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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안. 도쿄에 들렀다 다시 LA로 향한다. 미국 현지 시간 12시 한국계 미국인으로 19세의 어린나이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이성준군의 장례식.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도쿄경유 비행기편을 예약했다. 사실 인터뷰는 커녕 취재허가도 받지 못했다. 어린 자식의 시신을 앞에 두고 오열하고 있을 부모앞에 나는 어떤 말로 위로를 하며 취재요청을 해야 하는가 정말 난감하다....
난생처음 발 내디딘 미국.
겉보기엔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2003년 3월21일 이라크전 발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적어도 미 국민들에게는 ‘그들만의 전쟁’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런 미국을 가만히 들여다 보기로 했다.
이라크 전사자 1500여 명을 넘었다. 도대체 그 가족들은 어디서 눈물 흘리고 있는 것인가? 이 사회 어디에도 그 슬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미국이란 나라에서는 전쟁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애국심을 가슴 속 깊이 내면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준 일병, 18세의 어린나이. 꽃같은 영정사진에 나는 충격에 빠졌다. 너무나 앳띤 얼굴.
그에게 훈장이 수여되었고 영광스러운 미 합중국의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그는 또 한명의 미합중국의 전쟁 영웅으로 그 땅에 뼈를 묻었다.
이 꽃같은 소년은 왜 이라크에서 싸워야 했나?
성준이 졸업했다는 고등학교를 찾았다.
애너하임의 Laora High school. 학교관계자들은 성준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미군당국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통해 성준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성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학교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하던 차에 나는 또 한번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성준은 9학년 (중3)부터 주니어ROTC로 활동했다고 한다. 분단국가 한국에서도 교련이 없어진 마당에 어린아이들 상대로 수업 시간에 군대 체험을 시키다니....
그나마 성준을 지도했다는 주니어ROTC담당 교사 COLONEL ROBERT MARBY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렴풋이 이번 취재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COLONEL ROBERT MARBY씨는 말이 교사이지 사실 미군에 소속되어 있는 군인이었다. 그와의 대화도중 ‘교사’이라는 표현을 썼더니 정색하고 자신은 군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그들은 군인이었다. 수업시간은 사실상 군사훈련 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호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어린애들은 여기서 무얼 배우고 느끼나? 그러나 아이들과의 접촉은 금지되었고 우리는 어떤 질문도 그들에게 할 수 없었다. ROBRT MARBY씨는 훌륭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주니어 ROTC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90%이상이 수업시간에 총기사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주니어 ROTC 학생의 54%가 유색인종이며 그 중 50% 이상이 졸업후 미군의 하위계급으로 지원하고 있다. 과연 이프로그램이 MARBY씨의 말대로 선량한 시민양성에 그 목표가 있는 의구심이 들었다.
성준이 수업을 받았던 주니어 ROTC클래스 한쪽 벽면에서 성준의 사진을 발견했다. MARBY씨는 그는 참으로 훌륭한 학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준은 너무나 어린나이에 군에 갔고 그리고 전사를 했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MARBY씨는 몹시 난처해 하며 결국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이라크전 참전을 원치 않았다!!!
현재 미국 모병제캠페인은 주된 타켓은 놀랍게도 ‘미래의 전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중,고등학생들에 집중되어있다. 실제 입대하는 미군의 90%이상이 고졸이다. 게다가 중산층이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소년들이며 그리고 미국주류사회 편입하고자하는 열망을 지난 소수민족도 상당수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이민간 1.5세, 2세 한인들도 꽤 많은 수가 미군에 입대해 있다. 그들은 왜 미군을 선택했고, 왜 전선에 서있는가?
이범록 - 이라크전 최초의 한국인 전사자. 고등학교 졸업후 18세 어린 나이에 입대했다. 지난해 6월 2일 이라크 알안바 전선에 작전 수행중 폭격으로 인한 사망.
이범록은 미국에 5살때 이민와 쭉 미국에서 생활했지만 시민권조차 따지 않았다. 다른 많은 한인1.5세와 달리 그는 그 흔한 미국명 조차 만들지 않았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그는 늘 범록으로 불렸다. 범록의 부모님은 아들이 죽고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아들에 대한 얘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아버지는 일상적인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고 아들이 남겨두고간 빈 방에서 그림만 그리고 지냈다고 한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한인 가정. 한국의 평범한 부모처럼 대학을 선택하길 원했던 부모님. 군에 가길 그렇게 만류했지만 아들은 결국 듣지 않았다고 한다. 범록은 왜 군대를 선택했을까?
