대체
락시미의 아버지는 왜 딸을 팔았을까? 우리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러 헤투다(Hetuda)로
향했다. 지난해 홍수로 유일한 생계수단인
재봉틀을 잃어버린 락시미 가족의 생활은
생각보다 휠씬 비참해보였다. 그녀의 아버지
고팔은 인도에 사는 처남의 권유로 딸을
서커스로 팔았고, 그 대가로 1,000루피(한화
약 1만 3천원)를 받았다. 그러나 하루에 2달러씩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딸이
서커스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위험한 묘기를
부려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취재 결과 인도로
자식을 넘긴 부모의 대부분이 차비 이상의 돈을
받지 못했고,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인도에 사는 네팔 친척이 중간에
소개비를 가로채는 것도, 그 뒤에는 아동매매
브로커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렇게 팔린
네팔의 소녀들은 서커스와 사창가로
넘겨졌다.
 

 

서커스의 네팔 소녀들 

 

 서커스에서 일하는 네팔 소녀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지만 델리나 뭄바이 등
대도시에서는 서커스가 거의 퇴출된 상태였다.
넓은 인도 땅에서 아무런 정보 없이 서커스를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었다.
우리는 일단 델리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1시간쯤
달렸을까. 화려한 색상의 포스터가 한 장 눈에
들어왔다. 서커스가 하고 있음을 알리는 포스터였다.
기적이다. 서커스의 규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서커스장 앞 철조망에는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1등석 75루피부터
4등석 20루피까지 입장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날
입장한 인원은 4천명이 넘었다. 밖에서 촬영하고
있는데 서커스장에서 한 명이 급히 나오더니 촬영을
제지했다. 우리는 각종 감언이설로 사장을
설득했으나 결국 촬영허가를 받지 못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장표를 사서
들어가 몰래 촬영하는 것뿐이었다. 서커스가
시작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단원들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는데 놀랍게도 모두 앳된 얼굴의
네팔 소녀들이었다. 관중석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커스 대부분을 네팔 소녀들이
담당했고,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없는
서커스장에서 그들은 그동안 수없이 맞춰온
동작을 반복했다.
 진한 화장을 하고 야한 옷을 입은 소녀들은 한결
같이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피로한
기미가 역력했다. 그녀들은 정말 웃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울고 싶은 것일까? 소녀답지 못한 웃음은
묘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아마르(Amar) 서커스는 인도서커스협회 등록된
제법 규모가 큰 서커스로 현재 66명의 네팔 소녀들이
일하고 있다. 서커스의 사장은 모두 18세 이상이라고
했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네팔의 가난한
부모들은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시간조차 내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네팔
아이들은 서류상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소녀들의 나이를 확인할 수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그녀들의 존재도...
 
 


     66명의 네팔 소녀들이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위험한 묘기를 펼치는 그녀들의 모습이 슬프다.

 

인도의 집창촌 - G.B 로드

 

 서커스와 함께 네팔 소녀들이 많이 팔리는 곳이 바로 사창가다. 현재 7만 명 정도의 네팔 소녀들이 인도
 사창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델리역 뒤편에 G.B 로드는 우리로 치면 청량리 같은 집창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상점거리와 차이가 나지 않지만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호객꾼으로
 보이는 여성이 안내를 한다. 몇 군데 들르지 않아 우리는 네팔 소녀들만 모여 있는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평쯤 되는 홀에는 남녀가 뒤섞여 있었으며 작은 쪽방들이 복도에 늘어서 있었다. 다락으로
 통하는 듯한 사다리에서도 여성들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 눈에도 네팔인임을 알 수 있는
 여성들이 대략  50명 가량 모여 있었다. 18세에 고향 카트만두를 떠나 이곳에 왔다는 한 네팔 여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사창가로 팔려온 네팔의 소녀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불운의 여인, 시타(sita)

 


  교육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말처럼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시타, 그녀는 용감했다. 외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덕분에 네팔 소녀들의 매매와
 납치에 관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4살 때, 3명의 괴한으로부터 강제로 납치당한
 그녀는 사창가로 팔려가 6년이나 지옥 같은
 생활을 겪어야 했다. NGO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한 그녀의 시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AIDS 양성반응이 자신과 그녀의
 아들에게까지 나타났다는 사실을 21세 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26세인 시타는
 35세처럼 늙어 보였다. 생활과 질병이 그녀의
 젊음을 빼앗아 간 것처럼 보였다. 현재 그녀는
 봉투를 만드는 일을 하며 한달에 1,000루피(한화
 약 1만 3천원)정도의 적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제2, 제3의 시타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CWIN에서 여성들을 교육하는 일을
 자원해서 하고 있다.



네팔에서 딸을 키운다는 것

 

 왜 하필 네팔 소녀들일까? 피의 화요일(2004년
 5월 13일, 로만 서커스에서 네팔 소녀들을 구해냈던
 작전)을 주도했던 글로벌 마치(Global March)의
 활동가 카일라쉬 삿야르티씨는 네팔 소녀들이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수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서류상 네팔
 소녀들은 완전무결하다)?
 인도에서 서커스와 섹스 산업은 돈이 되는 큰
 산업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잣대에 엄격한
 인도사회에서 인도여성에게 이런 일을 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의 찾은
 대안이 바로 이웃나라 네팔의 소녀들이었다.
 네팔 소녀들이 순수하다는 것은 인도인들의
 자기검열에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객체로서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취재를 시작할 당시에는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딸을 인도로 넘기는 네팔의 아버지의
 비정함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팔에서
 딸을 키운다는 것.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스스로
 풀기에 지나치게 힘들어 보였다.


     10킬로미터가 넘는 등하교길을 마다 않고 
     갈 수 있는 것은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 꿈을 돌려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