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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Issue - 아프간 명예살인(임경식 PD)
'죽어야
사는 여자 - 어느 아프간 여성의 죽음'
지난 5월 18일
오후 1시 30분 경 하자라족들이 모여 사는 한 마을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피해자는 Tolo-TV의 인기 여성 진행자였던 샤이마 레자위였다.
사건 발생 3일 후 카불 경찰당국은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을 살해
용의자로 지목,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명예살인... 카불은 다시
텔레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버지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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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라족은
아프간 내에서도 개방적인 민족에 속한다. 아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그의 눈빛에서 아버지의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슬픔의 근원이 누구의 몫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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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마가
명예살인을 당했다는 외신 보도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샤이마의 가족과 접촉을 시도했다.
다섯 번의 취재요청 끝에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샤이마의
사촌 오빠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집으로 외부
사람들을 들이기 전에 집안의 모든 여자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긴다. 그런 까닭에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 안은 냉랭한 기운이 감돌 만큼 적막했다. 안내받은
거실에서 까칠한 얼굴을 한 샤이마의 아버지, 굴람
레자위를 만날 수 있었다. 서방 언론의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프랑스의 대표적인 그래프 주간지 <파리 마치,
Paris-Match>의 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딸과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은 아버지의 비통한 심정이 취재진을 바라보는
그의 흔들리는 눈빛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과연
명예살인일까?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굴람씨의
증언에 따르면 용의자로 지목된 두 아들(큰아들 조위와 막내 아들
파와드)은 사건 당시 현장에 없었고 경찰이 처음부터
명예살인을 염두에 두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며 두
아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사건 몇 달 전부터 검은색 랜드 크루저가 살해된
샤이마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위협했고 그 때문에
공중 목욕탕에 갈 때조차 부르카(아프간 여성들이 외출할
때는 쓰는 것으로 망사로 된 공간을 통해 겨우 밖을 볼
수 있다)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제3의 테러조직(이슬람 근본주의자)에
의해 딸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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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서
부르카를 쓴 여성을 촬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디서 돌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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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여성운동가인
클레멘티나 칸토니를 떠올리며 그가 제기한 가능성(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테러)에도 신빙성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감 조사 중인 아들들에 대한 걱정과
탄식 속에는 죽은 딸 샤이마의 몫은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것은 아마도 신의 영역일 것이다. 굴람씨의
말처럼 신만이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계신 것일까?
아프간
개방의 상징 Tolo-TV
샤이마가
근무했던 Tolo-TV는 아프간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채널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규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송사와는 거리가 있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스튜디오 하나와 주조, 그리고 편집실(컴퓨터로
작업하는)이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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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머는
‘HOP'이라는 음악방송 VJ였다. 그녀의 서구적인 방송스타일은
많은 아프간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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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루머들이 난무했다. 부검결과 그녀가
임신 중이었다는 소문이 아프간 사회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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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마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HOP'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이었는데 샤이마 사건 이후에
진행자가 남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HOP'을 만드는
담당PD는 샤이마 외의 다른 VJ들도 신변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Tolo-TV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주로 서방의 음악이나
영화를 소개하기 때문이고 이는 곧 보수적인 아프간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VJ들이 공격대상 1호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모른다. 아프간 사회에 서구 문화를 유입시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인데다 여성이 부르카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여성 VJ들은 특별히 조심하고 있다고
한다.
장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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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정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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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에 위치한
이슬람 신학대학. 카펫이 깔린 강의실로 들어가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열심히 코란을 외우고 있었다. 읽기를 마친 학생들은 강의실
중앙에 있는 물라(종교지도자)에게 가서 자신이 외운 것을 확인받았다.
우리의 서당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시신경을
잃어버린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무슬림
중에 하지(Haji, 성지순례)를 마치면 더 이상 세상을 볼 필요가
없다며 스스로 눈을 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확인하게 되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이곳 아프가니스탄이다.
그 중의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앞을 보지 못해 부르카를
벗고 진행하는 여성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그가 가진
상식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의 소탈한 웃음은 차라리
앞 못 보는 것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기름을
붓고, 강간을 당해도
나지볼라 정권
당시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만큼 자유롭던 여성들이 탈레반으로
정권이 옮겨가면서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된다. 외출시 부르카 착용은
기본이었다. 물론 외출도 쉽지 않았다. 만약 손이나 발목이 옷 밖으로
노출되면 그 자리에서 구타를 당하거나 심할 경우 손목이나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탈레반 정권이
물러간 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AWN(AFGHAN WOMEN NETWORK)의 한
간사의 말에 따르면 질라라밧이나 칸다하르 같은 지역에서는 명예살인을
지역공동체에서 결정해서 해당 가족에게 통보해준다고 한다. 명예살인
결정이 난 가족 중에 오빠나 남동생이 가족의 명예를 위해 살해를
감행한다. 여성들이 법의 테두리에서조차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 전에 기름을 붓고 자살하는 것이 이곳의 정서다.
한해 300명 이상의 아프간 여성들이 이런 식으로 희생된다. 심지어
강간을 당해도 그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 돌아간다. 여성 수용소에
수용된 한 여인은 강간당한 후 강간범인 남자의 결혼 제의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강간을 했던 남자는 감옥에서 고작
1년을 복역했을 뿐이다.
사건
현장이 말해주는 것
레자위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을 만나기 위해 카불 경찰서로 향했다. 아직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담당경찰관은 아주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우리는 샤이마의 아버지 굴람씨의 증언을
토대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샤이마의 남자형제들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조사하는 이유는 가족들이 샤이마를 병원으로 옮긴
뒤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 모든 증거를 가족들이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방은 1층인데 하필 2층 오빠의 방에서
죽은 것도 명예살인의 의혹을 짙게 한다는 것. 조사 결과 두 형제의
진술이 서로 달라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넘긴 상태였다. 혹시 모를
자살 가능성에 대해 물었을 때 경찰은 단호하게 가능성을 일축했다.
자살의 경우 생기는 화상이 머리에 없고, 발사된 총알이 두 발이라는
점을 들었다. 첫날 샤이마의 아버지 굴람씨가 제기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타살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작극일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진실은
어떤 것일까? 아버지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프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투쟁인지 이 사건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오빠에 의해 그녀가 죽었건, 아니면 아프간
사회를 혼란시킨다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잃었건 어쨌든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죽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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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돌무덤은 그녀의 죽음이 아프간 사회를 조금도 변화시켜
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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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마의
무덤은 그녀가 살던 동네 뒷산에 있었다. 오랜 내전
탓인지 산 전체가 무덤으로 뒤덮혀 있었다. 이름도
없이 돌만 비쭉 세워 놓은 공동묘지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샤이마의 무덤
또한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부르카를
벗어던진 1세대 여성TV 진행자 샤이마 레자위의 무덤.
돌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아프간의 공기가 그녀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녀의 무덤이
우리에게 무언가 말해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로
그곳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러나 죽은 자는 역시 말이
없었다. 아프간의 바람은 거칠다. 흙먼지를 동반한
바람이 몰아치면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밑을
보니 뿌연 회오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그만 무덤을
등지고 산에서 내려갈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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