그가 다녔다는 홈스테드 고교를 찾았다. 실리콘 밸리 인근에 위치해 학생들중 아시아계가 30%이상을 차지한다고...그를 지도했던 교사는 ‘범록이 진짜 미국사람이 되고 싶었던 같다’는 표현을 했다. 그의 친구들 상당수가 군에 지원했고 그들 모두 아시안계였다. 미국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미국 주류사회의 당당한 편입, 그들에게 미군이 된다는 것은 안정적인 미국생활을 보장해주는 어쩌면 보증수표 같은 역할이었을지도 모를일이었다. 학교에는 범록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 위령비의 설립을 주도했던 인물은 변호사 택 장씨. 이민 1세대인 그는 범록씨의 위령비가 한인사회의 전체의 위상을 높혔다고 말한다. 50년전 한국전쟁으로 미국에 진 빚을 이제야 조금 갚았다고... 한국인 청년의 선택에 대해 많은 이견이 존재했다. 부모세대는 부모세대 대로 청년들은 청년들 대로.
부모님은 아들의 선택을 말리지 못한 안타까움을 절절히 토해냈다. 미군이 되기를 열망했던 범록은 그러나 이라크전 참전을 원치 않았고 그것은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조국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미국을 위해 전선에 섰던 아들의 선택을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죽음이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헛된 죽음’이 아니길 바라는 작은 소망뿐이라고 담담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직업 세일즈맨 모병관, 그들 누구도 전쟁을 말하지 않았다
취재도중 또 한명의 한국계 미군이 생사불명인 상태로 미 국립해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윤요셉 고등학교 중퇴 후 대학입시를 준비하다 길거리에서 리쿠르터를 만나 미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8대 독자였다.
부모님은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 군입대를 허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라크전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요셉이 리쿠르터를 만났다는 곳은 한국인 가장 많이 모여사는 뉴욕 플럭싱이라는 곳. 거대한 한인타운과 차이나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길거리에서 15세, 16세 어린 청소년을 만나보았다. 그들 모두 길거리에서 리쿠루터들에게 미군 입대를 권유 받았다고 했다.
퀸즈지역의 가장 큰 모병소. 예상했던 대로 벽에 붙여진 지원자들의 사진을 보니 아시안계가 대부분이었다. 이곳을 통해 1년에 200여명이 넘는 아시아계 청소년들이 미군에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모병관은 미군에 입대하게 되면 얻게될 혜택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그들은 미군이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군인’이라는 것을 단 한차례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미군이 되면 각종 학비혜택과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임을 강조했다. 입대를 유혹하는 각종 문구들 150가지 다양한 직업 훈련을 받을 수 혜택... 대단했다. 모병소에는 지원자들이 쉴새없이 오고 있었다. 장및빛 꿈과 기대감을 갖고 이 곳을 찾은 중국인 모녀도 있었다.
미군이 리쿠르팅에 쏟아붇는 돈과 노력은 대단하다. 전세계에 1700여 개의 미 육군 모병소가 있으며 7000여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일하고 있다. 이라크전이 3년째 진행되고 있는 지금 모병수치는 뚝 떨어졌고 입대보너스를 $25,000로 확대하고 비시민권자들에게는 입대하자마자 바로 시민권이 나오도록 법을 바꾸는 등 각종 혜택의 확대로 미국 사회내에 기반이 취약한 이민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취재결과 한인타운이 있는 곳은 어디나 모병소가 있었고 아시아계 중에서는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을 만큼 한국계 청소년들의 미군입대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모병관들은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중,고등학교 방문하고, 심지어는 집집마다 전화로 군입대를 권유하는 등 상당히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한국계 청소년들도 이같은 모병캠페인에 상당수 노출되어 있었다.
학비마련을 이유로, 또는 시민권을 발급받기 위한 절박한 이유로 그리고 무엇보다 당당한 미국인임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미군에 입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전선에 서 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이민자들이 미군 입대를 선택하는 이유는 마치 미국내의 흑인들이 초창기 흑인 노예 시대로부터 자신들이 시민으로서 얻을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군에 상당수가 입대하고 전투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 같은 이유다"
-에드윈 동 전 미국방부 인사담당 고문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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