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되살아난 독일 新나치, 스킨헤드(5월 13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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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취재리포트


World Issue - 되살아난 독일 新나치, 스킨헤드(김새별PD)


취재 INSIDE

“얼마나 무서운데요. 전 여기 계속 살아야 하니까 집회 날은 알아서 취재하세요.”

처음 스킨헤드의 전국적 집회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현지 코디네이터가 한 말이다.
그 정도로 무서운 존재인가하고 일단 긴장한 다음, 나는 현지 카메라 팀을 고용하기로 했다.
겁이 났다기 보단 우선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나는 전쟁이나
테러 같은 예측 못하는, 혹은 어느 정도 예측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무서운 ‘인간’에 대해선 여유로운 편이다.
 


스킨헤드의 일반

 

“흉칙하고 못생기고 포악한 우리들” 취재에서 만난 전 스킨헤드는, 자신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포악하게 보이는 것 자체가 미덕이라는 것이다. 5월8일 독일의 종전일,
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에는 이 포악한 녀석들 2천 여 명이 모였다.
‘우리는 1945년을 기념하지 않는다’. ’일자리는 독일인에게만’ 집회는 꽤 그럴싸한(?) 정치적
슬로건들을 내걸고 있었지만, 이런 점잖은 구호들로 이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무서운 집단이다. 통일이후 독일 내에서
스킨헤드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외국인이 무려 153명. 놀라운 숫자다.


개별 스킨헤드

스킨헤드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폭력은 대부분이 ‘집단 구타’의 형태다. 혼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어떤 부류의 인간들이 모여 엄청난 집단 의식을 발휘해,
극악무도해지는 것이다.

나는 베를린의 한 교도소 앞에서 전 스킨헤드 마티어스(28)를
만났다. 그는 열 다섯 살에 스킨헤드에 입단해 스물 한 살,
교도소에 수감되기 직전까지 스킨헤드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죄목은 폭행, 인신매매, 사기 등 다양하며 7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출소를 두 달 앞두고 사회적응을 위해 매일 오후
3시에 밖에 나오고 밤 11시 반까지 교도소로 들어간다. 한 달에 세 번,
주말엔 외박도 허용된다. 우리는 무슨 교도소가 주 5일제냐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前스킨헤드 마티어스(28)
     7년이상 베를린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다리에 새겨진 나치 문신

구 동독지역 출신으로 열 다섯 살 나이에 가출해 외톨이였던 마티어스는 스킨헤드 집단에
들어가자 소속감을 느꼈다고 한다. 외국인을 저주하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나치 ?’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의 몸 전체는 나치문양 등의 문신으로 덮여 있었다. 뮌헨에 있는
스킨헤드 캠프에 들어가 석 달 동안 사상, 무기 사용법 등의 훈련을 받았다. 내가 만난
또 다른 전 스킨헤드는 네덜란드까지 전지훈련을 갔었다고 했다. 그 역시 구 동독지역
출신으로 14살 때 가출, 스킨헤드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취재 현장에서 이들이 무섭다기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집회 현장에서
가만히 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이 개별 스킨헤드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한 인간들인 것이다.
어쩌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우연히 백인으로, 아리안족으로 태어난 사실 하나 뿐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들이 정치적 구호를 스스로의 깨우침과 필요성에 의해
외칠만한 ‘머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이들에 대해
연민을 갖는다는 것이 죄악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이 무섭다기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후원자

 

   극우정당 NPD의 간부. 경찰이 시위내내 이들의 행동을
   캠코더로 찍으며 감시하고 있다.

글쎄... 어느 쪽이 후원자이고 어느 쪽이
후원을 받는 쪽인지 좀 애매하다. 아니,
공생관계인 것 같다. 극우정당 NPD
(독일민족민주당)와 스킨헤드. 사실,
5월8일의 집회는 이 정당이 신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참가자는 대부분 스킨헤드였던
것이다. NPD 당 간부는 스킨헤드와
자신들은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저 그들을
합법의 테두리 안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스킨헤드들은
훈련 캠프에서 자신들을 가르친 것이
NPD의 당원들이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NPD는 이들이 조직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이들은 NPD를 지지할 것이다.
완벽한 공생관계다.





