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UN 성추문에 휩싸인 라이베리아(5월 2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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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취재리포트


World Issue - UN 성추문에 휩싸인 라이베리아(고명준PD)


라이베리아, 그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취재동기

3월 24일 발표된 유엔평화유지군 성폭행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내전 진압과 평화 정착을 위해
세계 각지에 파견된 평화유지군이 현지 민간인 부녀자를 성폭행하는 사례가 늘면서 오히려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활동 중인 평화유지군은 라이베리아등 17개국, 8만여 명. 이 들 국가에서 지난 한 해
신고된 평화유지군에 의한 성폭행 범죄만 320여 건에 이른다. 게다가 피해자의 45%가
미성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폭행 군인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거나
비밀리에 본국으로 소환되는 경우가 대부분.
과연 전쟁으로 상처받는 이들을 두 번 울리는 유엔평화유지군, 이들은 과연 진정한
평화의 손길인 것인가...우리는 10여년이 넘는 내전을 겪고 2003년 평화협정을 맺은
라이베리아를 찾았다.



라이베리아는 어떤 나라인가

1821년 미국식민협회가 해방노예의 국가를 건설할 목적으로 메수라도곶(현재의 몬로비아)에
해방노예를 이주시키고 자유의 나라라는 뜻의 라이베리아라고 명명하였다. 1847년에
버지니아 출신의 혼혈인 J.로버츠가 미국을 모방한 헌법 · 국기를 제정하여 공화국으로서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라이베리아가 독립을 유지할수 있었던 데는 미국의 영향이 컸다.
흑인노예의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나아가서는 고국으로의 귀환을 장려한
미국으로서는 독립도 보호해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
그래서일까 라이베리아는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1980년 도우(Doe)가 이끄는 구국평의회(PRC)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므로써
군벌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1989년 12월 24일 군벌 지도자인 테일러(Tayor)가
도우 정권의 타도를 주장하며 시작된 7년여의 내전, 그리고 테일러의 집권, 그러나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부패로 인해 다시 시작된 내전과 테일러의 실각등, 일련의 과정뒤엔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는게 현지의 중론.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

우리가 찾은 곳은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시내안은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하지만 붙타다 남은 버스의 잔해나 건물벽 곳곳에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들은 10여년 넘는 내전의 상처를 말해주고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몬로비아 외곽지역에 위치한 IDP난민캠프.
수도 몬로비아에만 4곳, 총 2만여명의 난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그들의 생활은 한 눈에 보기에도 열악했다.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했고
가재도구라고는 몇 개의 양철냄비와 흙바닥위에 깔아놓은 얇은 이불 하나가 전부였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남은게 없다’였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원금은 1인당 미화 5불,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전쟁으로 아무것도 남지않는 고향에서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식량을 배급받는 과정에서 유엔평화유지군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맞아야했는지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조심스레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하지만 다른 캠프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걸 들었다는 사람뿐, 더 이상의
얘긴 들을수 없었다.
우리는 성착취의 또다른 피해자인 성매매여성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들을 만난 곳은 UN드라이브로 불리는 거리.
거리에 어둠이 깔리자 하나 둘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짧은 미니스커트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연신 지나는 차들을 향해 손짓하는 그녀들.

UN드라이브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성매매여성들

우리는 그녀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의외로 그녀들은 쉽게 응했다.

그녀들의 나이는 16에서 18살, 짙은 화장과 악세사리로 치장을 했지만
앳띤 얼굴을 감추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들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바로 먹고 살기 위함, 그게 전부였다.
성매매를 통해 그녀들이 한번에 버는 돈은 미화 5불에서 10불.
어떤 경우엔 먹을 것을 직접 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남은 건
팔기도 한다고 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팔아야만 했던 그녀들의 성,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먹을 것을 미끼로 성을 유린하는 유엔군들의 이야기는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  
성매매가 이뤄지는 호텔 마당엔 유엔차량이 가득 주차해 있었고 술집 안에는
흑인 여성과 자리하고 있는 유엔군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호텔 마당에 가득한 UN차량들

유엔군들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행의 피해자를 만나기위해 직접 병원을 찾았다.
혹시나 성폭행피해자들이 진료받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병원의사로부터 그 피해자들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얘길 들을 수 있었지만
피해자를 만나는 것은 결국 불가능했다.

병원출입문에 붙어 있는 문구가 요즘의 상황을 말해준다.

우리는 좀 더 자세한 걸 알기 위해 시민단체를 찾아봤지만 내전으로 피폐해진
라이베리아에서 제대로된 시민단체를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자국내 적극적인 대응조차 없는 현실에서
피해자들 스스로 쉬쉬하며 숨죽여 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군들의 성착취에 대한 유엔 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현지 유엔군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 우려하는 당사자도 있지만 대부분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성폭행이 사실로 드러나도 그들은 본국으로 송환되는 것, 그뿐이라고 했다.
옛날에도 또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평화유지군의 성범죄들, 언제까지 ‘유엔’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될 것 인가.
라이베리아는 지금 내전보다 쉽게 치유되지 않을 더 큰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