감시자

 

         헌법보호소 대변인 쿠켄베르거씨

독일에 헌법보호소라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
취재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기관이 하는 일은 참
재미있다. 간단히 말하면 극우 뿐 아니라 극좌를 포함한
사회의 극단주의 세력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이다.
일종의 정보기관으로, 극단주의자, 히틀러를 찬양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음반이나 간행물 등도 감시 대상이다.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하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에
고발한다. 실제로, 그룹 ‘란서’ 등 나치 락 그룹이 실형을
선고 받는 일들이 있었는데, 정보의 근원은 이
기관이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아닐까? 나는 그 근거를
물었다. 정부전복의 위험이 있는 대상들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취재를 위해
나치 물건들을 파는 가게를 물었다. 금방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온다. 곧 스킨헤드 전문 기자를
만날 예정이라고 했더니, “아, 타게스 슈피겔誌의 얀젠씨?” 전화번호까지 줄줄 외운다.
극우를 견제하는 좋은 장치가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는 독일이 무서운 경찰국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둘러 헌법보호소를 빠져 나왔다.
 

관찰자

 

              TBS 베를린 특파원
              기시모토 기자

“그거 일본의 대응과 비교하려는 거지?”
극우 취재차 독일에 간다고 하자 내가 아는 일본 친구들이
똑같이 보인 반응이다. 사실 뭐 특별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염두에 두었다.
취재현장에서 일본 TBS의 취재진을 만났다. 베를린 특파원과
지국원들이었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의 MBC라고
했더니, “일본의 대응과 비교하려는 거죠?”한다.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NPD의 주장이 지금 일본 정치권의
주장과 똑같아요. 역사적 배경은 좀 다르지만, 독일은
사죄를 거듭할 때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일본 안에만 계속 있었다면 잘 몰랐을 거예요.”
노골적인 나레이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인 입으로 이야기해 준다면 오케이다.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위험하다며 약간 뺀다.
잠시 후 다시 설득해 좋은 인터뷰를 따냈다.
“왜 독일은 주변국으로부터 비난 받지 않는가, 적어도 반 독일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과연 독일이 어떤 대응을 하고 있길래...
오늘만해도 원래 브란덴부르크 문과 홀로코스트 추모비 근처를 집회 장소로 신고했었잖아요?
그것을 금지한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독일 정부가 그렇게까지 하는지, 왜 우리는 다른지 생각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인터뷰는 구성을 하다가 적당한 위치를 찾지 못해 쓸 수가 없었다. 아쉽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비.
          5월 10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편집을 마치고

독일 사회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그냥 전하고 싶었다. 극우들의 ‘난리’를
중심으로 편집함으로써, 한 쪽으로 치우친 정보를 전하는 건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전후 독일 정부의 대응이나 독일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선 누구나 알 정도로 익히 접하고
있으므로, 독일은 극우들 천지다, 큰일 났다 라는 식으로 오해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발전된 사회지만, 독일은 역동적이었다.
 

취재 OUTSIDE
 

슈피겔? 슈파겔?

 

 

                             슈피겔과 슈파겔
               슈피겔지는 5유로, 슈파겔은 10유로다.
              (각각 우리돈으로 6천원, 만2천원 정도)

독일의 그 유명한 주간지 슈피겔. ‘슈피겔’은 독일어로 ‘거울’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슈파겔은? ‘슈파겔’은 ‘아스파라거스’다.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 ‘슈파겔’은
5월-6월, 짧은 기간에만 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다들 슈파겔 요리를 먹느라 열심이다.
재미있는 것은, 식당의 메뉴에, ‘슈파겔을 곁들인 고기요리’가 아니라, ‘쇠고기요리와
함께 한 슈파겔’,’돼지고기요리와 함께한 슈파겔’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아스파라거스가 주인공인 것이다.
 

독일의 몰카

스킨헤드들의 물건(티셔츠, 나치 ? 음반 등)을 파는 가게를 찍으려고
독일 카메라 팀의 몰카를 빌렸다. 몰카의 렌즈는 셔츠의 단추구멍.
소니 레코더를 허리에 차게 되는데, 화질이 거의 캠코더로 찍는 수준에 가까웠다.

“독일에선 어떤 때 몰카를 써?”

“얼마 전에 한 소년이 마약성분이 든 버섯을 먹고 투신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거든. 그 때, 버섯가게에 마약 버섯 사러 갔었어.”
심각한 얘기인데, 왠지 웃음이 났다.

 

 

       독일 오디오맨 프랑크.
           모니터 속 필자

          구 동독 지역을 달리는 차 안에서